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27호] 엔캐리 청산 위기,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자본주의

이번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자본주의 체제가 공황 앞에서 무능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주류 언론과 부르주아 경제학의 누구도 현 사태의 결말을 낙관하지 못하고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대형 미국계 헤지펀드는 \"국제 금융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며 두려움을 감추지 않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쇼크가 단순히 미국 경제의 거품으로 인한 것이라면 세계 경제가 이렇게 요동을 칠 이유가 없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은 미국 자산시장의 1% 정도이고 손실규모의 추정치는 1000억 달러 안팎으로 전체 경제에 비해 그리 큰 규모는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소위 ‘전자투자가’라고 불리는 글로벌 투자회사(헤지 펀드, 뮤추얼 펀드 등)에 있다. 이들이 투자한 자산을 추적하다보면 엔캐리 트레이드라는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엔케리 트레이드란 일본 금리가 0.5%선일 때 낮은 금리로 대출받은 엔화를 제 3국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날아오는 ‘싼 이자에 돈 쓰라’는 스팸메일도 대부분 금리차를 노린 소규모 엔캐리 트레이더들이 보내는 것이다. 지금 세계 시장에 떠도는 엔캐리 자금의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약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로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일본이 “전세계 자금의 유동성을 공급해왔다”고 말할 정도이다. 게다가 대개의 세계 전자투자회사들이 엔캐리 자금의 예상수익을 담보로 또 다른 제 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 때문에, 간접적인 엔캐리 자금까지 포함한 전체 규모를 추산하면 세계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폭탄이 된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바로 이 엔캐리 자금의 청산을 촉발시키면서, 이제 예상되는 공황의 규모와 강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가 좁혀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청산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데, 이는 마치 개별자본(일본, 미국)이 총자본(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이익에 반한다는 역설을 연상시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인하하고자 하는 반면, 일본은행(BOJ)은 최저 수준인 금리를 중립적인 수준으로 돌려놓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금리 차가 줄어들면 엔캐리의 이점이 사라지는 동시에, 외환시장에 엔화 유통량이 줄어들면서 갚아야 할 엔화의 가치가 오르기 때문에 엔캐리 청산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실제로 지난 8월 1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전날보다 100엔당 30.20원 급등한 844.60원을 기록하였고, 한 달이 지난 9월 18일 현재 930.70원을 기록하고 있다.

증시가 요동치는 이유는 투자회사들이 각국의 자산을 회수하고 있으며, 일본 측에서도 빠른 대출금회수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투자회사가 줄줄이 엮여 들어가면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이들은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손실분을 세계 각국에 분산 투자된 자금을 회수하는 것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엉뚱하게도 이번 사태로 미국, 일본이 아니라 호주나 뉴질랜드가 망한다는 전망이 떠도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해외자본의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이다. 세계 증시가 2-4% 하락할 때 유독 한국증시만 6-10%로 대폭 하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IMF 공황에 대한 타개책으로 나온 신자유주의 정책이 오히려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제어 장치를 스스로 무장해제 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실 세계 각국의 자본가 정권조차 이번 사태의 원인을 유동성 과잉으로 진단하고 있으면서도 이렇다 할 해법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과 유럽 등지의 중앙은행들은 막대한 유동성 공급을 통해 당장의 사태를 진압하려고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름으로 인해 불이 났는데 여기에 다시 기름을 부어서 끄겠다는 논리로서 대책이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지난 2001년 미국 거품 붕괴 이후 공황의 현실화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는 반면, 자본주의 체제는 제동장치를 하나씩 상실해가고 있다. 말 그대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셈이다. 연이은 주가 널뛰기에 간절히 ‘조정국면이길 바라고 있’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저들의 무능을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이상민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