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25호] 대선 출사표

길들여지지 않겠습니다

대법 판결 결과를 전해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제 자신에게 다짐한 말입니다.
대법 판결을 기다린 지가 1년 6개월이 되었습니다. 3년 넘게 기다린 김석진 동지 같은 사람도 있지만 기간의 길고 짧음을 떠나 송사라는 것이 한 개인에게 끼치는 피해가 막심합니다.
아무리 그것이 공적인 일이고 조직적인 결정에 의한 송사라 해도 결국 그 기간 동안 고스란히 힘든 것은 자신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니 기다린 세월을 생각하면 무척 괘씸하고 사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길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법도 아니고 조례도 아니고 시행령도 아닌, 그저 행정자치부의 단순한 업무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민에게 뽑힌 단체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유죄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이야 말로 죄 있는 자들입니다.

만일 행자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은 것이 죄가 된다면 대한민국의 단체장 가운데 죄인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행정자치부는 행정지침부서라고 해도 될 만큼 지침으로 연명하는 부서입니다. 이름만 자치를 달았지 지방자치제라는 게 무엇인지, 민선단체장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아주 천박한 곳입니다.
내무부 시절 관선 단체장 내려 보내 쥐락펴락 하던 못된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틈만 나면 온갖 지침 내려 보내 간섭하고 개입하고, 중앙 정부 맘대로 주무르려는 행자부의 행태에 대해, 민주노동의 단체장 뿐 아니라 다른 당의 단체장들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내무부의 하급 관료를 지방자치 단체장의 역할로 규정할 때만이 가능한 판결입니다.
국회의원은 정치인이지만 단체장은 정치인과 행정가라는 두 가지 모습을 갖습니다.
소속 정당의 후보로서 주민들이 뽑아준다는 면에서 자신과 소속 정당의 정치적 지향을 실천해가는 정치인이자, 해당 지역의 모든 살림을 집행하고 관장하는 행정가이기도 합니다.
이런 단체장에게 판단의 기준을 오로지 중앙정부 지침을 수행했느냐 아니냐로 결정한다는 것은, 정치인과 정당인으로서 단체장의 소신과 철학, 판단을 용납하지 않고 오로지 행자부의 똘마니로 길들이겠다는 현 정부의 속셈을 사법부가 ‘합법적으로’ 인정해 준 것입니다.
참여정부가 민주주의를 참칭하는 그 순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미 죽었으므로 이번 판결은 죽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관참시이자 확인사살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저와 이상범 청장이 냈던 소송에 대해 행자부가 내린「징계업무처리지침」및「병ㆍ연가불허지시」등의 조치는 법적으로 따라야 할 강제 명령이 아닌 단순 업무연락이므로 징계의 권한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라고 기각하였습니다. 즉 지방자치단체장의 징계권에 대해 새삼 논할 바가 없으며 행자부가 이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단순한 업무연락에 불과하기 때문에 따를 의무가 없다고 기각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했으니, 누가 이를 정의와 양심에 다른 판결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형식적인 징계라도 징계지침을 따르는 모양새만 냈더라면 죄라고 하지 않았을 텐데, 징계 자체를 거부했으므로 단체장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유죄라고 하니, 왜 이 나라에 국가보안법이 온존하고 있는지 사법부의 수준을 보니 알겠습니다.

저는 긴 호흡으로 숨고르기를 할 생각입니다.
민주노동당의 단체장들이 계속 생겨나고, 공무원노조의 투쟁이 멈추지 않는 한 이 투쟁은 계속될 것이므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직무는 정지되고 연임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힘들게 닦아놓은 진보행정의 틀이 무너질까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런 안타까움보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2년 동안 끌어온 소송에서 결국 유죄 판결을 받게 되었지만 억울하지만은 않습니다.
중앙당에서 낸 성명서에 민주노동당의 구청장은 앞으로도 같은 사안에 대해 공무원노조 조합원을 징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히 밝혔습니다. 당을 당답게 하는 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에 저는 지금 기쁩니다.
대법원의 유죄 판결에 위축되었을까봐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셨지만 저는 오히려 기운이 납니다. 탄압 받을 수록 강해지는 물질이 몸 안에 있는 것 마냥 오기가 생깁니다.
누가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지 두고 보자고 했기 때문에 오래 살아야 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또 다른 싸움을 하겠습니다

다시 새로운 싸움을 하겠습니다.
저는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로 당내 경선에 출마할 것입니다.
원래 출사표를 던지려던 것이 갑작스런 대법 판결로 인해 성명서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민주노동당 다운 대선 후보, 진보정당의 노동자 후보로서 당의 경선을 더 활기차고 즐겁고 풍부하게 하기 위해 대선 후보에 나섰습니다.
대선 후보로 제 이름이 거론될 때는 대법 판결이 변수가 되지 않았습니다. 1년 6개월 동안 판결은 커녕 재판이 진행되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으로 후보 얘기가 나올 무렵 갑작스럽게 대법판결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판결일을 열흘 남겨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통해 판결 소식을 들었을 때 예감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진보정당의 간부에게 정치탄압 아닌 재판이 있을까만은 그래도 갑자기 재판이 잡히고 피선거권을 박탈당하는 판결이 나오고 보니 앞으로 이런 형태의 탄압이 저 아닌 누구에게든 이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노동당이 할 일이 너무 많고, 제가 갈 길 또한 너무나 멉니다.
그 먼 길에 또 한 걸음 보탠다는 생각으로 출발합니다.

남성, 경상도 태생, 대기업노조, 정규직출신, 노조위원장…, 다수자이자 기득권을 가진 여러 부류에 저는 골고루 속합니다. 어떤 선거에서든 메리트로 작용할 수 있는 점들입니다. 아무런 조직도 정파도 없는 제가 대선 후보로 나설 수 있는 자체가 이런 기반들이 있기 때문임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역설이지만 이런 메리트가 오히려 핸디캡이 되는 정당을 만들고 싶습니다. 남성이며 대기업 노조, 정규직 출신 이런 이력들이 민주노동당 안에서는 어떤 메리트도 되지 않는,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하는 그런 당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선거를 하고 싶습니다.
지난 비례대표 선거 때 민주노총 2기 동지들이 모여 비례대표 끝 번호 50번부터 등록해서 50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신나게 당 선거운동 하면 좋겠다고 작당을 했었습니다. 1번부터 10번은 꼭 하고 싶은 사람들 하게 놔두고 우리는 끝 번호부터 받아서 몰려다니면 재밌지 않겠냐고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민주노동당만이 할 수 있는 실험을 해 보자고 그랬습니다.
결국 꼭 되고 싶은 사람들만 등록하는 재미없는 선거가 되고 말았고, 우리는 실험정신 없는 진보정당의 생기 없음에 실망하면서 상상은 막을 내렸습니다.
저는 이번 대선 후보 경선에 최소한 10명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녹색정치를 선언만 할 것이 아니라 녹색후보가 직접 출마하고,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노인, 청소년,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모두 당사자가 되어 자신들을 대변하는 후보가 아닌 자신들 자체가 후보가 되어 당원들을 만나고, 국민들을 만나는 그런 대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욕구를 가진 모두가 당사자가 되어, 즐거운 선거, 활기찬 선거, 도전정신으로 가득한 선거가 되었으면, 진보정당만이 할 수 있는 여러 실험들이 즐겁게 수용되고 소통하는 그런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미 제 출마로 한 가지 실험은 시작되었습니다. 현행법상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사람이 대선후보에 나온다는 자체가 실정법에 대한 도전입니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 만이 이 싸움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이 싸움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당의 지침을 따르다 부당하게 권리를 빼앗긴 당원들에 대해 당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합니다. 당의 공직선거 후보가 되기 위해 정권의 부당한 지시에 몸 움츠리고 싸우지 못하는 공직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이 싸움을 해야 합니다.
고맙게도 당내 정파인 해방연대 동지들이 이 싸움을 하겠다고 나섰고 저를 후보로도 추천해 주셨습니다. 아무 문제 없는 후보도 있을 텐데 제 조건을 문제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투쟁해야 할 원칙의 문제로 받아들여준 그 뜻 소중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뜻을 함께 하는 모든 당원들과 함께 당차게 이 싸움을 해 보겠습니다.
저는 대선후보 등록을 계기로 주어질 어떤 자리에서든 노무현 정부와 대한민국 사법부의 천박함을 알리고 싸울 것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후보 등록을 위해 1,400명의 지지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날짜는 촉박합니다.
이미 먼저 등록한 후보 4분 가운데 3명은 공식 후보가 되기도 전에 당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고 있고 이는 아직 등록하지 않은 후보들을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조직 없고 정파 없는 후발주자로서 이 기득권과도 싸워야 합니다.
저는 그냥 평당원 믿고 가겠습니다.
단지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진짜 신나는 대선, 치열하되 유머가 넘치는 진보정당다운 대선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제 색깔대로 길들여지지 않으면서 뚜벅 뚜벅, 한 길을 가겠습니다!

2007년 7월 16일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며 이갑용 드림



→ 이갑용의 후보자격을 인정하여 부당한 판결에 투쟁하자
→ [지지후보 검증토론]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해방연대 대선강령의 내용이 강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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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용 , 2007 대선 , 공무원 노조 파업 , 민주노동당 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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