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3호] 투쟁의 거점을 현장으로 확대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투쟁을 요구한다

위협받는 민주노총의 민중운동내 대표성

촛불집회가 한 달이 넘게 지속되면서,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주를 이루면서, 민중운동 내 최대의 동원력을 가지고 있던 민주노총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조직된 노동자들의 참여가 시위의 양상을 바꾸고, 사태를 변화시켰던 일은 옛일이 되어버렸다. 이는 5월1일 메이데이 집회의 심드렁한 분위기와 다음날 시작된 촛불시위의 활기찬 난장을 비교하는 것으로도 극명히 드러난다. 자유발언이 실종된 형식화된 집회에서 보여주는 노동자들의 수동성과 중고등학생들이 보여준 자발성과 발칙함을 비교하는 것으로도 노동자가 5월반란의 주역이 될 수 없었음을 설명해준다. 이명박의 등장이 노동자에게 재난이라는 말은 수없이 많았지만, 이를 타개하기 위한 행동은 조직되지 않았다. 이러한 부진과 무기력은 지난 수년간 민주노총이 사회적 합의 운운하며 대중의 수동성을 조장한 탓도 있고(상층에서 협상으로 알아서 해준다는데 나설 이유가 없지 않은가?), 거의 유일한 투쟁동력이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어린 투쟁에 효과적으로 연대해 승리한 경험도 축적하지 못했던 탓이기도 하다. 노동자 대중이 스스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나서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6말 7초 투쟁은 민주노총을 선두로 나서게 할 것인가?

민주노총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 공기업 사유화, 대운하, 기름값과 물가폭등 저지 등을 목표로 6말 7초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요구를 보아서는 이번 투쟁이 촛불시위로 조성된 유리한 정세를 노동자 대중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일단 투쟁의 요구부터가 정세를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뒤따라가고 있다. 요구의 내용은 반한나라당 전선에 복무하는 것이고, 진행되고 있는 건설운송과 화물연대의 투쟁을 쫒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민주노총의 적극적인 자기 역할을 위한 노력이 사실상 빠져 있다는 면에서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특히 한미 FTA 저지가 빠진 것은 사실상 통합민주당과 노무현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이다. 열우당 2중대, 사회적 합의의 망령이 아직도 민주노총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 또한 일찍부터 사회임금(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이 민주노총의 주요한 요구였음에도 사회임금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이때 이러한 요구가 빠져 있는 것도 정세를 주도하겠다는 의지의 실종을 반영한다.

민주노총의 대표성은 행동에 나서는 대중에게서 나온다. 이제 대중이 행동에 나서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자신의 생각과 투쟁방향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1조가 노랫말로 만들어졌는데, 민주노총도 조합원이 주인이다. 주인에게 주인 된 말을 하게 해야 한다.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에 관한 방침이 거론되지만, 정말 중요한 직접 민주주의를 조합 내에서 구현하지 않으면 민주노총 또한 낡은 세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먼저 닫힌 공장의 문을 열어라

68년 프랑스 5월 혁명은 소르본느 대학이 개방되면서 노동자들이 합류해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의 자기 요구가 대중에게 조금씩 설득력을 갖기 시작했지만 촛불에 몰린 대중과 노동자들은 아직도 강력하게 연대하고 있지 않다. 그런가하면 조직된 노동자들은 답답할 정도로 조합관료들의 통제에 머물거나, 혹은 조합관료들에게 의존적이다. 현장토론회가 사라진지 오래고, 총회가 총투표로 대체되면서 조합원들의 직접민주주의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유발언대가 이제는 촛불의 광장에서 노동현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러시아 혁명기에 전쟁지속을 주장하던 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는 노동자를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자, 노동자들은 수도 주둔군 병사들을 공장으로 초청했다. 거기에서 노동현장의 실상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당함을 증명하고, 병사들과의 우애를 쌓아갔다. 지금 공장의 문은 대중에게 열려야 한다. 노동자 대중의 요구가 모두가 살 수 있는 보편적인 요구임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는 선도적인 행동과, 지금 행동하고 있는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공장의 문을 여는 방법은 노동자 대중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시위의 거점을 노동대중이 창출할 때 가능하다. 도심뿐만 아니라 공단과 도심외곽에서 저항의 새로운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 이럴 때만이 6월의 정세에서 민주노총이 더 이상 시위대의 뒷자리를 맴도는 처지를 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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