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3호] 진짜 광우병에 걸린 건 소가 아니다

일용할 양식에 내린 저주. ‘광우병 쇠고기’ 때문에 타오른 촛불이 뜨겁다. 그래서 지금이 늦봄인지, 초여름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청와대가 촛불에 포위되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혁명전야 같다. 허풍이 아니다. 다만 저 신성한 포위망이 부정한 폭력에 의하여 무참하게 무너지지 않을까 두렵다. 모쪼록 그 포위망이 더욱 견고하게 구축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문득 백여 년 전, 러시아 전함 ‘포템킨 호’ 수병들의 ‘일용할 양식’에 내린 저주를 떠올려 본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군이 연전연패하여 위기에 몰리던 1905년 6월 어느 날 아침. 검은 물결이 사납게 울부짖는 흑해 북쪽 연안에 커다란 전함 한 척이 떠 있었다. 러시아 흑해 함대의 주력선인 전함 포템킨 호였다. 그날 아침. 전함 안에서 소란이 일어난다. 아침 식사에 쓸 고기에 구더기가 득시글거리는 것을 당직 수병이 발견한 것이다. 몰려든 수병들이 한마디씩 내뱉는다.

“개도 안 먹겠군. 일본군에게 잡힌 포로도 우리보다는 잘 먹겠어.”

그때 군의관이 와서 고기를 살펴보고 말한다.

“이건 단지 구더기일 뿐이다. 소금물로 씻어내면 돼.”

수병들이 항의를 하자 군의관은 다시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그건 질 좋은 고기다. 더 이상 군소리 하지 마.”

장교들의 명에 따라 취사병은 결국 구더기가 득실대는 고기로 수프를 끓였다. 하지만 분노가 치민 수병들은 ‘구더기 수프’를 거부하였다. 심상치 않은 선내 분위기를 보고 받은 함장 골리코프는, 수병들을 모두 갑판 위로 모이게 한다. 도열한 병사들과 장교들을 향하여 그는, 스프에 불만이 있는 자들을 협박한다. 그러자 수병들은 동요하며 포탑 주위로 모였다. 다만 십여 명의 수병들만 무장한 근위대에 밀려 뱃전으로 분리되었다. 함장은 분리된 수병들에게 방수포를 뒤집어씌우게 하고 외친다.

“네놈들을 개처럼 쏴 죽이겠다.”

역설적이게도 반란에 미처 합류하지 못한 수병들이 처형당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근위대의 총구는 방수포 속에서 꿈틀거리는 병사들을 향하였다. 발사 명령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수병 바클린슈크가 거총한 근위병들에게 외친다.

“형제들이여, 누구를 쏘려 하는가?”

근위병들은 총 잡은 손을 떨었다. 바클린슈크는 또 동료들에게 총을 잡자고 외쳤다. 용기를 얻은 병사들은 달려들어 장교들을 한 명씩 바닷물에 집어던졌다. 상황은 순식간에 반전되어 몇 분 만에 병사들은 전함을 통째로 점령하였다. 승리감에 도취한 병사들이 외쳤다.

“우리가 이겼다!”

그들은 이겼다. 하지만 봉기에 첫 불씨를 당긴 바클린슈크는, 난폭한 부함장이 쏜 총탄에 맞아 희생되고 말았다. 저항의 물꼬를 터주고 자신은 고결하게 희생된 바클린슈크. 수병들은 그의 유해를 인근 오데사 항 해안으로 옮겨, 임시 천막에 안치하였다.

포템킨 호 수병들의 봉기는 오데사 시민들에게 알려졌다. 오데사는 흑해 북쪽 해안에 있는, 남러시아 최대의 항구도시다. 1875년에 이미 ‘남러시아 노동자동맹’이 결성될 만큼 일찍부터 러시아 혁명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그런 혁명도시 오데사 시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해안으로 몰려들어, 고기스프 한 그릇 때문에 죽은 바클린슈크의 희생을 애도하였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계단 위쪽에서 총성이 울린다. 계단에 서있던 추모객들 몇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봉기를 우려한 차르 군대가 무차별적으로 총질을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계단 아래로 도망치는 시민들을 향하여 연거푸 총성이 울려 퍼진다. 시민들은 풀잎처럼 쓰러진다.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부여안고 절규하는 어머니의 가슴에도 총탄이 박힌다.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백주대낮에 벌어진 그 참혹한 광경에 오데사 시민들은 오열하였다. 그리고 이후 속속 혁명 대열에 가담하게 된다. 그로부터 10년 남짓 세월이 흐른 뒤, 마침내 제정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1917년의 일이다. 그 혁명을 지도한 레닌은 말했다. ‘역사에 기록된 전쟁 중 유일하게 합법적이며 정당한 것은 혁명’이라고. 그런데 혁명이 정당한 진짜 이유는 ‘일용할 양식’에 저주 받은 백성들이 생존을 위하여 취하는 마지막 행동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러시아 전함 포템킨 호 사건은 ‘일용할 양식’에 대한 저주에서 비롯되었다. 황제의 군대에 속한 병사들도 저주받은 밥상에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백여 년이 지난 서기 2008년, ‘광우병 걸린 소의 시체를 밥상에서 마주해야 하는 코리아의 백성들도 ‘일용할 양식’에 저주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주의 주술(呪術)을 풀기 위하여 촛불을 들었다. 참으로 장엄하고, 신성한 축제다.

그런데 주술을 풀기 위한 주문(呪文)이 참 이상하다. ‘고시(告示)’를 철폐하고 ‘재협상’을 하란다. 뒤집어 말하면, 검역권을 보장하고, 광우병 위험이 없는 젊은 소의 시체를 뜯어먹게 해달라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기본권을 가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밥상의 안전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그래서 그 요구는 백번 타당하고 신성하다.

하지만 지난 시절, 마치 똥을 싸듯 한미FTA를 내지른 노무현 정권의 후예들이 덩달아 정의의 사도인 양 “재협상”을 외치며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참 뻔뻔하다. 신자유주의에 미쳐서, 미친 소의 시체가 들어오도록 애초에 ‘저주’의 길을 열어준 통합민주당인가, 뭔가 하는 그 족속들이야말로 석고대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신성한 촛불축제의 마당에 웃기는 무리가 또 하나 있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자칭 ‘진보세력’들이다. 바로 지난해까지 세계화에 반대하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며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외치던 그들이 지금은 “쇠고기 재협상”을 외치고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에 이명박 정권이 정신이 번쩍 들어서 쇠고기 재협상이 이뤄지고, 광우병 위험이 제거되면 그다음엔 “이명박 잘했다”며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에 지지를 보낼 것인가? 아니면 “재협상 무효”를 외칠 것인가?

바로 엊그제 일도 잊어버리고, 바로 내일 빚어질 곤혹스런 상황에도 마음 편한 그들이 참 부럽다.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를 낳았고, 신자유주의는 자유무역협정을 낳았으며, 그 자유무역협정이 결국 광우병 쇠고기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용할 모든 양식에 저주를 내린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단 말인가.

어쨌든 촛불이 타오르니 밝아서 좋다. 저 ‘어둠의 자식’들은 물대포를 쏴대지만, 그리 쉽게 꺼질 촛불은 아닐 듯싶다. 이명박과 그 하수인들은 참 바보다. 그리고 귀머거리들이다. 미국 측에 싹싹 빌어서, 광우병 위험만 없도록 재협상을 하면 촛불은 저절로 꺼질 터인데. 더불어 국내 축산 농가에 몇 푼 쥐어주면 금상첨화인데. 그러면서 “이건 단지 구더기일 뿐이야, 소금물로 씻어내면 돼.”라고 하면서 또 한 번 위대한 사기극을 펼칠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물론 탐욕과 협잡에 이골이 난 그들이 어째 이 좋은 기회를 모르겠는가. 뭉개고 뭉개다가 못이긴 척 재협상하여 광우병만 막아주면, 골치 아픈 한미FTA 반대분위기도 저절로 수그러들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세력 쯤 가볍게 밀어버릴 명분도 얻게 될 것을, 영리한 저들이 어찌 모르겠는가. 그걸 모른다고 타박하는 내가 진짜 순진한 게지. 하지만 순진한 나도 이것만은 안다. 진짜 광우병에 걸린 건 소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속해 있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것을. 그래서 탐욕스러운 식성으로 말미암아 뇌에 구멍이 송송 뚫린 자본주의라는 게 머지않아서 퍽퍽 쓰러져갈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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