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5호]사회주의적 정치투쟁전선을 만들어가자

요즘 TV나 신문, 인터넷 등을 보면 어디서나 가장 뜨거운 이슈는 경제위기이다.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은 급등하고 있으며, 제2의 ‘환란’이 점쳐지고 있다. 그런데 이는 ‘가진 자’의 아우성이다. 한국 사회의 ‘없는 자들’은 이미 10년도 넘게 만성화된 위기를 겪어왔다.

IMF사태에 처한 자본은 위기극복책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여 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떠넘겨왔다. 신자유주의가 심화될수록 자본의 위기는 노동자 민중의 삶의 위기가 되어왔고, 이는 지금 한국사회의 급속한 비정규직화와 빈곤화, 양극화, 인간파괴로 드러나고 있다.

비정규직화로 20~30대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자신이 '일하는 빈곤층'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대학생이 개강 첫 날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다니던 대학 건물에서 목을 매며, 한국의 자살률은 OECD 나라들 중 1위이다.

노동자 민중의 삶의 위기는 당연히도 불만과 투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비정규직 투쟁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고, ‘대한민국’을 달구었던 (5,6월의) 촛불시위 역시 광범하게 번져있는 민생불안을 빼놓고서는 온전히 설명될 수 없다.

그런데 촛불시위는 다양한 민생의제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민중에게 가장 심각한 경제문제랄 수 있는 비정규직, 실업, 노동탄압 등과 기륭전자 같은 장투사업장 문제는 사실상 자기문제로 받아 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는 운동진영의 촛불시위에의 기회주의적 결합과(민주노총, 진보정당 등은 한미FTA반대조차 제기하지 않았다), 민생파탄의 원흉인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로까지 나아가지 못한 촛불‘의식’에 기인한 것이다. 계급의식 성장의 지체로 거리의 넘쳤던 에너지는 세상을 바꾸는 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동력은 유실되며, 전선은 확대되지 못했다. (34호, “반이명박에서 반자본으로 촛불민심을 진화시키자” 참고)

지난 10년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파산에 이르고 있다. 지금 언론이 떠들어대듯 새롭고 더 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고, 이는 자본이 IMF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취한 신자유주의의 완전한 실패를 증명한다.

또한 이는 한국자본주의가 이전의 위기들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위기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위기들과는 달리 현재의 위기는 수습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가들과 정권의 극복책에 의해 오히려 증폭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은 격심한 고통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나서는 것, 자본주의의 개량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사회주의가 유일한 대안이 되고 있다. 사회주의적 노동자투쟁만이 인간다운 삶을 되찾을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노동자투쟁은 자본주의에 의한 민생파탄으로 그 필요가 비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실에서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촛불시위가 보여주는 것처럼 대중의 의식은 대규모 대중투쟁 가운데에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고, 조직대오는 반자본주의 투쟁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무비판적으로 추수하고,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한계 즉, 주체가 정세가 요구하는 의식과 실천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비조응성의 문제를 하루빨리 극복하는 것이 해방운동의 당면과제인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사회주의적 정치투쟁의 부재로 진정한 위기극복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투쟁의 부재는 주체의 의식과 정세 사이의 비조응성으로 인한 것인데, 이러한 비조응성은 다시 사회주의적 투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의해 강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악순환에 의해 해방운동은 객관적인 조건의 성숙에도 불구하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악순환을 끊어내고 운동을 전진시키기 위해서 사회주의자들과 변혁적 활동가들이 사회주의적 정치투쟁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장의 규모와 상관없이 사회주의적 정치투쟁전선을 형성하여 노동대중과 직접적으로 결합하고, 이를 통해 노동대중에게 사회주의적 투쟁의 경험을 제공하고 의식을 고양시켜내야 한다.

한편 사회주의적 정치투쟁전선이 대중적으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대중의 절박한 요구를 내세워야 한다. 그리고 ‘과도적 요구’여야 한다. 즉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발전해갈 전망을 갖는 요구여야 한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 철폐!’는, 그 자체로 사회주의적 요구는 아니지만, 비정규직 철폐와 자본축적이 양립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된 정세 하에서 사회운영원리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요구로 발전해갈 수 있다.

노동자 민중의 절박한 요구와 이런 요구의 해결조차 자본주의가 어떻게 가로막고 억압하고 있는지에 대한 폭로를 통해 사회주의자와 변혁적 활동가들은 자신들 특유의 정치투쟁전선을 형성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현안으로 떠오른 공공부문 사유화 반대와 가장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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