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공장/직장위원회 운동의 역사적 경험

역사적으로 노동조합과 병행하여 등장한 작업장, 혹은 기업단위 노동자들의 조직은 영국에서는 직장위원운동,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공장평의회, 프랑스에서는 공장위원회, 러시아 혁명 당시의 공장위원회 등이 있다.

공장평의회가 1차대전 직후, 기존국가의 해체과정에서 등장했고, 혁명적 에너지의 분출이었다면, 영국의 직장위원운동(숍 스튜어트)이나 프랑스의 공장위원회는 노동조합운동의 부분, 혹은 보완적 장치가 특정한 시기에 급진화의 길을 갔던 것으로 구별된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들은 공히 노동조합운동과의 긴장을 초래했고, 그 속에서 노동운동의 다채로운 실천이 전개되었다. 그런 긴장은 기존의 노동조합이 변화된 상황에서 제 역할을 못하거나, 혹은 산별노조의 질서가 현장노동자의 욕구와 이해를 대변하는데 한계에 봉착하는 등과 같은 모순에서 비롯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운동이 계급운동의 폭발적인 성장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벌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자 프랑스나 영국에서는 이러한 작업장단위의 노동자 조직이 하나의 제도로서 정착되었다. 영국에서처럼 산별노조질서에서 단위노조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거나, 프랑스처럼 8개이상의 민주노총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현장단위의 단결의 수단, 혹은 교섭창구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자본주의 극복을 내세웠으나 너무 빨리 주변화되었던 영국의 직장위원 운동

영국의 직장위원운동은 1930년대에 들어서 그 빛을 발했는데, 이는 당시가 대공황시기라는 것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직장위원들은 초기에는 조합비를 모금하고, 현장과 노조집행부와의 가교, 혹은 허리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직장위원들의 그런 역할은 현장노동자의 정서를 가장 가까이 반영하고, 동시에 노동운동의 시대적 흐름을 가장 앞서 표출할 수 있는 역량을 배양하게 해주었다. 초기부터 기업단위의 직장위원들은 작업장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개선을 위한 기업별 단위의 교섭주체가 되었고, 그런 이유로 현장노동자들에게 일정한 대표권을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공황이라는 상황을 맞이하여, 당시 영국노동총연맹은 영국노동당과 같이 머리를 싸매고 있었지만, 현장 노동자에게 피부에 와 닿는 대안도, 전망도 보여주질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노동자 대중에게 한편으로는 절망으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급진화된 요구를 내세우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제도가 되어 버린 노동조합운동을 대신해 현장노동자의 직접선출을 통해 발탁된 직장위원들의 운동은 유연하고 생동하는 활동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단지 활동력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의 계급의식은 그렇기 때문에 매우 날카롭게 발달하였고, 급진적인 그룹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들은 당장 자본주의를 전복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나 이들의 최대약점은 자생적인 급진성을 대중운동과 결합할 능력, 그리고 운동의 전략적 목표와 현장노동자들의 투쟁성을 결합할 수 있는 지도력 부족이었다. 사회주의 정치실천의 의지가 있는 노동자들은 있었으나, 이를 전국적으로 지도할 당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한때 기세등등하던 직장위원운동을 고립시키고 종국에는 사라지게 했던 것이다.

대국을 놓쳐버린 공장평의회 운동

공장평의회 운동은 산별노조 혹은 직업별 노조의 전국센터와 대립했던 무정부주의자들의 조합주의운동과 매우 흡사한 운동방식을 취했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처음부터 노동조합관료의 존재를 부정했고, 공장단위의 자주적 조직은 인정하되, 전국센터가 필연적으로 가지게 될 관료조직은 부정했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지역총파업과 같은 투쟁력을 바탕으로 한 교섭력 발휘를 더 선호했고, 전국단위의 일사불란함을 무기로 자본가들을 협박하는 산별교섭을 경멸했다.

모든 정치권력을 배제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오히려 자본가 권력의 위기 국면에서 무능력을 보이며 기존 권력을 유지하는데 사실상 도움을 주었던 반면에, 사회주의운동과 결합했던 공장평의회는 구체제에서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을 다투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탈리아에서 공장평의회는 자주관리를 적극적으로 시도했고, 독일의 공장평의회는 사회화 프로그램에 적극적이었다. 두 공장평의회는 임단협에 자기활동을 의존하고 있던 기존 노동조합이 시도하지 못했던 것을 해냈고, 가두에서 노동자들을 동원시키는데 탁월할 역할을 했다.

이탈리아 사회나, 독일사회나 1918년부터 20년대는 무너지는 구체제의 새로운 대안을 노동자 대중이 모색했던 시기였고,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 있었던 것이 공장평의회였던 것이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두 공장평의회운동이 노동자국가건설로 귀결되지 못한 것은 평의회들이 자신들의 임무에 너무 몰두한 탓이었다. 독일의 공장평의회는 사민당 지도부의 헛소리였던 사회화 프로그램에 너무 홀려버렸다. 그래서 자본주의 질서의 수호자였던 그들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결국에는 학살의 희생자들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공장평의회는 자주관리에 몰두한 나머지 결정적인 행동, 권력을 차지하려는 행동에 굼떴다. 물론 결정적 국면에 결정적 행동을 요구하지 않은 이탈리아 사회당의 허풍쟁이들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라는 구호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러시아의 공장위원회 운동에 비해 그런 면에서 공장평의회는 큰 약점을 갖고 있었다.

남한에서 공장위원회 운동이 가지는 과제

대기업노동조합으로 일컬어지는 남한 노동자계급 상층의 운동은 계급운동의 박력을 너무 일찍 소진시켰다. 원청기업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임금은 비정규직, 하청기업 노동자들의 존재로 인하여 하나의 기득권을 상징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정규직 노동조합운동의 편협성은 보다 보편적인 운동, 즉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괄하는 전체 노동자의 조직, 공장/직장위원회로 대체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 나아가 그 존재 자체에 도전하는 운동, 그리고 비정규직을 유지하려는 자본의 경영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 더 전진해 노동자들의 통제를 요구하는 운동을 공장/직장위원회 운동으로 전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자생적으로 솟아오른다 하더라도, 기존 노동운동의 성찰과 반성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하면서도 또 다른 조합주의, 기업별 의식에 갇히는 사태를 막는 것이 공장/직장위원회 운동의 성패를 가늠하는 요소이다.

남한에서 공장/직장위원회 운동은 두 가지 방향에서 자기실천을 가지며 태동할 수 있다. 하나는 노동자들의 보편적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 즉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는 운동이 하나의 흐름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공기업의 공공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노동자통제를 요구하는 흐름을 가질 수 있다. 어느 것이나 노동운동 전체의 이해를 아우르는 사회주의운동과의 적극적인 결합 없이는 진정한 노동자계급이 해방운동으로 발전할 수 없다.

공장위원회 운동이 사회주의 정치실천으로 발전하는 것이 한편으로 당건설의 토대가 될 것이며, 역으로 사회주의정당 건설만이 이러한 운동의 발전을 보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천의 문제이고, 주체형성의 문제이다.

비정규직 운동의 완전히 새로운 질로의 탈바꿈, 공공부문 노동자 투쟁의 급진화가 이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공장/직장위원회 운동을 축으로 하는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단결과 분발이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더욱 요구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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