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0호]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투쟁 평가

수많은 경고와 질책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오류를 거듭하며 민중들의 열망과 멀어졌고, 대선결과는 3% 득표로 판명되었다. 민주노동당은 자신이 공언한 300만표 득표는 고사하고, 2002년대선 때의 3.9%, 97만표에도 미치지 못하는 71만표 득표에 그치게 되었다. 국회의원이 9명이고, 190여개 지역위원회, 10만당원의 정당이 올린 성과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득표였다.
그러나 이런 사태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총선이후 울산북구 보궐선거에서의 패배, 그리고 이은 지자체에서의 패배는 당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대선에서 기존의 지지율조차 유지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이런 위기감을 자각하고 민주노동당스스로 변화를 꾀하기에는 당은 조로현상이 너무 빠르게 나타났다. 내외의 자극에 무감각했고 자신을 자각하는데 게을렀다. 12월 19일, 현실은 아주 냉혹하게 그 나태함에 앙갚음을 해 주었다.

1. 대선결과에 대한 분석

1) 민주노동당의 목표와 그 성과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에서 적게는 300만표, 많게는 500만표 득표와 이를 토대로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20석)획득을 목표로 했다. 또한 친미수구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의 양강 구도를 혁파하고 3당 체제 구축을 위한 교두보 마련 등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렇게 높은 목표를 설정한 것은 2002년에 비해 배나 많아진 지구당(190여개), 10만당원, 그리고 변함없는 민주노총의 정치적 지지와 100만 회원을 거느린 한국진보연대의 정치적 지지 등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3.01% 득표, 71만 2천표의 득표로서 참담한 패배를 기록했다.

2) 대선결과에 대한 분석

과반수에 가까운 득표로 한나라당의 이명박이 당선되었다. 이회창이 얻은 15%대의 지지율을 합치면 63%에 이르러 범 한나라당 득표는 25%대에 머무른 여당후보를 압도했다. 이것을 한쪽에서는 대중의 전반적인 보수화로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한미 FTA에 대한 여론이나 파병에 대한 여론 등을 보건데 이는 제대로 된 설명이 아니다. 이명박의 독주현상은 이미 지자체 선거 이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의 지지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환멸과 생활고에 짓눌린 대중이 과거 회고적 성장담론에 포섭되었기 때문이다. 사기를 잃은 참호 안의 병사에게 목숨 보존이 최대의 관심사가 되듯 고용불안과 청년실업,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으로 머리가 아팠던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해줄 희망이 필요했다. 자유주의자들이 집권했던 10년의 손익계산서를 검토한 대중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환멸로부터 이명박의 경제살리기에 희망을 걸었다.

2. 민주노동당의 잘못된 선거투쟁기조

그러면 대중이 보수화되지 않았는데 민주노동당은 왜 동반 몰락의 길을 걸었는가? 첫째, 그건 민주노동당이 날로 고단해지는 대중의 삶의 파탄이 노동을 쥐어짜서 극소수의 인간만이 배를 불리는 자본주의에 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진정한 삶의 개선은 이룰 수 없다는 메시지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민주노동당이 반자본주의 정당, 사회주의 정당으로서 기조를 분명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비참한 현실에 대응하는 급진적 요구를 내걸고 대중의 정치의식을 선도하는데 실패했다. 민주노동당은 수년 동안 그 심각성이 보수언론에 의해서도 제기되었던 비정규직, 빈곤화, 양극화의 문제, 주택, 토지문제 등에서 한 번도 급진적 요구를 내걸고 투쟁한 적이 없다. 그러나 당내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은 민생문제를 외면하면 안 된다는 수준이었다. 민주노동당은 대중에게 다만 필요한 존재 정도로 인식되었다. 세상을 바꾸는 선도세력으로 한 번도 인식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대중은 보수정당 일변도의 정치판에서 진보정치를 내세우는 민주노동당의 존재 필요성을 인정했고, 이를 정당투표를 통해 확인시켜주었다. 그래서 당은 2006년 지자체 선거에서 당지지율의 극적인 하락을 면할 수 있었다. 민주노동당은 대선에서도 막판에 이르러 이 정서, 즉 소금론에 호소했다. “엄마, 민주노동당이 필요해”라는 구호가 이를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딱 한사람만 뽑는 대선은 대중에게 그렇게 여유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지 않는다. 막판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어도 대중은 매몰차게 돌아섰다. 민주노동당은 3%만 필요해, 이것이 엄마의 대답이다.

둘째, 민주노동당은 열우당 2중대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정치적 독자성을 유지하는데 실패해왔다.
혹자는 이번 선거결과, 즉 자유주의세력과 진보진영의 동반몰락을 가지고 87년체제의 몰락이라고 평한다. 하지만 87년체제는 이미 97년도 IMF때 무너졌다. 87년 이후 세상은 바뀌었고, 그 핵심에는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이 있었다. 민주노조가 주도한 임금인상투쟁은 임금상승을 통한 소득재분배의 향상, 이에 따른 내수경기 진작으로 이어져, 이른바 선순환의 시대,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10년을 구가하게 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 부르주아는 IMF가 시작되고, 이 87년체제를 해체시키는 10년 동안 정권을 잡아 자본을 대표하는 주역이 되었다. 10년의 해체과정은 대중들에게 고통스럽고 혐오스러운 것이었고, 이에 따라 집권세력의 정치적 신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87년 7,8월 노동자투쟁의 주역들은 97년 총파업 이후 민주노동당을 건설해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정치적으로 분화했지만 그 분화는 철저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배출되자 이 철저하지 못한 분화는 대중에게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소위 개혁법안과 관련한 여권과의 공조가 계속되었고, 심지어 2중대라는 말까지 등장하면서 신문지상에서는 민주노동당이 범여권으로 취급당하는 일마저 발생했다. 보수언론의 의도적인 분류에 의해 진보개혁세력으로 공히 딱지 붙여진 민주노동당은 대중의 분노가 몰고 온 해일에 속절없이 쓸려갔다. 항간의 표현대로 도매금으로 넘어간 것이다.

3. 대선전략 - 개혁적 대중을 획득한다는 헛된 목표 설정

1) 개혁적 대중은 존재했고 그 획득은 가능했던가?

이미 지자체 선거가 끝난 후에 집권당에 대한 대중의 환멸은 정치적 선택을 마친 상태였고, 그런 와중에 어떤 정치세력도 이를 뒤집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열우당의 패배는 자명했고, 범여권이라고 불리는 세력에게 백약이 무효가 되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이런 사태를 자기에게 편하게 해석하고, 열우당 몰락의 빈공간을 자신들이 채울 수 있다는 환상을 품게 되었다. 이른바 진보개혁세력 대표주자 교체의 꿈을 꾼 것이다. 댐이 터졌는데 본인들은 강가에 앉아서 고기 잡을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사관계로드맵으로 얻어터지고, 한미 FTA로 빰맞고, 이라크파병연장으로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당은 오히려 환상을 키워왔다. 한미 FTA반대여론이 50%를 넘는다는 사실로 지지율을 계산하고, 파병을 반대하는 여론이 집권의 꿈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환상에 깊이 빠졌다. 그러나 이는 환상적일뿐더러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독자성을 훼손하는 독약이 되었다. 개혁적 대중을 결집한다는 생각은 사실상 극소수의 개혁적 자유주의자들과의 연대 이외에 다른 의미가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서 소위 ‘미래구상 좌파’라는 사람들이 명망가들 몇 명을 규합한 것 말고 얼마나 실제적인 주체형성노력을 기울였는지 솔직히 의문스럽다. 몇몇 명망가들과 결합한다고 해서 ‘개혁적 대중’이 얼마나 호응할런 지도 불확실하다. 아니 ‘개혁적 대중’이란 게 과연 있기는 한 것인가? 실제로 존재하는 대중의 대부분은 민주노동당에서조차 희망을 찾지 못한 비정규직과 서민들이다. 미래구상이나 다함께 등이 상정하는 개혁과 진보의 중간지대에서 서성이는 대중이란 실제로는 일부 인텔리들 이상은 아니다.” (해방 25호, 세불리기식 진보대연합은 무의미하다)

2) 무의미한 전술 - 진보대연합

이번 대선에서 진보대연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이루어진 것을 또 하자는 주장과 같았다. 대선을 맞이하여 실제 노동운동, 민중운동세력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처럼 되었다. 새로 출범한 한국진보연대를 비롯해,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등은 일찍부터 민주노동당을 정치적으로 지지했다. 이처럼 진보대연합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진보대연합을 강조했던 사람들은 좌우로 폭을 더 넓혀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지만 주된 흐름은 당의 외연을 확대해 개혁적 대중을 포괄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다.
공식선거일정에 들어가기 직전에 시도되었던 문국현과의 가치연정도 이러한 사고의 연장선에서 제기되었다. 한미FTA에 명시적인 찬성을 표했던 문국현과의 가치연대는 진보대연합이 애초에 설정했던 FTA반대투쟁이나 파병반대투쟁에 동의하는 광범위한 세력을 묶어세우자는 원칙과 어긋나는 행위였다. 이처럼 진보대연합은 대상이 불분명한 구애행위가 되었고, 당은 스스로의 행동으로 진보대연합에서 이탈했다.

3) 개방형 경선

대선후보 선출방식과 관련해 2007년 초를 달구었던 개방형경선, 혹은 민중경선제에 관한 논의는 비생산적인 논쟁, 그 자체였다. 당은 귀중한 시간을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한 정치사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후보선출방식에 매달렸다. 개방형 경선이나 민중경선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주노총, 전농 회원들의 참여를 통해 대중의 관심과 열기를 모아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중의 정치적 지지는 선출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당이 대표하는 정치세력과 정치적 주장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는 민주신당의 개방형 경선이 파리를 날리는 썰렁함으로 치러진 것으로도 입증이 된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은 이미 지자체 선거를 통해 입증되었듯이 집권세력의 동반자로 찍혀 대중의 환멸이라는 해일에 쓸려 내려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당은 자신의 위기를 극복할 적극적인 타개책을 방기한 채 비본질적인 선출방식에 몇 달 동안 묶여 있었던 것이다.

3. 대선후보경선

1) 개량주의적 주장만이 제기된 대선후보 경선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세 후보는 일찍부터 민주노동당내 대선후보군으로 경선을 주도했다. 그러나 경선과정에서 제기된 세후보의 공약과 주장은 기존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되풀이하는 수준이었다. 대중의 절박한 현실에 대해 응답하려는 진지함은 표출되지 않았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경선을 관찰한 사람이라면 이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저들은 살만한 모양이다.” 절박한 현실과 그 현실을 조장하는 자들과 체제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지 않는 진보정당의 후보는 생경함 그 자체였다.

“경선기간 내내 필자는 후보들 중 누구하나 나서서 유세와 토론에서 자본과 인간을 대립시켜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는 자본에 예리한 공격을 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인간을 파괴하는 자본과 자본주의에 맞서 인간다운 삶을 투쟁으로 확보하자는 주장만큼 현재 노동자, 민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주장이 있을까? 투쟁현장과 집회에 가면, 절박한 현실에 몰린 노동자들이 몸벽보와 구호로 거의 통일되어 있다시피 ‘...하여 인간답게 살아보자!’ 고 절규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데, 후보들에게서는 이를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이는 후보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열망과 정서와 크게 괴리되어 있다는 것, 노동자들의 절박한 처지와는 달리 전혀 절박한 위치에 서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방 27호, 한사코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을 회피하는 후보들과 민주노동당)

절박함과 진정성이 떨어지는 가운데 후보들의 대안은 체제내의 개량주의적 주장에 머물렀다. 의정활동을 통해 정책을 포장하는데 능해진 후보들의 화려한 언사는 있었으나, 사태를 정면으로 다루려는 이야기는 빠져 있었다. 현실쟁점으로 세후보 공히 제기한 것은 한미 FTA반대요, 민생문제 정도였다. 그러나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며 거의 과반수 지지를 받고 있던 한나라당과 경쟁관계에 있던 이 당은 민생문제 정도만을 제기해서는 자신이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 같았다.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내지 않고는 지금의 절박한 현실이 바뀔 수 없다는 사실, 새로운 사회운영원리를 제기하지 않고는 대중이 자신들을 다르게 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선투쟁의 핵심은 이것이 아니다. 핵심은 민생파탄,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라는 현상을 거론하며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추상적으로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 대안은 무엇인지를 있는 그대로 폭로하고 제시, 투쟁하는 것이다. 즉, 이들 문제의 원인이 이윤창출과 자본축적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자본주의체제에 있음을 폭로하고(폭로거리는 생생한 삶의 현실에서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그 대안은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하고 자본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우선하는 체제, 사회주의체제를 건설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사회주의로 향하는 과도적 조치를 내걸고 투쟁하는 것이다.(당연하게도 필자가 여기서 말하는 사회주의체제는 구소련과 북한 등 실패한 ‘현실사회주의’가 아니라 실패의 교훈을 반영한 민주적 사회주의체제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열린우리당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대안세력으로 비합리적으로 기대하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민생을 더욱더 극단적으로 악화시킬 세력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것이다.” (해방 27호, 한사코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을 회피하는 후보들과 민주노동당)

이들 자본주의체제와 화해를 도모하는 세력들의 “아름다운 경선”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패배를 촉진시켰을 뿐이다.

2) 사회주의 후보의 배제

결국 자본주의 공격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후보들과 민주노동당은 이를 넘어서 사회주의 후보에 대한 적극적인 배제도 서슴지 않았다. 사회주의 후보를 내걸고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려고 했던 이갑용후보는 어이없게도 대법원과 민주노동당 선관위의 전횡으로 후보 등록조차 거부당했다. 이는 사회주의적 전망, 반자본주의적 전망을 포기한 세력들이 자행한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배제와 공격의 의미를 갖는다. 자신의 노선을 옹호하는 효과적인 길은 자기노선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한 비방과 억압이기 때문이다.

“이갑용동지는 공무원노동자들의 역사적인 투쟁을 지지 엄호하라는 당의 지침을 충실하게 따른 죄(?)로 노무현 신자유주의정권이 주도하는 독재사법권력에 의하여 징역10월에 집행유예2년형에 처해진 바, 이는 고도로 계산된 현정권의 좌파운동에 대한 공격이다. 이갑용동지는 반자본 반제반전을 주창하는 좌파 대통령후보로서의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의 이갑용동지 배제에 대해서도 다음같이 말할 수 있겠다. ‘민주노동당의 이갑용 후보등록 거부는 사회주의 후보에 대한 계산된 공격이다. 이갑용동지는 세 후보와는 분명하게 차별되는 반자본 반제반전을 주창하는 사회주의 후보로서의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것이다. 이는 노동자정체세력화라는 창당정신으로부터의 명백한 퇴보이다.” (해방 26호, 이갑용후보 등록거부는 민주노동당의 퇴보이다)

4. 대선후보와 공약

1) 가장 오른쪽의 후보가 대선에 나서다

권영길후보가 오른쪽에 있다는 대표적인 예중의 하나가 당내 경선 때부터 들고 나온 진보적 성장론이다. 진보정당의 후보가 성장론을 들고 나옴으로써 당내 사람들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경선과정에서 타후보진영에서는 진보정당의 후보가 성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충정어린 건의까지 했지만, 권영길 후보는 이를 고집했다. 진보적 성장론은 당내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당의 대선공약에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음에도 후보의 입을 통해 계속해서 주장됐다. 3차 TV토론에서 권후보는 진보적 성장론을 아주 명확히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민주노동당 후보의 정체성을 흔들었을 뿐이다. 토론회에서조차 보수후보로부터 분배를 주장하던 후보가 성장을 말하는 것은 요즘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냐는 힐난마저 들을 정도였다.

2) 후보경선에서 드러난 자주파의 종파적 행위

자주파는 이번 대선후보 경선에서 자신들의 후보를 내세우는데 실패하자, 자신들의 종파적 이해, 즉 당내 지배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권후보를 옹립했다. 뿐만 아니라 경선과정에서 타후보에 대한 정치적 음해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종파적 행태는 심각한 대선후유증을 낳았다. 사실상 많은 당원들이 선거운동에 마지못해 참가했고, 선대위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3) 사민주의 강령으로 일관한 대선공약

민주노동당 대선공약은 현실에 대한 정직한 응답이 아니었다. 사실상 70년대에 모두 현실의 벽에 부딪쳤던 사민주의 강령으로 일관하고 있고, 급진적 요구는 아예 등장하지 않고 있다. 현실에 정직하지 않은 정치적 호소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조봉암의 진보당이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주장에 맞서 평화통일을 제기했을 때, 휴전협정이 발효되고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감히 평화라는 말을 꺼내기도 겁나는 상황에서 진보당은 평화통일을 앞세워 이승만 정권을 위협할 정도의 민중의 지지를 얻었다. 분단과 전쟁을 앞세워 억압체제를 정당화하는 이승만 정권에 맞서는 본질적 요구는 평화통일 요구였기에, 용기 있고 정직한 주장을 한 진보당은 민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10년 전 과잉생산 공황(과잉투자는 과잉생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을 경험했던 한국사회다. 그후로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가치를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비정규직을 늘리고, 150조가 넘는 돈을 기업회생에 탕진하고도 아직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 타령으로 날밤을 지새우며, 해마다 몇 명씩 노동열사가 등장하는 나라에서 무엇이 본질적 요구일지는 자명하다. 노동자의 목숨, 노동자의 건강, 그리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날로 집어 삼키며 배가 터져가는 외국주주들, 은행들, 그리고 재벌들로 이어지는 한 다발의 도둑놈들을 몰아내는 것이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개선할 방도이다.
서민지갑채우기, 서민친구(7.9)경제, 400만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 당면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이라고 내놓은 민주노동당의 대선공약은 감동도 열정도, 그리고 지배계급이 느끼는 서늘함도 없는 그저 그런 요구다. 이는 사회위기에 대한 정직한 답변이 아니다. 서민들의 소득보전책이나 복지확대에 대한 내용은 절박한 해결책으로서 유효하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기위한 방도로서 공장과 병원과 대학교 등을 사회가 소유해야 한다는 식의 급진적 요구와 결합하지 않을 때 그것은 단지 인기 있는 정책의 나열로 끝나기 마련이다. 민주노동당은 대선기간동안 실현 가능성이 적은 정책을 내는 정당으로 여겨지긴 했지만, 급진적 주장을 펴는 위험한 자들은 절대 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의 대선공약에는 자본주의 체제와 그 운영원리를 벗어나는 급진적 주장이 등장하지 않았다. 급진적인 요구로 그나마 눈에 띄었던 택지국유화는 쟁점으로 만들지 못했다.

4) 당내분란의 원인만 제공한 민족주의 강령

권영길 선거캠프는 경선승리의 축포로 코리아 연방공화국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고려연방제라는 통일방안은 이제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국가비전으로 격상되었다. 17대 대선공약집을 통해 자주파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진보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사회라는 명확한 언사로 자신들의 강령을 표현했다.
민주노동당이 밝힌 5대 선거전략에도 이번 대선에서 첫 번째로 차별화된 국가비전을 제시하겠다고 하며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내세웠다. 코리아 연방공화국은 민주노동당에 떨어진 폭탄이었다. 이것으로 선거과정에서조차 당내 갈등이 폭발지경으로 치달았다. 북핵문제에 대해 당내 이견으로 결의문 하나 채택하지 못했던 사태가 되풀이 되었다. 대중들의 관심과 동떨어지고, 심지어 극우후보들에게 비방의 대상도 되지 못한 코리아 연방제를 가지고 사생결단을 한 곳은 민주노동당이 유일했다.

5. 선거운동방식과 조직

1) 자족적인 동원정치 100만 민중대회

100만 민중대회는 권영길후보 캠프에서 제기한 선거운동의 핵심이다. 선대위원회에 따르면 만인보에 이은 100만 민중총궐기는 선거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줄 것이었다. 영호남에 집중된 후보의 만인보는 “전략지역의 당조직이 일렁이게” 될 것이며, 100만 총궐기를 통해 선거판도가 바뀌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10만도 모이지 않은 백만총궐기는 예년에 벌어진 민중대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전략지역의 당조직도 일렁이지 않았으며, 당내 경선에서 보여준 특정정파의 종파적 밀어주기의 여파로 당조직 가동은 반쪽에 불과했다. 100만 민중대회가 빼앗긴 이슈를 되찾아 올 것이라는 기대도 충족되지 않았다. 선거판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100만이란 숫자는 87년대선에서 여의도 집회나 92년 보라매 집회를 연상시킨다. 87년 민주혁명의 여파는 대선에 광기에 가까운 대중적 자발성을 끌어냈다. 민주노동당은 다시 필름을 87년으로 92년으로 돌려댔다. 그리고 100만 총궐기를 대중투쟁과 선거투쟁을 결합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대중투쟁과 선거투쟁이 동시적으로 결합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프랑스에서 1936년도에 500만명이 파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전에 인민전선의 선거승리가 대중에게 자신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1980년도에 브라질 피티당의 대선에서의 선전은 상파울루 산업벨트지역의 성공적인 총파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선거와 대중투쟁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를 자극하기 마련이다. 최근년 대중투쟁의 부진을 충분히 목도했던 민주노동당이 인위적인 100만동원의 계획을 세우고, 이를 통해 선거구도를 바꾸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순진한 발상이자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다.

2) 새로울 것이 없었던 선거운동 방식

민주노동당의 선거운동방식은 구태를 반복했다. 엄동설한에 길거리에서 로고송을 부르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행인들에게 절하는 선거운동이 민주노동당의 주된 선거 캠페인이되었다. 미디어 홍보에서도 구태가 그대로 반복되었다. 선거자금의 부족으로 언론매체를 거의 이용할 수 없었고, 정치광고의 내용도 삼성문제나 노무현 찍어서 후회된다는 내용으로 도대체 개념이 잡히지 않는 메시지였다. 거리유세에서는 집회문화가 선거운동에 그대로 차용되었다. 창당초기에 이런 방식이 대중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겠지만, 지나가는 행인을 1분도 잡아놓을 수 없는 지금의 거리유세방식은 효과를 가늠할 수 없는 선거운동이었다. 브라질 PT당의 선거운동을 연수했던 당원들이 감동했던 인상 중의 하나는 유세에서 보여주는 축제 분위기였다. 유권자들은 PT당의 문화행사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공급받는 서비스를 누렸다. 이것은 당내외의 문화역량을 조직하는 능력, 기획능력에 달려 있다. 민주노동당은 수차례의 선거운동을 진행했으면서 그러한 역량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계급투표를 강조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가동된 현장분회의 활동은 보고되지 않고 있다. 현장분회를 해체하고 지역분회로 전환하는 것이 노동자 밀집지역인 울산과 창원의 대세였다. 지역활동을 그토록 강조했지만 지역에서 무상교육이나 무상의료 등을 가지고 운동주체를 조직한 사례 또한 보고되지 않았다. 따라서 대선 때 가동할 지역조직은 청년회 정도에서 제한되었다. 10만당원의 조직력을 활용할 수 있는 당원의 편재도, 당원들의 정치적 활동성 제고도 마련되지 않았기에 선거운동방식은 보수정당과 큰 차이 없이 진행되었다.

3) 당원의 자발성을 끌어내는데 실패한 선거운동

일부 당원들이 선거투쟁에 열심히 결합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선의 후유증으로 당원들의 참여에서 2002년에 비해 오히려 후퇴를 했다. 예를 들어 과반수에 육박했던 특별당비납부율도 10%대에 머물렀고, 당원의 선거운동 참여도 지지부진했다. 특히 종파적인 선거운동과정에서 실망한 많은 당원들이 방관하는 자세를 취한 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동안 분회활동 참여당원이 극적으로 증가하지도 않았고, 당원의 교육과 훈련이 특별히 제고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귀결이겠으나, 대선에서 나타난 무기력과 냉랭한 분위기는 당운영의 난맥을 보여주는 사례다.

6. 대선투쟁 과정에서 일어난 자충수들

권영길후보는 당선되자마자 현충원을 방문하고, 중소기업 단체를 방문해 친기업정당을 표방함으로써 급진적인 노동자정치를 강화하기는커녕 이미 취약해진 진보정당의 정체성마저 흔들어버리는 행보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노총에 대한 사과파문이 벌어지면서 계급투표 전략과 반대의 길을 갔다.

“한국노총에 대한 공식 사과는, 어용과의 투쟁으로 성장해온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당으로서의 당의 발전에 기여해온 모든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감과 배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한국노총에게 자존심까지 다 퍼주면서 대선에서 그들의 외면을 모면해보겠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노동악법 도입을 도모한 반노동자적 집단에게 팔을 벌리는 순간, 그 때문에 고통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당을 외면할 것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이치를 당 지도부는 정작 몰랐단 말인가!” (해방 28호,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한국노총에게 용서를 구하는 당은 누구의 당인가)

그리고 이 와중에 최고위원회가 보여준 모습은 우왕좌왕 그 자체였다.

“사실상 이 문제 하나 가지고 당 최고위원회는 네 차례에 걸쳐 회의를 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가게 된 것은 최고위원들에게 사과 철회에 대한 의지가 극히 박약한 반면,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에 대한 매우 강한 집착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 대표가 한국노총에 했던 사과는, 애초에 한국노총이 ‘민주노동당이 공식 사과를 하고 그것을 전제로 정책연대 대상 후보에 포함시킨다’는 요지의 공문을 보내온 이후 이뤄진 것이었는데, 당 대표는 “자신의 사과와 정책연대가 무관하다”고 하며 너무도 뻔한 사실을 아니라고 우기는 억지 주장을 계속했었다. 이런 당 지도부의 상태에서 최고위원회는 사과 철회와 정책연대와 관련한 지리멸렬한 회의를 거듭하게 되었고 명확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었다. 이렇게 사태를 명쾌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사이 항의와 규탄 성명은 계속 되었고, 급기야 분노한 노동자들과 당원들이 당사 앞에서 당 지도부 규탄집회를 하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에 이르러서야 최고위원회는 비로소 ‘사과 철회’를 결정했다.” (해방 29호, 한국노총 사과사태와 더욱 깊어져 가는 민주노동당의 위기)

결국 한국노총이 이명박을 지지하는 결정을 하자, 민주노동당은 참으로 쑥스럽고 민망한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결론

대선투쟁을 평가하며 패배의 원인을 불리한 객관적인 조건으로 돌리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양극화, 빈곤화 심화, 비정규직 증가 등의 객관적 조건은 민주노동당이 반자본주의 정당으로 확실히 자리 잡고 있었다면 유리한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정체성의 혼란과 우경화 행보로 이러한 호조건이 오히려 불리함이 되었던 것이다. 개혁진보세력의 대표자임을 부각시켜 보려는 관념적인 사고에 빠져 노무현정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수 있도록 진보대연합이니 개방형 경선제를 시도했던 민주노동당으로서는 노무현정부의 실정에 분노한 대중의 마음을 읽는데 실패했다. 2중대는 1중대와 운명을 같이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에서 실패한 원인은 민중들의 고통의 근원인 자본주의를 제대로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의 폭로와 대안의 제시라는 기본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이를 결정적으로 방해한 것은 민족주의 강령에 머물러 있는 지도부다. 뿐만 아니라 사민주의 수준에서 대안을 제출하고, 당이 이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저지해왔던 개량주의 세력도 만만치 않은 기여를 해왔다.
당은 현실에 조응하는 데 실패했다. 현실에서 대중이 겪는 고통과 눈물을 외면했다. 그리고 정직한 대안, 급진적인 대안을 제출할 용기가 없었다.

“민주노동당은 대선시기를 맞이하여 파산했다. 상근자 월급을 못주어 재정적 파산에 이르렀지만 이제 정세와 시대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함으로서 정치적 부도 상태에 빠졌다.” (해방 29호,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는 민주노동당에겐 대선에서 정치적 파산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선택은 자명하다. 자신의 역사적 가능성을 소진(해방 30호, “사회주의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참고)시킨 민주노동당의 한계를 직시하고,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정당의 건설만이 도탄에 빠진 노동자 민중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투쟁의 의지와 영감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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