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29호] 정치적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학생회 선거

과거 학생사회에서 보수라는 말은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말이었다. 실제로 많은 수의 학생들은 보수라는 정치적 지향을 거부했을 것이다. 물론 어떤 학생들은 학생운동의 권위가 워낙 막강했기 때문에 감히 보수라는 말을 발설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학생사회에서 보수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2007년 현재 7개 대학 학보사 연합 “대선 및 정치, 사회의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 중 35.1%가 스스로를 보수라고 답했다 한다. 그중 서울대는 보수 비율이 가장 높아서 40.5%에 달했다고 한다. 대학교 분위기가 변하긴 변했나보다.

하지만 학생사회가 보수화되었다고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같은 조사의 다른 문항들을 좀 살펴보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는 찬성이 67.5%로, 반대(19.9%)를 훨씬 상회했다. ‘공직 여성할당제’에 대해서는 찬성이 60.5%, 반대가 33%로 찬성이 반대보다 두 배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적 소수자를 위한 법률 제정’, 즉 동성 간 결혼 및 자녀입양, 양육권 보장 등을 위한 법률 제정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67.5%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는 24.1%에 그쳤다. 보수주의자들의 답변이라 보기에는 너무나 진보적이다.

사실 2007년의 대학사회에서 진보/보수를 운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학생들이 스스로를 보수라고 칭하고 있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는 의문이다. 잠깐 옛날이야기를 해 보자. 대학생들은 20년간 부르주아 교육을 받아온 사람들이어서, 이들의 정치적 지향은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 학생운동은 이러한 부르주아적 사고와 투쟁을 벌였다. 대학생들은 뼈저린 자기반성을 해야 했다. 자기가 20년 동안 쌓아왔던 사고방식과 가치체계들을 부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부정해 가는 한편, 새로운 진리체계를 쌓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때 진보와 보수는 명확했다.

한편, 현재의 학생운동은 점점 보수화되고 있다. 최근 서울대에서는 총학생회/단대학생회 선거로 떠들썩했다. 그러나 학생운동의 메카라고 불리는 서울대 학생회 선거마저 학생운동의 보수화를 여실히 드러내는 장이 되어버렸다. 총학생회/단대학생회는 학생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곳이기 때문에, 사회 변혁에 대한 전반적인 전략 속에서 도출되는 학생운동의 과제를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운동진영에서도 부르주아적 사고방식에 대해 비판하고 자본주의 사회를 뛰어넘은 상상력을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 대중들의 부르주아적 의식에 영합하여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기회주의적 사고방식이 판치고 있다.

제시되고 있는 공약들은 학생운동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의 허를 찌른다. 민주노동당내 NL 학생운동진영에서는 학생회실 복사기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좌파 학생운동진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전국학생행진에서는 멋들어지게 총론을 이야기하기는 하나 정책 차원으로 내려오면 학내에 갇힌 실천이나 일회적 실천의 공약들을 제시한다. 총론에서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을 이야기하더니, 그 공약은 학내 노동자 권리 찾기로 제시되었다. 구체적인 실천은 학내 노동자들에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씩씩하게 인사하는 것이라니 웃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대학은 부르주아 교육을 답습하고 있으며, 학생운동의 보수화는 이러한 부르주아적 사고체계에 어떠한 균열도 내지 못하고 있다. 학생대중들은 진보의 맛도 모른 채 기존의 질서에 편입되고 있다. 진보가 뭔지, 보수가 뭔지도 모르고 보수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비슷한 이야기로 이제 일, 이학년들은 운동권/비권에 대한 개념도 없는 경우가 많다. 대중운동이 사라져버린 과가 많기 때문이다. 학생사회가 우경화되고 있다는 진단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대중들은 도처에 원석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학생대중들의 보수화가 아니다. 문제는 학생운동이 보수화되어 이 원석들을 깎아낼 칼날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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