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17호/민주노총조직혁신(1)] 노동자 민주주의 강화 없이 반자본주의 투쟁에 나설 수 없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또 한번 파행사태를 맞았다. 이번에는 조직혁신안 처리를 앞두고 정족수가 모자라 유회가 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우리의 실력이라고 하는 반은 면피성, 반은 자괴감이 담겨 있는 후일담을 듣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사실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높은 수준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강점 중의 하나였다. 기업별 노조가 갖는 위험성, 회사노조로의 변질을 막아낸 것도 바로 발달된 노동조합 민주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체결권이 총회에 있다는 말은 노동조합 위원장 하나만 포섭하면 될 거라는 회사측의 얕은 수작을 좌절시켰다. 민주파 대의원을 포섭하려는 회사의 시도는 대의원회의 전에 현장토론을 개최하는 서슬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처럼 단위노조의 자주성과 투쟁력을 기반으로 지역연대가 공고히 해질 수 있었고 90년대 전노협의 투쟁성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합법화 시대, 연맹들이 합법화된 시기에 들어와서 연맹과 총연맹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총연맹과 연맹의 내부 민주주의는 정체, 혹은 후퇴되게 되었다. 특히 합법화 이후 각종 위원회와 정부기구 등에 총연맹이 참여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노사정대표자회의와 같은 노사협조틀에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계속되면서 총연맹을 조합원 대중의 민주적 통제에 두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과제가 미완된 채 98년에 배석법 집행부의 정리해고안 합의라는 초유의 배신행위가 저질러졌고 이에 대한 즉각적인 반발로 민주노총 위원장의 직선제가 거론되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민주노총 집행부 선거에서 모든 후보가 대의원 직선제를 거론하고 나온 것도 이러한 내부민주주의를 강화시키자는 일정한 합의와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9월 19일에 있었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내부 민주주의의 약화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보여주는 대회였다. 정족수 때문에 쩔쩔매는 집행부, 그리고 회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편의적 집행에 대한 유혹, 이건 비단 총연맹의 문제가 아니라 연맹들도 겪고 있는 곤혹스런 상황이다. 단지 이것을 내부민주주의의 부족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전반적인 사기저하, 방향성의 혼돈, 자기확신의 부족, 운동성의 실종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일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의원들 각자가 자본주의에 맨몸으로 맞서는 기개와 조합원을 대표한다는 책임감의 부족이 지적되어야 한다.

한 예로 중앙위원회 결의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강권으로 들어가다시피 했던 집행부가 결국 1년도 채 안되어 빰맞고 얼린 다음에 돌아왔는데 대의원들의 다수는 침묵이나 방조의 모습이었다. 자본에 고개숙이고 모욕당한 집행부에게 분노가 없다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분노와 이를 극복하려는 기개 자체가 없는 것이다. 기개 없는 노동운동가는 잘되어야 자본의 하위 파트너 정도이다. 자본은 바로 자신들과 대립하는 것이 소용없는 짓이라는 무기력을 타고 노동운동에 침투한다. 그것을 막는 방법은 오로지 현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간직한 조합원에 의해 통제되는 노동자 민주주의뿐이다.

일부에서는 사회주의자의 임무가 현장투쟁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사회주의자가 사회주의 선전, 선동에 힘을 써야지 조직력도 갖추지 않고 대중조직 문제에 매달려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도 한다. 현장의 투쟁력이 높으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나 현장의 투쟁동력은 이미 단위노조의 범위가 아닌 전국 집행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열사가 돌아가셨어도, 투쟁일정을 노사정대표자회의 일정에 맞추는 판국에 현장투쟁력이 어떻게 복원될 수 있단 말인가? 자본과 대립하고 있는 조직된 대중이 없는 곳에서 사회주의자의 실천은 외롭고 협소해진다. 민주노총이 혁신되어야 하는 이유는 고삐 풀린 자본에 대해서 저항을 할 수 있는 조직된 대중으로서 노동조합이 갖고 있는 의의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자본주의 투쟁을 고민하는 사회주의자라면 민주노총의 혁신에 대해 열정을 갖는 것이 당연지사다.

사회주의자는 대중을 의식화해야 한다. 그러나 의식화는 자본과 정면으로 대면하고 있는 노동자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끊임없이 이윤극대화를 위해 노동자에게 칼을 대고 있는 자본가와 투쟁을 통해, 그리고 대립과 갈라섬을 통해 대중이 의식화되지 않는다면 노동자 대중이 자본을 뒤엎고 새로운 세상을 이룬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민주노총 혁신은 현실의 과제이자 필요다. 이 필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집행의 편의가 아니라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원칙을 세우는 것, 그것이 희망이다. 그것이 혁명이다.


→ [민주노총조직혁신(2)] ‘대대 유회’와 ‘조직혁신안’ 실종에 대하여
→ [민주노총조직혁신(3)] 즉각 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민주노총 혁신을 결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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