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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이젠텍분회, 아직도 끝나지 않은 투쟁

8월 11일 이른 아침, 경기도 평택시 모곡동의 (주)이젠텍 1공장 앞에는 3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해고무효소송의 승소를 장담하며 승리를 낙관하고 있는 평택안성지역노조의 MAT지회, 경기금속지역지회 임원들, 평택안성지구협 임원들, 이들은 3년간 파업투쟁을 승리로 마감하고 현장으로 복귀하는 금속노조 경기금속지역지회 이젠텍분회 조합원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였다.

하지만 투쟁 1083일 만에 현장으로 돌아가는 이젠텍분회 조합원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3년간 함께 투쟁했지만 현장으로 같이 돌아가지 못하는 해고자들 때문이다.

2005년 설립된 금속노조 경기지부 경기금속지역지회 이젠텍분회는 설립초기 관리자 5명의 이름으로 신고 된 유령노조 때문에 복수노조 시비에 휘말려 단 한차례의 교섭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이젠텍 자본은 복수노조를 핑계로 단체교섭을 거부하면서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하고, 용역경비와 사무관리직을 동원하여 폭행을 가하는 등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였다.

하지만 2006년 3월 16일, 평택지원이 <단체교섭응낙가처분>소송에서 “산업별노조와 기업별노조의 병존 시에는 복수노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사측은 성실하게 교섭할 의무가 있다”라는 판결을 했으며, “계속적인 교섭 불응 시에는 1일 30만원의 돈을 노동조합에 지급하라”고 명령하며 사측의 성실교섭을 촉구하였다.

법원의 성실교섭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젠텍 자본은 공공연하게 강제이행금은 줄 수 있어도 교섭은 하지 않는다고 떠들었다. 이후 이젠텍분회는 39일간의 대표이사실 점거농성, 이젠텍이 생산하는 화장품냉장고 ‘챠빌’에 대한 불매운동, 3개월간의 원청사 항의농성, 1번국도 점거투쟁, 본사 앞 1박 2일 투쟁, 투쟁 750일 투쟁문화제, 투쟁 1000일 승리결의대회 등 수많은 투쟁을 전개하며 이젠텍 자본을 압박하였다.

드디어 7월 18일, 금속노조와 이젠텍 자본은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활동을 보장하는 <기초교섭합의안>을 도출하였다. <기초교섭합의안>의 내용은 조합원 교육 및 간부회의 시간 보장, 선전활동 보장, 조합비 일괄공제, 교섭위원의 임시상근, 조합원의 원직복직, 전임자 인정 등이며, 이는 그동안 사측에 의해 부정되었던 금속노조의 인정을 의미한다. 사측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본 단체교섭에서 성실히 교섭할 것을 약속했으며, 8월 19일 일괄타결안을 제시하기로 하였다.

장기간 지속되어 온 이젠텍분회 투쟁을 승리로 이끈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산별정신에 입각하여 이젠텍의 원청사인 현대, 기아, 만도, 한라공조, 캄코, 세정, 위니아만도 등의 원청사 지회가 금속노조의 요청에 의해 이젠텍 교섭에 참가한 것이다.

1월 10일 대법원 판결이후 교섭을 시작했지만, 사측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의도적으로 교섭을 회피했다. 하지만 금속노조는 이젠텍 분회의 승리를 위해 7개 원청사 지회에 교섭참가를 요청했다. 원청사 지회도 3년간 처절하게 전개된 이젠텍 분회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 교섭참가를 결의했고, 4월 23일부터 교섭에 참가하여 이젠텍 자본을 압박했다. 산별 노조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이젠텍 분회가 전개한 원청사 투쟁은 부품사간의 공동투쟁뿐 아니라 완성차인 현대자동차지부, 기아자동차지부의 지원 아래 이루어진 원-하청간의 공동투쟁이었다. 이러한 원-하청간의 공동투쟁은 자동차 관련 산업이 대부분인 금속노조의 교섭과 신규사업장에 대한 지지,지원투쟁의 전형이 될 것이다.

이젠텍분회 투쟁에서 중요한 또 하나는 바로 지역노동자들의 지지,지원이었다. (주)이젠텍이 위치한 송탄공단은 중소영세 사업장이 몰려있는 곳이다. 송탄 공단은 2000년 초부터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해 활발하게 투쟁했지만 2002년 패배로 귀결되었고, 2004년 1년6개월간 전개된 금속노조 에바라지회 투쟁 또한 패배로 정리되었다.

이러한 연이은 패배 속에서 송탄공단에 민주노조를 세우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투쟁하는 이젠텍분회를 지켜내기 위해 평택 지역의 전 역량이 집중했다.

특히 이웃하고 있는 쌍용자동차지부에서는 1000여 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매월 천원 연대기금을 결의하여 투쟁기금을 전달하고 있으며, 이젠텍분회의 승리를 앞당기기 위해 확대간부 및 조합원들이 적극 결합하고 있다.

이렇듯 여러 외적인 요소들이 이젠텍분회의 투쟁을 독려하고 지켜내는 데 힘을 보탰지만 이젠텍분회가 3년 넘게 투쟁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분회 조합원들의 강철같은 투쟁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설립 초기 10명의 비정규직을 포함해 97명의 조합원으로 시작한 이젠텍 분회는, 자본의 탄압으로 19명으로 줄었지만 조합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긴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젠텍분회 조합원들은 대부분 40~50대 아줌마 아저씨들이다. 2009년에 정년퇴직 하는 손자를 본 할아버지도 있고, 부부가 함께 투쟁하고 있는 가정도 둘이나 있다. 이들이 적극적인 투쟁으로 나선 것은 단순한 근로조건의 개선이나 임금의 문제가 아니었다.

10년에서 짧게는 3~4년의 근속기간을 가진 조합원들은 그동안 회사의 부당한 인사와 인간적인 모멸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노동조합을 건설하여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이젠텍분회의 초기 요구사항은 “안전장구 지급하라”, “작업소모품 지급하라”, “현장에서 폭언, 폭행하지 마라”, “다치면 산재처리 하라”, “금속노조 인정하고 성실한 교섭 인정하라” 등이었다. 투쟁이 전개되면서 어용노조(유령노조)가 활성화되고 기본적인 요구들이 이루어졌지만 이젠텍분회가 투쟁을 멈추지 않은 것은 현장노동자들이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건설한 노동조합만이 현장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켜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젠텍분회 투쟁은 투쟁을 전개하는 주체, 대산별로 전환한 금속노조, 지역 노동자들의 지지,지원 등 삼박자를 충족시킨 투쟁이었다. 1000일 동안 축적돼 온 그 힘이 사측을 압박하여 금속노조의 <기초교섭요구안>을 합의하게 했으며, 사측의 일괄타결안 제시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4명의 해고자가 이젠텍분회와 금속노조의 어깨에 걸려있다. 해고자 문제 역시 3년간의 이젠텍분회가 보여준 지치지 않은 투쟁과 강철같은 투쟁의지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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