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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국제] 레바논 침공 이후의 팔레스타인

[인터뷰]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1.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즉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을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이런 견해는 전쟁당사자 간의 직접적인 분쟁요인을 간과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큰 규모로만 68년, 74년, 82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이다. 네 번의 침공들이 전부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 문제의 단초는 48년 이스라엘 건국이다. 이때 90여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레바논 남부, 시리아, 요르단 등 주변 국가들로 추방됐다. 그리고 67년 제3차 중동전쟁의 결과 가자, 서안, 골란고원 등의 이스라엘 불법점령지에서 43만여 명이 더 추방됐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활성화되었고, 70년부터 PLO본부가 위치한 레바논 남부는 이들의 거점이었다. 레바논 침공은 이들을 목표한 것이었다. 82년 침공으로 PLO가 레바논에서 축출되고, 이후에 PLO가 쫓겨난 자리를 메운 것이 같은 해 창설된 헤즈볼라였다. 헤즈볼라는 팔레스타인 대의 즉 점령된 영토의 해방과 추방된 난민의 귀환을 내걸었고, PLO가 없어진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헤즈볼라를 지원했다. 레바논 침공 과정에서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과 레바논 빈민들이 대량학살당했다. 이들과 이스라엘 간에는 뿌리 깊은 적대가 흐른다.


2. 세계의 언론들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한방 먹였다는 것에만 주목하고, 정작 레바논 침공의 원인이 되었던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더욱이 아랍에서조차도 팔레스타인 문제는 잊혀진 것처럼 보였다. 이는 무엇 때문이고 레바논 침공동안 팔레스타인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대대적으로 침공함으로써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은 가려졌었다. 사실 헤즈볼라보다 하마스 정부의 붕괴가 결정적인 목표였고, 그 목표는 달성됐다. 3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내각 장관들과 의원들이 테러리스트로 잡혀 군사법정에서 재판받고 감옥에 갇혔다. 이에 대한 아랍 각국 정부의 침묵은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로 추방되어 있는 500만 명 정도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사회주의자, 이슬람주의자로서 아랍의 친미적 · 권위주의적 왕권, 체제에 도전하는 세력이라는 것 때문이다. 이들은 권위주의적 통치자들의 입장에서는 정권을 위협하는 골칫거리인데, 골칫거리로 여기는 하마스가 정권을 수립한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팔레스타인의 대의이다. 이를 주장하기 때문에 아랍의 친미정권들에게도 하마스 정부는 붕괴시켜야 할 두려움의 대상이다. 한편 이스라엘이 왜 6월에 팔레스타인을 그 이전보다 더 공세적으로 공격을 했는지,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잡겠다고 나섰는가는 팔레스타인의 변화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스라엘이 어쩌면 위기를 맞았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내전을 유도하려는 이스라엘의 프로그램이 실패하고 6월에 하마스가 파타를 제압하면서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하마스를 중심으로 통합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하나로 의견수렴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은 항상 분열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통합의 움직임의 분쇄가 이번 전쟁의 가장 중요한 결과이다.


3. 레바논 침공의 실패를 이스라엘, 나아가 미국 패권의 약화로만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입장 특히 이스라엘 입장에서 팔레스타인 내에서 파타이든, 하마스이든 통합된 세력이 나타나는 것은 반드시 제거해야 될 목표가 된다. 하나의 세력을 중심으로 팔레스타인이 통합되거나, 중동의 많은 인민들이 통합이 되는 것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입장에서 위기상황이다. 그래서 분할지배전략을 구사하고, 이것이 실패할 때는 바로 공격을 들어가서 해체를 시켜왔다. 이란-시리아-헤즈볼라 측의 활성화를 고려해야겠지만 하마스 정권의 붕괴를 통해 이스라엘 패권이 강화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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