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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국제] 프랑스 대선, 혁명적 좌파의 지지하락이 주는 의미

사르코지의 당선, 혁명적 좌파의 지지하락

5월 6일, 프랑스 대선이 신자유주의자 사르코지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프랑스 대선은 이제 잔치도 끝나고 정리도 되어버린 지 한참이다.
우선 프랑스 대선 결과만을 보자면, 4월 22일 있었던 1차 투표에서는 과반득표자 없이 대중운동연합(UMP) 니콜라 사르코지가 31.18%, 세고렌느 루아얄이 25.87%를 얻어 1, 2위로 결선투표에 올랐다. 그리고 5월 6일 마지막 결선투표는 사르코지 우세를 점친 사전 출구조사 결과대로 사르코지가 53.7%라는 안정적 득표로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혁명적 좌파의 경우에는 2002년 1차 결선에서는 10.45%(공산당 포함시 13.82%)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올해 대선에서는 공산당을 포함하여 9%에 그쳤으며 그나마 조금이라도 약진한 곳은 혁명적공산주의동맹(LCR)뿐이며(높은 투표율 덕에 LCR의 지지율은 하락하였지만 득표수는 약간 상승하였다), 다른 곳은 모두 1%대로 하락하였다.

반르펜 정서를 극복하지 못한 프랑스 혁명적 좌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들자면, 우선 2002년 대선 학습효과를 들 수 있다.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1차 선거 결과, 극우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이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을 누르고 시라크에 이어 2위로 결선투표에 올라간 것이었다. 나치독일의 점령 경험이 있는 프랑스의 정치문화에서 르펜의 약진은 경악할 만 한 것이었고, 결국 2차 결선투표는 반르펜 전선으로 전개되어 시라크의 대선 승리를 낳았다.
2002년 대선의 결과는 우선 2007년 대선의 높은 투표율이었다. 1차선거의 투표율 83.77%는 1974년의 84.2% 이래 최고였으며, 2차선거의 투표율 83.97%는 84.06%를 기록한 1988년 이후 가장 높았다. 한편 우파 사르코지의 르펜 학습효과는 르펜의 지지표를 잠식하기 위한 선거전략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르펜 지지층의 집중 공략은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사회당의 루아얄의 경우, 르펜 학습효과는 좌파성향의 유권자들에게 당선가능한 후보를 찍으라는 전략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쓸모있는 투표\'(vote utile)라는 말로 나타났다. 주요언론에서도 반르펜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선동하였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유권자들이 좌파정당을 찍어 자기 표를 사표로 만들기 보다는 당선가능한 후보에 투표를 하는 성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전략은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나서, 2002년 선거에서 13%대를 획득했던 좌파정당들의 지지도가 급락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LCR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이 급속한 지지율 축소를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은 프랑스 혁명적 좌파가 주류 지배세력 틀 내에서 형성된 이슈를 극복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여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남이 깔아놓은 판에서 놀려고 하다 보니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내 성과가 되지 않는다. 프랑스 대선을 강하게 규정한 반르펜 정서는 그러한 한계를 보여주는 한 사례일 뿐이다.
이러한 한계는 2차 결선투표에서 재현되었다. 아무리 혁명적으로 선거투쟁을 했다고 하는 세력들도, 르펜이 결선에서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결선투표에 가서는 결국 반사르코지 투표를 할 것을 호소하였다. 브장스노(LCR), 라귀예(LO), 뷔페(PCF), 보베 모두 예외가 아니었다. 이것은 결국 사회당의 루아얄을 지지하라는 의미일 수밖에 없으며, 지배계급 중 차선의 선택이라는 결선투표제의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오히려 사르코지가 싫어서 루아얄을 선택하기 보다는 사르코지, 루아얄이 공히 친자본주의적인 정치세력임을 분명히 하고 투표불참을 호소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타당한 전술이 아니었을까 한다.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대한 과도한 낙관

한편 사회당 밖에 존재하는 좌파세력은 프랑스대선 과정에서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과대평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운동세력들에게 프랑스는 대중운동의 역동성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였다. 특히 좌파는 2005년 유럽헌법 부결(54.87%로 부결됨)에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대한 과도한 망상은 사회당을 제외한 좌파세력의 후보단일화 추진으로까지 발전하였다. 후보단일화는 유럽헌법 부결투쟁을 주도한 “반자유주의집단”(anti-liberal collectives)이라는 공투체를 통해 진행되었다. 후보단일화를 추진하는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이것이 상당히 공허한 근거를 가지고 추진되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가령 “반자유주의 후보”로 후보단일화만 하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낙관하거나, 심지어 일부 활동가들은 유럽헌법 국민투표결과보다 10%는 더 나올 것이라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은 좌파세력의 망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미 신자유주의 개혁은 상당히 진척되어 있는 상태였으며, 노동권과 파업일수는 축소되고 있었다. 반면에 경찰의 권한은 커져갔고 정치지형 전반이 우경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2002년 13%의 득표이후 좌파는 선거에서 지속적인 지지하락을 겪고 있었다. 따라서 우경 일색은 아니더라도 좌파에게 유리한 조건은 아니었다.
게다가 반세계화나 반신자유주의 자체는 매우 호소력 있고 광범위한 세력을 집결시킬 수 있었지만, 사회운동에서 현실정치로 넘어오는 순간,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는 취약한 슬로건이었다. 즉 반세계화나 반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인정하지만 그 폐해에 대해 비판적인 세력들까지(사민주의, 소부르주아 세력, 양심적 지식인 등등) 포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후보단일화는 결국 실패하고 신자유주의를 프랑스에 관철시키려는 유럽헌법을 부결하기 위해 모였던 대중들과 정치세력은 선거 때가 되자 모두 자신의 정치성향대로 헤어져갔던 것이다.
결국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를 넘어 자본주의 극복과 사회주의 지향을 분명히 하는 정치세력의 결집이 아니고서는 친자본, 우경적 정치지형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프랑스 대선이 주는 시사점

프랑스 대선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시사점은 부르주아 정치논리를 벗어난 사회주의세력의 논리와 의제로 현실정치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반르펜 전선”과 유사한 것이 진보세력을 20년을 물고 늘어져왔던 “비판적 지지” 전술이다. 이것은 그때그때마다 “반한나라당”, “반보수”, “진보대연합”, “진보개혁세력” 등등 잡다한 동의어들을 만들어냈다. 프랑스에서 반르펜전선은 결국 혁명적 좌파정당의 지지율 급락이라는 현실을 낳았다. 결국 스스로의 힘과 의제로 현실정치를 돌파하지 못하고 부르주아 지배계급의 일부에게 의존하다가는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인가를 프랑스에서 보여준 것이다.
두 번째로 자본주의 극복과 사회주의지향을 분명히 하는 정치세력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프랑스 대선에서 그나마 혁명적공산주의동맹(LCR)이 현상유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점을 강조하고 이를 실천하였기 때문이었다. 후보단일화의 실패도 각 정치세력들이 정파적 이익을 내세워서가 아니라,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라는 부실한 지반 위에서 유럽헌법 부결이라는 외양적 성공에 기대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정치강령과 실천을 대중적으로 분명히 보여주는 방식의 선거투쟁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원칙에 대한 동의지반을 넓히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이것은 올해 대선을 맞이하는 한국의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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