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17호] 비정규직 노동운동마저 제 밥그릇 챙기긴가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3자 교섭에 대한 평가 -

수년간의 투쟁끝에 하청 비정규직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운동의 사각지대에서 노동조합운동의 한 영역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 때 한국노총이라는 국가노조만 인정받던 시대에 비록 법외노조라는 이름으로 전노협이 당당히 나섰던 것과 비교해보아도, 결코 그 무게가 가벼운 일은 아니다. 최근에 기아자동차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사실상 인정받는 성과를 낸 것도 이러한 전진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하청노동자들의 이러한 전진은 비정규직이라는 차별을 일소하고 나아가 평등한 세상, 해방된 세상을 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불파투쟁의 봉화가 울산에서 일어났음에도 지금은 그 온기조차 느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만큼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몇 년간의 노동조합활동을 통해 갈수록 느껴지는 것은 노동자들이 조합운동에 익숙해질수록 노동자 계급의 해방이라는 고지는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위가 극히 불안하고, 자신의 존재가 차별 그 자체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조합운동에 안주한다는 것은 차별을 승인하는 것이고,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몸짓을 멈추는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들의 투쟁도 그런 관점에서 우려와 경계를 낳고 있다.


사실상 현상유지에 머문 임단투 결과

‘비정규직 노조(지회)가 고용, 노동조합 활동 등 확보’,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그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다’

현대자동차 노조(정확히는 현대자동차 원하청연대회의)는 지난 9월 15일에 있었던 현대차의 3자교섭 잠정 합의안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는 그 성과에 누군가는 시비를 걸고 있다. 잠정 합의안에 대해 전주비정규직지회의 경우는 81.62%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고, 아산사내하청지회는 65%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하지만 현자노조가 이렇게 평가하는 그 잠정합의안에 대해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울산)는 쟁대위에서 잠정합의안의 폐기를 선언했고, 급기야 위원장이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여러 논란 끝에 결국 53.14%의 반대로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의를 단 사람들이 울산에서만 절반이 넘는다. 그러면 왜 이러한 상반된 평가와 결과가 초래되었을까? 이것은 울산이 불파투쟁의 선봉에 섰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단순히 노조로서 인정받고 임단협을 체결하는 것을 넘어서 비정규직을 일소하고자 했던 투쟁의 흐름과 잠정합의안과 거리를 느꼈던 것은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번 3자교섭과 잠정합의안을 전후해서 3주체 지도부들의 투쟁의지를 의심하곤 했었다. 7월 중순의 격렬한 파업이 1주일의 평화기간을 거치면서 징계가 남발되는데도 다시 불붙지 않았던 전주의 상황과, 현대자본을 교섭테이블로 끌어내었던 울산의 경우 교섭이 시작되면서는 오히려 지도부는 투쟁동력을 끌어올리는데 관심이 없었다. 그 와중에 위원장이 쟁대위의 결정을 독단으로 뒤엎고 잠정합의를 했다. 아산의 경우, 애시당초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측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점에서 역으로 증명되었다고들 한다.


가까이에서 본 아산의 투쟁

아산의 지도부는 교섭기간 내내 현장동력과 울산 비정규직노조 탓을 하면서 양보안에 대한 합리화를 시도했었다. 그리고 교섭 막바지에 ‘올해 아산은 제대로 된 투쟁을 거의 하지 못했다’라는 식의 말을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까지 했었다. 실제 투쟁을 조직하고 준비했어야 할 지도부의 입에서 나올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궁색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 잠정합의안에 대해 아산의 지도부는 엉망인 안이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걸 바탕으로 더 큰 투쟁을 준비하자고 한다. 내년엔 이것을 발판으로 더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이번에 합의한 것들이 그동안의 우리의 투쟁의 성과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패배감, 더 나아가 지도부에 대한 불신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지회 초기부터 3년 넘게 투쟁해 온 조합원이 다수인 의장부의 경우에는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엔 우리가 옳았음을 확인받고 싶어했던 조합원들이 느끼기엔 정신적, 물질적 보상은 고사하고 투쟁의 정당성마저 훼손시킨 듯한 합의안에 분노하는 것이다.


임단협에 안주하는 것은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그동안 조합원들이 외치며 싸워왔던 ‘불법파견 정규직화’는 고사하고, ‘원청사용자성 인정’은 이미 하청사장들과 합의서에 싸인을 하면서 더 이상 외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집단교섭 조차도 이뤄진 바도 없게 되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잠정합의안이라고 나온 것은 단체협약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것으로 비정규직 3주체(울산, 아산, 전주)가 애초에 요구했던 우선협약안에 못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근로기준법 수준의 내용을 몇 개 정리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임금인상 또한 현대차 사측이 이미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 시급 308원을 올리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이기에 이번 합의는 현대차 사측의 일방적 임금인상과 성과급 지급을 정당화 시켜주는 꼴이 됐다.
그리고 가장 많은 말들을 낳았던 이면합의의 경우 서명자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규직노조가 보관하면서 비공개를 전제로 했었다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여기에는 해고자 문제와 면책에 관련된 부분이 작성되어 있는데, 해고자 복직은 차기 특별교섭에서 논의하고, 징계나 고소고발은 ‘최소화’를 노력한다는 것이다. 아산의 해고자 복직이 지난 2년 동안 계속해서 ‘차기’에 다루기를 수차례 반복했고, 작년 ‘최소화’의 결과가 울산에서 10여명을 해고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저 헛소리에 지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결정적으로 ‘2,3차 동일적용’이 아예 언급조차 되질 않았다는 것은 이 잠정합의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은 노동자 해방 운동이 되어야 한다.

올해 들어 정규직 노조 중에 알려진 파업투쟁은 만 하루도 버티지 못했지만 발전노조 파업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건설노동자에서부터 포항건설플랜트까지 전국을 뒤흔든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자본이 자신의 품안에서 길들이고 통제하는 대상에서 제외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식당도 없이 땅바닥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 그런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는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차별의 상징이다. 그런 차별을 극복하는 길은 자본의 품안에 들어가는 것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평등하게 노동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노동자의 품으로 안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외치는 구호가 ‘비정규직 철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 공장에서 만의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번 3자 교섭 과정에서 특히 드는 생각이다. 3자교섭 내내 공장안의 근로조건을 넘는 요구는 정규직노조나 비정규직노조 어디에서도 나오질 않았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같은 공장 안에서 일하는 2,3차 하청에 대한 언급조차도 없었던 점은 반성해야 할 점이다. 말로는 비정규직 철폐지만 결국엔 우리 밥그릇만을 챙기는, 그토록 우리가 비판해 마지않던 정규직 노조와 무엇이 달랐는지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할 때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원했고,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목했던 현대자동차 불파투쟁의 불꽃을 살려가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 비정규직 노동운동이 조합운동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이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어가는 인간해방의 몸짓으로 자리잡는 길인 것이다. 수많은 열사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꿈 - 평등하게 살고자 했던 몸부림을 기억하는 노동자라면 노동자들의 평등세상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분노를 키워가고, 그 자본에 대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운동이 요구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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