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28호/비정규직노동운동] 비정규악법 시행 기만과 탄압의 100일, 노동자의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자!

10월 8일은 비정규악법이 시행된 지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날로부터 100일 전,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법 때문에 해고를 당했다”며 홈에버 상암점에서 농성에 돌입했었다. 상암점 이후로도 강제연행과 재점거, 또다시 강제연행이 수차례 되풀이되는 가운데,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요구는 매번 군홧발에 짓밟혔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은 11일 ‘비정규법 시행 100일 노사정 대토론회’에서 이상수 장관에게 항의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41명을 다시 한 번 강제연행함으로써 비정규직 폭력탄압 정권이라는 자신들의 변함없는 진실을 증명해주었다. 비정규직의 절박한 외침을 이처럼 억눌러 대고서는 무슨 비정규법 토론인가? 비정규직 입에 재갈을 물리고서 뻔뻔하게 보호해주겠다는 노무현 정권의 허위와 기만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정규악법 100일 - 비정규직 확산, 말뿐인 차별시정, 기만적인 무기계약 전환

비정규악법 시행 100일 동안, 우리는 악법의 말뿐인 비정규직 보호와 반노동자적 실체, 그리고 정부와 자본의 기만적인 행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랜드사태가 보여주듯이, ‘비정규직 보호입법’은 오히려 대량해고를 양산하고, 비정규직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정부가 보호조항이라고 선전하는 차별시정조치 및 2년이상 고용시 무기계약화가 도리어 이를 회피하기 위한 외주화를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이랜드가 그랬던 것처럼, 자본은 동일업무를 하는 정규직-비정규직 간 차별을 시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함께 뒤섞여 있던 업무들을 외주화하고, 역시 2년이상 고용시 무기계약화를 피하기 위해서도 상시업무들을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용역업체에 도급주려 한다. 이에 직접고용돼 있던 노동자들은 도급업체로의 이직을 강요당해 항시적인 고용불안, 이중착취에 시달려야 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로 전락하고, 이를 거부할 시에는 즉시 해고당하고 있다. 또한 형식적인 반복갱신으로 사실상 정규직이나 다를 바 없었던 장기근속 기간제 노동자들은 이제는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으로 주기적 해고의 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됐다.

한편 당장의 외주화 위험은 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별시정 신청을 통해서 처지가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지난 7월 24일 처음으로 차별시정을 신청했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결국 10월 16일에 해고당했다. 첫 차별시정 신청에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10월 10일에 “차별적 처우에 해당됨을 인정한다”고 판정했었지만, 계약기간만료를 이유로 차별시정 신청자와 근로계약을 해지할 경우 차별시정조치를 이행할 의무가 없어지는 점을 사측이 이용한 것이다. 해고 외에도 차별시정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차별시정명령은 받은 한국철도공사의 경우는 지노위 결정에 불복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중노위가 지노위와 같은 결정을 낸다고 해도, 철도공사는 또다시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낼 수 있다. 행정소송에 들어갈 경우에는 행정법원을 거쳐, 고등법원, 대법원까지도 갈 수 있다. 짧으면 5년, 길면 10년이라는 긴 소송기간에 사실상 차별시정 명령은 무력화되는 것이다. 이정도면 첫 차별시정 이행을 위해 전국노동자 굿판이라도 벌어야 할 참이다.

또한 비정규악법 시행 이후 확산되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무기계약직이다. 무기계약 전환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만을 별도 직군으로 묶어 고용은 보장하되 임금이나 승진 등에서의 정규직과의 차별은 그대로 유지하는 분리직군제를 통해 양산되는 무기계약직은 기존 비정규직에 비해 고용은 보장되지만, 차별은 그대로라고 해서 일명 ‘중규직’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자본과 정부는 무기계약 전환을 특별히 홍보하면서 고용안정의 측면만을 부각시켜 ‘정규직화’라고 거짓말을 하고, 점차적인 차별해소를 통해 완전한 정규직화에 이르는 가교역할을 할 것이라는 희망을 부풀렸다. 그러면서 무기계약 전환이 사실상 정규직화를 제도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차별을 고착화하고, 분리직군제를 차별시정 회피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은 은폐했다. 한편 무기계약 전환을 홍보하며 자본과 정부가 그토록 내새웠던 고용안정의 측면마저도 기만적임을 노동부 스스로 증명해보였다. 노동부는 10월 2일 기간제 노동자 중 일부를 무기계약으로 전환한다고 선전했지만, 사용자측 맘대로 해석할 수 있는 “그 밖에 근로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정이 발생한 때”라는 추상적인 해고조항을 관리규정에 넣은 것이다. 이에 따르면 노조활동도 ‘사정’일 테고, 잔업거부도 해고사항이 될 것이다. 이러한 말뿐인 고용안정, 자의적인 해고조항은 무기계약 전환을 골자로 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적용대상자 중 대다수인 학교비정규직의 ‘인사관리규정’에서도 역시 발견할 수 있다. 정부가 나서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가르치는 셈이다.

비정규직 철폐의 결의와 투쟁없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앞서 보았듯이 ‘비정규직 보호입법’에서 보호는 말뿐이며, 오히려 비정규법으로 인해 주기적 해고위험이 커지고 무기계약이라는 형태의 기만적인 차별고착과 비정규직은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차별시정 무력화, 주기적 해고위험, 차별고착, 비정규직 확산 등은 단지 이랜드 같은 악덕자본이 법을 악용해서 특별히 발생하는 게 아니다. 비정규직을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간주하고, 2년이내 계약해지에 대한 제재가 없으며,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도 없는, 그리고 불법파견, 위장도급을 조장하는 비정규법 자체가 자본에게 맘껏 비정규직을 쓰고, 계약해지라는 명목으로 맘껏 해고할 자유를 보장해준 것이다. 비정규법은 악법 그 자체이다. 그래서 법의 부작용이니, 악덕기업인에 의한 악용이니 하는 말은 마치 총기에 의한 살상을 총기의 부작용이니, 악용이니 말하는 어리석음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처럼 본질적으로 반노동자적인 비정규악법은 철폐돼야 한다. 비정규직 확산을 부추기고 상태를 악화시키는 뿌리를 잘라내지 않고서는 언제든 제2의, 제3의 이랜드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줄이고 보호하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계약해지 및 사용사유 제한, 원청사용자성 인정, 위장도급 강력규제, 노조의 차별시정신청 인정 등의 권리보장이 입법화돼야 한다. 그런데 비정규악법의 내용을 제한하고 보완하는 식의 이러한 법개정도 한계가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가령 차별시정 신청을 노조가 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아예 노조가 없거나 미약한 사업장은 여전히 차별시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또한 동일노동 의미, 비정규직 사용범위, 원청사용자 책임범위, 위장도급 정의 등의 구체적인 내용의 정함을 놓고 끝없이 소모적인 싸움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만약 입법화가 되더라도 동일가치노동의 의미가 동일업무로 제한될 경우에는, 열악한 업무의 많은 부분이 비정규직에 의해서만 수행되는 현실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비교대상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비정규직 사용범위나 위장도급 정의에 관한 논란은 말할 것도 없고, 원청사용자가 하청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에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할지의 문제도 타협점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사항이다. 이처럼 자본과 노동의 이해가 직접 충돌하는 문제들의 해결은 순전히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이 얼마나 자본의 숨통을 조이는지에 달려있다. 따라서 비정규법을 개정하는 방향의 ‘현실적인’ 권리보장 입법조차 비정규직 세상을 끝장내는 정도의 결의와 반자본 투쟁없이는 전혀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요구의 수준이 낮다고 투쟁이 쉬어지지 않는다. 자본에게 있어 비정규직 철폐요구나,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의 권리보장요구나 이윤을 침해한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또한 노동자계급에게 있어서도 직장폐쇄와 글로벌 자본이동을 무기삼아 한 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자본과 이를 법으로 보장해주는 정권에 맞서는 전국적인 단결과 투쟁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두 요구가 주는 부담의 크기는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 철폐를 쟁취하지 못할 정도면 부분적인 권리 쟁취도 불가능하다고 할만큼 신자유주의 계급관계는 경직돼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과 이를 합법화해주는 모든 악법 철폐의 전망과 계획없이 법개정이나 권리보장 입법, 비정규직 비율 감소, 과로없는 일자리 등을 운운하는 것은 말뿐인 비정규직 보호입법만큼이나 기만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다운 삶과 직결돼 있는 고용안정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언제든 일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부정하는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철폐의 대상일 뿐이다. 비정규직 철폐하고 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쟁취하자!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문창호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