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2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총선활동, 어떠했는가?

선전인가, 몰락인가?

18대총선에서의 진보정당들의 성적표를 보고 언론, 여론은 진보의 위기와 몰락이라고 표현하는데, 정작 주체 자신들은 이에 개의치 않는 듯하다. 강기갑 의원이 여당 실세를 누르면서 지역구를 돌파하고, 권영길 의원은 재선에 성공하고, 노회찬, 심상정 전 의원이 수도권에서 돌풍을 일으킨 점에서 나름대로 선전했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그러나 4년 전에 비해 의석수는 반토막나고, 정당지지율은 13%에서 둘이 합쳐 8%로 떨어진 형편을 두고, 선전이니 분패니 하는 것은 너무나도 후한 평가인 것 같다. 선전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의 말인즉, 사회가 전반적으로 보수화되고 있는 정세에서 진보의 후퇴는 어쩔 수 없는 조건이고, 진보정당들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의 후퇴는 사회가 보수화된 결과가 아니라, 노무현-열우당 자유주의세력이 민생파탄을 초래한 무능력한 세력으로 낙인찍힘으로써 몰락하고, 이에 자유주의세력을 대체할 대안세력으로 스스로를 차별화해내지 못하면서 동반몰락한 진보세력 자신의 무능력 때문이다(해방30호, “운동주체 위기시대를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로 돌파하자” 참고). 그리고 이번 총선은 지난 대선에서 확인된 소위 진보개혁세력의 동반몰락이 재확인된 것이다.

한편 보수정당들과 별 차이없는 이미지 호소, 인물 중심의 선거운동을 펼쳐놓고는, 이를 두고 ‘최선’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진보정당이라면 무릇 선거공간을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폭로하고, 진보적 대안을 선전하며, 그 가운데서 당원들을 정치주체로 키워내는 장소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이러한 활동들은 고사하고, 4년 전 총선에서의 무상의료, 무상교육과 비견되는 진보적 의제의 이슈화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저 진보 이미지 우려먹기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번 총선결과를 두고 ‘선전’ 운운하는 것은 패배의 주체적 원인과 진지하게 대면하지 않으려는 자기위안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대선참패라는 반성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자유주의세력과의 동반몰락 추세를 극복할 어떤 방책도 내놓지 않고, 진보의 정체성에 걸맞은 고유한 선거운동도 전개하지 못한 진보정치는 몰락한 것과 다름 아니다.


진보정치의 몰락과 2중대 노선

2006년 지자체선거, 2007년 대선, 이번 총선 등 주요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민생파탄을 야기한 자유주의세력을 심판해왔다. 그런데 특징적인 것은 자유주의세력 심판의 반사이익을 한나라당-이명박이 독점해왔다는 것이다. 진보세력은 반사이익을 보기는커녕 반대로 자유주의세력과 함께 동반몰락해왔다. 이는 민심이 자유주의세력과 진보세력을 별개의 세력들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고 무능력한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진보는 보수/진보개혁 구도 속에 갇혀, 소위 진보개혁세력 내의 다소 급진적인 분파로만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대중들이 자유주의세력과 진보세력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착시가 아니라, 스스로를 차별화해내지 못한 진보세력의 무능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4년 동안 의회활동과 원외활동, 대중투쟁을 창조적이고 급진적으로 결합하여 신선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개혁입법이라는 명분으로 열우당과 정책공조를 하거나, 열우당이 법안을 내놓으면 좀 더 왼쪽의 수정안을 내놓는 등의 보수정당과 별 다를 바 없는 의정활동만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열우당 2중대’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며 노무현-열우당과 나란히 추락했다. 특히 비정규직악법, 노사관계 로드맵 통과과정에서 보여준 투쟁전선을 교란한 모습들은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존재이유를 저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열우당 2중대 노선으로 대선참패 등 쓴맛을 톡톡히 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이번 총선에서도 동일한 오류를 반복했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씩만 들어보겠다.

먼저 민주노동당을 보면, 그 비례대표 후보들이 진보정당, 노동자정당이라는 정체성에 거의 부합하지 않았다. 몇몇은 진보정당운동에서 활동한 역사도 없을 뿐더러,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을 지지했던 사람, 2006년 지자체선거 때 강금실을 지지했던 사람, 아예 미래구상이라는 자유주의 단체를 주도했던 사람이 후보였다. 이제는 당의 얼굴까지 자유주의세력 2중대화 된 것이다.

한편 심상정 전 의원은 민주당 후보가 단일화 제안을 하자, 그 다음날 “한평석 후보의 후보단일화 제안을 환영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서까지 내며 반겼는데, 그 명분이 ‘한나라당 개헌선 확보 저지’, ‘한반도 대운하 저지’였다. 개헌선 및 대운하 저지는 바로 민주당의 선거슬로건이기도 했다. 심상정 전 의원은 반한나라당 연대의 2중대를 자처한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똑같은 자본가정치세력이라는 것은 10년의 김대중-노무현 신자유주의 정권과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 과정을 통해서 정리된 공리이다. 각종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함께 밀어붙인 세력들을 저지세력과 연대세력으로 나누는 것은 진보정치의 시계를 되돌리는 퇴행정치에 불과하다. 결국 단일화에 실패하고, 민주당에게서 “선거에서 연대는 노선과 가치에 근거해야 한다”는 충고까지 들으며, 심상정 전 의원은 개인의 수모뿐만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의 수모를 샀다.


경제대안의 부재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18대총선 활동에서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바로 경제대안의 부재였다. 경제대안은 민생파탄의 원인에 대한 규명과 밀접한데, 두 당 모두 한국경제 침체의 원인은 무엇이고, 왜 노동자, 민중의 삶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폭로가 없었고, 따라서 이명박의 ‘7%성장론’에 비견되는 국가적 경제대안도 없었던 것이다(문창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찍을 이유가 없다” 참고).

그런데 민생파탄의 원인에 대한 폭로와 경제대안의 제시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 대중들은 민생파탄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자유주의세력의 무능함과 이념성이 야기한 것이고,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무언가 능력이 있는 것 같은 대안세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민생파탄을 야기한 똑같은 자본가정치세력이며, 민생파탄의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다는 점이 대중적으로 폭로돼야만 한나라당에 대한 왜곡된 지지구조가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자본가정치세력과는 명확하게 차별화된 경제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진보세력은 스스로를 대안세력으로 높여낼 수 있는 것이다(해방23호, “사회주의, 진보세력의 경제대안” 참고).

하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자본주의에 대한 폭로도 하지 않았고, 책임있는 경제대안도 제출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정책공약집에서 “한국의 경제 구조를 비롯한 사회 구조 전반에 대한 전환적 대안의 모색이 절실”하다고 옳게 지적하면서도, 어이없게도 이어서 “민주노동당 혁신의 근본 방향 또한 사회에 대한 종합적 대안의 제시”라며 대안의 제시를 이후의 과제로 미루고 있고, “저항도 대안의 하나”라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했다.

그리고 진보신당은 이보다 더한데 아예 총체적인 대안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흥미롭게도 진보신당 정책공약집에는 그 흔한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서는 노자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한 실현을 추구하는 사회연대전략 같은 정책들을 잔뜩 나열해 놓았다. 사실 자본주의는커녕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폭로조차 않는 것은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사회연대전략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협상파트너의 치부를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진보신당이 일자리와 빈곤 문제를 말하면서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노동시간변형제 폐지 등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조차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은 것은 언어도단이다.


보수 대 진보가 아닌 자본 대 반자본 구도를 형성해야 한다

18대총선에서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자유주의세력과 차별화된 민생문제 폭로도, 경제대안 제시도 없는 자유주의세력 2중대 노선을 극복하지 못해 몰락했다. 여전히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구조는 견고하고, 진보정당은 더 밀려났다. 이러한 진보정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이웃사촌마냥 자유주의세력 왼편 정도에 위치지울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세력과 명확하게 갈라치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자신을 보수, 개혁으로 일컫는 세력들이 민생파탄을 야기하는 똑같은 자본가정치세력임을 폭로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물론 자본주의 체제와 정면대결하는 세력으로 자신을 정립해야 한다. 보수 대 진보가 아니라 자본 대 반자본 구도를 형성해야 한다. 손학규도, 유시민도 진보라고 떠드는 세상에 누가 진짜 진보니, 대표 진보이니 해봐야 함께 몰락할 뿐이다.

진보정치의 몰락으로 최근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어정쩡한 진보의 재구성이 아니라 반자본주의 세력의 새로운 결집과 정립만이 진보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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