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24호] 비정규악법의 파국적 효과가 만들어낼 대중의 역동성을 조직하자!

노무현 정부와 자본가들이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 비정규악법

오는 7월1일부터 시행되는 비정규법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차별과 고용불안을 없애는 만병통치약’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이 법이 온갖 재앙을 낳을 ‘판도라의 상자’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미 여러 곳에서 ‘괴담’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법 시행도 되기 전에 집단해고와 외주용역화가 시작되고 있다.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이 공동이사장으로 있는 노사발전재단조차 비정규노동자들 17명을 6월30일자로 해고하겠다고 예고한 상태이다. ‘선량한’ 자본가라 하더라도 비정규법을 비정규직 짤라내는 법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형유통업체인 뉴코아 또한 비정규직(킴스클럽 계산원) 전원 해고 및 용역 전환방침을 발표하였다. 뉴코아 각 점포에서 점장이 직접 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사직서 제출을 종용하고, 이른바 “0개월 계약서”로 잘 알려진 노예문서 작성을 협박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백지위임 계약서’까지 등장했다.
비정규법 시행에 앞서 공공부문에서 먼저 시뮬레이션을 해볼 목적으로 추진되는 ‘공공부문비정규직종합대책’과 관련하여 정부가 만든 “무기계약 및 기간제 근로자 등 인사관리 표준안”이라는 문서를 보면, 정부가 이 법을 통해 어떠한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무기계약’이 정규직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표준안”이 제시하고 있는 ‘표준근로계약서’에는 아예 ‘해고사유에 관한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근무실적 평가 결과 계속해서 2회 이상 최하위 평정점을 받은 경우 재계약을 하지 않거나 근로계약기간중이라도 해고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즉, ‘무기계약’은 정규직이 아닐 뿐 아니라 매년 근무실적을 평가하여 계약을 갱신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임이 분명해진 것이다.

비정규악법의 최종 공격대상은 정규직! 그러나 흔들리는 원칙

공공부문 대책을 보면 비정규악법 문제를 단순히 비정규직 문제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무기계약’과 ‘기간제’ 노동자에 대해서 근무실적을 평가하겠다는 것이지만, 이 제도를 비정규직부터 광범위하게 시행한 후 종국에는 정규직에게까지 확대하려 할 것임은 분명하다. 최근 ‘공무원 3% 퇴출제도’나 철도공사가 시행하려는 ‘ERP 제도’, 교사 노동자들에게 적용하려는 ‘교원평가제도’와 연관시켜보면, 공공부문 대책 또는 비정규악법이 최종적으로 공격하려는 대상이 정규직임을 알 수 있다.
민간부문인 뉴코아 사례 역시 비정규직만을 용역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전혀 생소한 업무로의 전환배치 하겠다는 것이어서, 비정규법이 정규직도 공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규직-비정규직이 혼재하여 작업하던 현장이기에 차별시정과 정규직화를 회피할 의도로 추진되는 용역외주화는 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을 반드시 포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현대자동차를 비롯하여 다수의 대자본들이 ‘배치전환의 자유’를 노조로부터 빼앗으려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정부의 비정규악법은, 치사하게도 조직력과 투쟁력이 취약한 압도적 다수의 미조직·비정규직 고용을 먼저 공격하고 악화시킴으로써 정규직 노동자들을 포위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건과 처지가 하락하여 ‘고용안정’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무너진 틈을 타, 악화된 사회여론을 동원하여 정규직 노동자들까지 제압하려는 목적으로 설계된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아니겠는가! 현재 존재하는 정규직 고용을 매우 ‘특별한’ 고용형태로 몰아붙이고 포위하여 공격하려는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기간제법·파견법 시행령에서는 비정규악법의 공격목표가 정규직임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기간제 예외업종에 “연봉 6천만원 이상자”라든지 “박사학위 소지자, 기술사 등급의 국가자격증 소지자”가 포함되었는데 이들 중 대다수가 정규직이다. 임금피크제를 곁들여 공격이 들어오면 정규직 노동자들 다수가 기간제로 전락하던지 임금이 삭감되고 말 것이다. 비정규노동자들 뿐만아니라 비정규법 폐기를 걸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전선의 최선두에 서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악법 폐기와 비정규 노동기본권 쟁취에 앞장서야 할 민주노총은 투쟁기조에서부터 혼란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법과 관련한 입장을 “비정규악법 전면재개정”으로 공식화하였는데 어느 누가 보아도 “비정규악법 폐기”라는 슬로건에 비해 분명하지 않은 구호이다.
물론 선명한 슬로건이 훌륭한 투쟁을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올바른 슬로건 없이 훌륭한 투쟁이 건설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분명하지 않은가!
최근 비정규법 시행령 논의에 개입한다는 명분으로 공식 의결단위도 거치지 않고 노동부가 소집한 노사정 정책협의회에 들어가서 경총, 노동부와 시행령 관련 교섭을 벌인 민주노총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노사정 교섭의 결과 시행령은 4월에 나온 초안에 비해 더욱 개악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평가조차 이뤄지지 않는 것이 민주노총의 현주소이다. 투쟁기조의 혼란이 전술 운용의 혼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노사정 협의에서 그토록 뒤통수를 맞아놓고도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가?
민주노총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대통령후보 경선자들은 지난 5월8일 \"한미 FTA 반대와 비정규법 시행령 반대, 그리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공동협약서를 발표했다. 모법인 비정규법 자체가 문제인데 ‘시행령 반대’로 구호가 은근슬쩍 바뀐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함께 나온 희망의 불씨, 대중의 역동성을 조직하자!

그러나 집단해고, 외주용역화라는 비정규악법의 파국적 효과 앞에 비정규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여 투쟁으로 나서고 있다는 희망이 있다. 역설적인 얘기이지만, 비정규악법은 수많은 비정규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매개가 되고 있다. 비정규법이 ‘악법’이라는 사실은 여기서도 다시 한 번 입증된다.
비정규법안이 촉진하게 될 외주·용역화는 결국 기존 임금 120만원 중 용역회사에 20만원을 헌납하는 방식으로 임금삭감이 벌어지게 될 것이고, 당연히 현장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오기 마련이며 조직화의 계기가 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각종 수당과 상여금을 기본급으로 돌리는 방식의 임금삭감이 중소영세사업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억울함과 분노가 솟구쳐오를 때마다 노조 결성이 시도될 것이다. 또한 노동법과 비정규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자들은 특수고용화 전략 역시 외주·용역화와 함께 자주 쓰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 모든 비용부담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과정이 동반되기에 이 역시 조직화의 계기로 올라올 것이다.
이미 공공서비스부문(노사발전재단, 노동청비정규직, 도시철도비정규직, 학교비정규직)에서, 유통서비스부문(이랜드, 홈에버, 뉴코아)에서, 특수고용 영역(식음료유통, 퀵서비스, 대리운전)에서, 이제 더 이상 법으로는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없음을 자각한 비정규노동자들이, 마지막 희망으로 노동조합을 새롭게 건설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 각 영역과 단위에서 6월 총파업투쟁을 속속 결의하고 있다. 건설부문의 타워크레인기사, 경기서부건설노동자들이, 공공부문의 평생교육노조와 노사발전재단이, 유통부문의 뉴코아-이랜드 공투본이 파업을 결의했으며, 화물연대/덤프연대/학습지 노동자들이 이미 특수고용 노동3권 입법쟁취를 위한 6월 경고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물론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다양한 비정규직 투쟁이 벌어지고는 있지만 하나로 묶어지지 않고 있다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상황이 복잡할수록, 오히려 “모순의 한복판에 존재하는 중심”, 즉 폭발의 뇌관이 존재하는 법이다.
전국의 투쟁상황을 종합해본 동지들이라면, 현 정세에서 가장 핵심적인 투쟁으로 타오를 뉴코아-이랜드 공투본의 총파업 투쟁이 바로 그 뇌관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영역이 현재 가장 높은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는 부문이기 때문이다.
유통부문 투쟁이 보여주는 ‘역동성’의 핵심은, 평소 같으면 2~3명 조직될 사안도 유통서비스 부문에서 터지면 20~30명이 새롭게 조직되는 사안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약직 노동자 1명을 해고하면 현장이 얼어붙었던 과거와 달리, 오히려 관심을 보이고 조직화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홈에버(옛 까르푸) 월드컵점에서는 민주노동당 지역당원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계속 조직확대중(현재 90여명)이며 매일 조합원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뉴코아 용역전환 방침 발표와 함께 현장은 뜨겁게 올라오고 있고, 정규직으로만 구성된 뉴코아노조에 최근 100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입해 투쟁하고 있다.
이러한 역동성은 물론 노동조합(뉴코아, 이랜드일반노조)들의 꾸준한 노력의 결실 덕이며, 7월1일부터 시행될 비정규악법 때문이자, 박성수 회장의 반노조적 본성 때문이다. 이 3박자가 어우러지면서 가장 역동적인 투쟁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6월 중순이 되면 유통서비스 부문의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총파업이라는 ‘열린 공간’이 현재의 역동성을 더욱 높여주게 될 것이다. 자본가들이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 남은 희망의 불꽃들이 6월로 향해 달리고, 또 달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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