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3호]가진 자가 왕인 세상 Vs 일하는 자가 해방된 세상

가난은 노력과 재능이 부족한 탓?

작년 9월 15일 미국의 4위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미국발 세계공황이 발발한 지 6개월이 지났다. 6개월 동안 우리가 겪은 것은 위기의 점차적인 진정이 아니라 사상 최대의 시련으로 빨려 들어가는 입구였음이 확인되었다.

환율과 주가가 널뛰고, 한국은행이 사상 최저로 기준금리를 낮추어도 돈줄이 막혀 파산하는 중소기업, 자영업주, 가계가 급증하고 있다. 경제는 이미 지난해 4/4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일자리가 줄면서, 통계청 수치를 재계산한 실질실업률이 11.6%(‘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추정치)에 달한다고 한다. 실업이 늘고 임금이 깎여 소득은 줄고 있는데, 물가상승은 멈출 줄 몰라 가게빚과 신용불량자가 늘어만 간다.



갈수록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누구도 이를 원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불가피성은 우리의 경제적 운명이 단순히 자기 자신의 노력과 재능에 달려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사실 개인의 재능과 노력은 작은 변수에 불과하다. 개개인 위에 군림하는 사회경제질서가 자체의 법칙에 따라 경제적 기회를 분배한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자본가가 되어 돈을 굴리거나 노동자를 고용해, 투자액에 비례하는 이자, 이윤을 수취한다. 일억 가진 사람은 천만원 벌고, 십억 가진 부자는 일억원을 벌고, 몇조를 가진 재벌은 수천억원을 번다.

반면에 일하지 않고는 먹고 살 수 없는 사람은 노동자가 되어 자본가가 주는 임금만큼만 번다. 대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수천명 노동자의 임금을 전부 모아도 사장실에서 혼자 일하는 대자본가의 재산증식을 못 쫓아간다. 돈 버는 재주는 노동자가 부리는데 돈은 자본가가 번다. 이게 돈이 돈을 버는 비결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제질서를 바로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한 소득분배, 관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자본가들끼리 오직 이윤획득만을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경쟁하고, 그 결과로 경제활동이 끊임없이 불안정한 체제이기도 하다.

시장이라는 격투장에서 자본은 저마다의 생사를 걸고 치열하게 싸우는데 어제의 승자가 오늘의 패자가 되기 일쑤이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기업이었던 GM이 현재 파산 직전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패배자들이 속출하는 것, 즉 기업파산과 공장폐쇄가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바로 (산업)공황이라고 한다.

시장에서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투자는 이윤을 낳지 못하는 과잉설비, 과잉상품으로 전환되는데, 이러한 과잉설비, 과잉상품은 판매 경쟁을 더욱 격화시켜 손실을 다른 자본들한테까지도 확대시킨다. 그리고 손실을 견디지 못한 자본들이 대규모로 감산과 설비폐기, 고용감축에 나서고 또는 파산하면서 공황이 발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황의 발단이 되는 과잉중복투자는 어떻게든 돈을 굴려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의 본성과 다수 자본들이 서로 경쟁·적대하는 시장의 무정부성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공황은 자본주의의 필연인 것이다.

따라서 공황 시기에 일자리를 잃고 임금이 깎이고 빚으로 연명하고 길거리로 내쫓기기까지 하는 것은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한 피할 수 없는 지상명령인 셈이다.

이 지상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회사가 망해도 어느새 거금을 빼돌리는 사장들, 국민 혈세에 기생하는 높으신 양반들, 삶의 터전이 필요한 이들을 등쳐먹고 사는 지주들, 이런 부도덕한 가진 자들뿐이다.

자본주의에서는 가진 자가 왕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이들이나 노력과 재능의 대가를 운운한다. 이처럼 부도덕한 현실, 없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살기 팍팍한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현실로, 사회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한다. 인간다운 삶과 자본주의 사이의 모순, 즉 불평등과 사회 저변의 빈곤, 주기적인 공황 등은 자본가들이 공장과 기업을 사익추구의 목적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데서 비롯한다.

사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수 노동자들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을 자르고 임금을 깎아내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억누른다. 그리고 서로 경쟁하면서 자기 이익만 좇다가 과잉생산위기(공황)를 터트린다.

또한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그 성과를 경제활동에 접목시켜 생산성, 효율성이 높아지더라도 이를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이 돈을 버는 것으로만 활용한다. 이러니 과학기술혁명이 몇 번이 일어나도 과로사와 실업이 항상 존재한다.

이러한 범죄, 행태는 모든 산업에서의 자본가의 소유, 자본주의적 운영을 철폐하는 사회주의적 조치를 통해서만 사라질 수 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적 소유와 운영을 철폐함으로써 사회정의를 실현한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만한 빈곤과 실업, 차별의 극복, 무상교육 무상의료, 복지 확대, 나아가 진정한 자유와 평등 쟁취, 개개인의 자유로운 발전 등의 사회정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온전히 추구될 수 없다.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인 사회의 부를 자본가들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정치에 대한 경제의 자율성을 옹호하고 강변한다. 정치에 대한 경제의 자율성이란 결국,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민주적으로 결정하더라도 자본가에게 그가 소유하는 부를 내놓으라고 할 권리가 없다는 것, 이윤추구는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추구돼야 한다는 말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이윤추구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하고 자본이 모든 것 위에 군림한다.

반면에 사회주의에서 경제는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의 복지와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존재하고 운영된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돼있지 않고 경제는 사회정의를 위해 역할을 한다.

즉 사회주의는 이윤추구가 아니라 인간존중과 사회의 필요가 우선하는 사회이다. 사회주의는 먹고 사는 문제를 민주적으로 결정한다. 일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빈곤을 일소하고 모두에게 복지를 보장하기 위해서 경제를 재조직화한다.

그런데 경제가 사회의 필요에 따라 운영되기 위해서는, 자본가의 소유를 철폐하는 것도 필요로 하지만 자본을 대신해서 새로운 원리에 따라 산업을 운영할 주체를 필요로 한다. 사회주의 사회의 운영주체는 관료도 지식인도 아닌 사회 다수를 이루는 노동자들이어야 하고 노동자들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착취와 억압의 역사이지만 한편으로는 이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역사이다. 각각의 공장과 직장에서 개개인으로서 흩어져있던 노동자들은 점차 스스로 연대하고 단결하여 노동조합 등의 투쟁조직을 만들어내고 계급으로 행동해왔다.

노동자계급은 처음에는 단지 경제적 이해를 중심으로 뭉쳤지만, 점차 사회의 발전방향을 놓고 다른 사회계급과 경합하는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각국에서의 노동자당 창당). 그리고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노동자계급은, ‘1차 대전’ 이후 러시아나 독일에서처럼, 혁명세력으로서 역사에 등장했다.

이는 오래된 역사이야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지금도 만들어내는 필연이다. 노동운동은 여전히 계속 가장 위력적인 대중행동과 가장 선진적인 활동가들, 사회주의자들을 배출하고 있다. 한국사회를 보더라도 가장 보편적이고 진보적인 요구들은 노동자투쟁에서 나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혁명을 주도할 힘과 의지를 지닌 집단은 노동자계급뿐이다.

한편 자본주의의 역사는 거의 모든 경제활동의 담당자가 개인, 가족에서 협업과 분업으로 조직된 집단적 노동자들로 바뀌어온, ‘사회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생산활동이 대규모의 협업과 분업으로 조직돼왔을 뿐만 아니라, 자본가가 담당하던 경영활동 즉, 기획, 회계, 인사, 자원·기술관리 등에서의 실무도 일군의 사무노동자 집단이 수행하게 되었다.

이는 자본가들이 이제는 사회에서 어떤 긍정적 기능도 수행하지 않으면서 부만 가로채가는 기생계급이 되었고, 따라서 이들이 없어도 사회가 돌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음을 의미한다.

사회주의는 외부에서 주입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강력한 사회·정치세력으로 존재하는 노동자계급이 새로운 사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스스로를 자본가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결단과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국가 건설과 사회주의정당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의 첫 걸음은 노동자국가 건설이다. 노동자국가란 같은 공장/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로 이루어지고 스스로 대표를 선출하며 누구나 조직의 집행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참여해야 하는, 이런 점에서는 노동조합과 비슷한, 행동적인 노동자조직들이 전국에 걸쳐 결합한, 그리고 자신의 수중으로 자본가국가가 휘둘렀던 정치권력과 자본가계급이 독점했던 경제권력을 집중시킨, 노동자계급의 자치기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과 국가의 관계는 한 몸에서 나온 두 머리 사이의 관계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모두의’ 국가가 아니라 ‘자본가’ 국가인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질서를 뒤엎는다는 것은 자본가계급과 동시에 자본가국가도 극복하고 노동자가 직접 정치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정당이란 노동자국가 건설에 가장 앞장서는 당을 말한다. 사회주의정당은 단지 자본주의 모순과 사회주의를 선전하는 곳이 아니며, 노동자 민중을 대신해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곳도 아니다. 노동자계급이 스스로 노동자국가를 건설하고 사회주의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계급 가운데서 계급의 일부로서 실천하는 사람들의 결사체가 바로 사회주의정당이다.

2009년, 자본주의가 더 거세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사회주의만이 진실한 대안이다. 사회주의를,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더 당당하게 외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