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4호] 고유가와 자본주의의 파괴적 본성

얼마 전 한 지역의 동지들과 있었던 가벼운 토론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이 토론의 주제는 고유가의 원인은 어디에서 왔는가였다. 한 동지는 투기자본이 원유시장에 몰리고 사재기 등의 요인으로 유가가 급상승했다고 했다. 그 논쟁에서 필자가 취했던 포지션은 공급의 축소와 수요의 확대, 소위 피크오일이라는 입장이었다. 이 논쟁에서 전자는 일년만에 두배로 뛴 유가를 근거로 들었고, 필자는 장기적인 공급축소와 생산성 하락을 근거로 들었다. 결국 이 토론은 답을 내지 못한 채 정리되었다.

자본가들도 유가 상승의 원인에 대해서 쉽사리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최근 ‘이코노미스트’ 한국판 942호(2008.06.24)는 고유가 관련기사를 통해 유가가 2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근거는 “비싸진 원유생산 비용으로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이 감소하기 때문”임) 골드만 삭스의 주장과 “내년엔 배럴당 120~130달러 선인 현재 유가가 그 절반인 60~70달러 선으로 급락 조정될 수도” 있다는(근거는 투기자본과 중국의 수급요인급락임) 삼성경제연구소의 주장을 소개하였다. 전반적인 기사의 기조는 후자의 견해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자본가들 역시 유가상승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을 보여주었다.

고유가의 장기적 원인으로서 피크오일(Peak Oil)

사실 고유가의 원인에 대해서는 어떤 것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즉 투기자본이 달러화 가치하락, 금융시장의 붕괴 등의 요인으로 원자재시장으로 많이 이동하였다는 것은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투기자본 원인론은 자본주의의 파렴치함을 폭로하는데 용이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다른 측면, 즉 석유자원의 고갈과 이로 인한 공급감소라는 장기적이고 더 파괴적이며 본질적인 측면에 비하면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원유의 가격이라는 측면만 보면 단기적인 급상승이 있었지만, 이미 1998년 이후 유가는 지속적인 상승국면에 있었으며, 2007년까지 400%이상이 상승하였다. 따라서 장기적 가격상승 국면에 투기자본이라는 요인이 부가된 것이 현재의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원유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부 비관론자들의 경우 이미 피크오일에 접어들었다고 할 정도이며, 이미 2005년부터 하루 8500백만 배럴 선에서 더 이상의 생산확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07년 세계에너지전망’ 보고서는 2030년까지 1억1630만 배럴/일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하고 있고, 미 에너지 정보국 또한 2030년까지 1억1170배럴/일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러한 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는 1년 반만에 자신의 입장을 대폭 수정하여 ‘석유공급 장기전망’에서는 1억배럴/일 이하로 낮출 것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피크오일의 근거는 유전의 낙후화, 새로운 유전개발의 난관 등 무수히 존재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산유국이 이미 석유생산량의 정점을 지난 상태이다. 따라서 이러한 석유자원의 고갈은 장기적으로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관련된 논쟁의 구도도 피크오일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 시점이 언제인가로 좁혀지고 있다.

Peak Oil의 의미 : 자본주의의 반생태적 성격과 약탈성

자연자원이라는 것은 무한한 것이 아니기에 쓰다보면 언젠가는 고갈되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나 현재의 피크오일은 단지 인간사회에 필요해서 쓰다 보니 고갈되는 상황이 아니다. 현재의 상태는 자본주의의 무한한 축적, 생산을 위한 생산이 낳은 결과물이다. 자본주의는 자연에 대한 약탈을 가속화하고 악화시켜, 이제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원 하나 남지 않을 실정에 이르렀다. 현재 자본주의의 격렬한 모순과 파멸성이 드러나고 있는 중요한 영역들 중 하나는 바로 이 자연에 대한 약탈이 이루어지고 있는 영역이다.

그렇지만 사회주의운동진영은 투기자본 원인론이라는 손쉬운 설명방법에 집중하고, 고유가가 표현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반생태적 성격과 약탈성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는 분량상 더 많은 이야기를 못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깊이 천착했던 맑스의 다음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친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동시에 파괴함으로써만 사회적 생산과정의 기술과 결합도를 발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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