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3호]오바마의 뉴딜?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은 미국 자본주의의 구원투수가 될 것인가

1930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에 직면한 미국과 세계경제 상황 속에서,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버락 오바마가 취임하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1930년대 대공황에 대처했던 루즈벨트 행정부의 뉴딜과 같은 대대적인 경기부양에 나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미 2월 12일, 미국 의회에서는 7,89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법안을 통과시켰다.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될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현재의 세계 경제공황은 근본적으로 과잉생산상태에 처해 있는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나온 것이다. 자본주의의 과잉생산 상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발생해왔던 것이었지만, 이러한 상태는 극복되지 못하고 만성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과잉상태의 생산설비, 상품 등이 대거 정리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재정적자와 부채를 통한 민간소비 확대라는 형태로 미봉되었을 뿐이다.

미국 소비지출은 1990년대 중반부터 4-5%씩 성장하여, 미국경제의 적신호가 들어오고 있던 2006년에 이미 9조 6천억 달러로 미국 GDP의 72%, 세계 GDP의 19%에 달하였다. 미국의 연방재정 적자의 경우 부시행정부 이후 해마다 5천억 달러 정도의 적자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막대한 자금이 전세계적인 과잉생산을 유지하는 데 투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미국의 민간소비가 급격하게 붕괴되면서 전세계적인 공황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7,89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 1조 7,500억 달러 규모의 적자재정은 현재 자본주의가 처해있는 근본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은 밑돌을 빼어 윗돌을 괴는 방식에 불과하며, 계속해서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연방재정 적자로 축소된 민간소비를 일정정도 상쇄해주는 역할에 그칠 뿐이다.

이미 연간 5천억 달러 정도의 적자가 일반화되어 있는 미국의 재정적자구조에서, 심화된 연방재정적자는 갈수록 지탱하기 어려운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이는 재정적자 정책에 한계를 부여한다. 이미 2008년까지 미국의 누적 재정적자는 8조 2천억 달러에 이르고 있으며, 올해가 지나면 사상 처음으로 10조 달러를 넘어선다.

더욱이 오바마 행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들여 기업에 제공한 구제금융은 노동자 민중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쓰이기는커녕, 기업회생을 위한 자금으로도 활용되지 못한 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있다.

최근 신문기사에서 보도된 바처럼 AIG에 투입된 구제금융 500억 달러가 다른 금융회사의 빚을 갚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막대한 자금이 일부의 자본가들의 주머니 속으로 한없이 유입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뉴딜”은 케인즈주의적 경기팽창의 결과가 아니라 미국 노동자 투쟁의 결과였다

한편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시행되고 대대적인 적자재정을 통해 경제를 살리려는 모습을 보면서 루즈벨트 시대의 뉴딜이 다시 부활한 것처럼 선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뉴딜은 케인즈주의에서 말하는 적자재정을 통한 수요팽창정책으로 경제를 살린 방식의 대표적 사례로 보거나, 뉴딜을 통하여 미국의 대공황이 극복되었던 것처럼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뉴딜의 본모습에 대해 잘못 이해한 결과이다.

1929년 10월 24일 뉴욕주식거래소에서 주가가 대폭락하면서 발생한 미국의 대공황에 대해 미국 후버 행정부와 자본가들은 초기에 한국의 이명박과 비슷한 친자본정책으로 일관하였다.

당시의 대통령 후버는 막대한 수의 실업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자본가들의 임금삭감을 지지하고, 지금 이명박이 취하고 있는 인턴제와 유사한 “노동자 시차 고용제”에 찬성하였다. 그리고 “부흥금융공사”를 만들어서 기업에 대해 자금지원을 해주었을 뿐이다.

이 당시 연방정부의 지출은 확대되었지만, 경기확대를 위한 수요팽창정책이라기 보다는 공황으로 축소된 주정부, 지방정부의 지출을 보존해주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이러한 기조는 전반적으로 1932년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첫 번째 임기를 채우는 동안까지도 지속되었다.

1936년 루즈벨트의 2차 임기가 되어서야 제 2의 뉴딜이라고 불리는 보다 팽창적 재정정책을 행사하기 시작하였으며 사회보장법, 와그너법, 실업보험 등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자본가들이 의식적으로 케인즈주의적 교리를 적용한 결과가 아니었다. 뉴딜 시기 진보적이라고 할 만한 성과들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재정의 팽창은 공황으로 파탄이 난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싸운 결과였으며, 자본가들이 더 이상 노동자의 처지를 외면하고 탄압할 수만은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나온 것들이었다.

이 시기는 전국실업자평의회(The National Unemployed Council)를 통해 실업자들이 자신의 생존권을 위해 적극 싸웠던 시기이며, 노동자들이 산별노조 CIO를 건설하고 파업 등 대대적인 투쟁에 나섰던 시기였다. 뉴딜의 성과로 언급되는 것들 중 상당수는 30년대 미국 노동자들이 피어린 투쟁으로 쟁취한 것들이었다.



한편 미국이 이러한 뉴딜에도 불구하고 대공황을 극복하기는 역부족이었으며, 결국 37-38년이 되어서 다시금 새로운 공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공황은 결국 제 2차 세계대전을 맞이하여 경제의 전시동원 체제가 수립되고 전쟁이 막대한 과잉자본을 빨아들이면서 해결되게 된다.

이러한 뉴딜의 실제 역사를 보았을 때, 오바마행정부의 적자재정과 경기부양책은 미국경제를 위기에서 구원하지도, 경제공황으로 파탄나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삶을 보호해주지도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보장받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와 정면 대결할 때에만 공황에 대한 해결책이 나온다

막대한 규모의 적자재정 정책, 경기부양책도 공황을 극복하는 데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미국의 자본가계급은 새로운 전략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가능한 것으로 미국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시키고 해외시장에서 시장점유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바이 아메리카”나 한미FTA 재협상이라는 형태로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미국 일국 차원에서는 공황 속에서 자본이 스스로를 합리화하여 경쟁력을 강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고, 부채에 의존하던 자국 내 민간소비의 확대는 이미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미국자본에게는 현실성 있는 판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세계적 차원에서는 이미 과잉생산으로 시장이 포화되고 경쟁이 격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공황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막대한 규모의 적자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이 한계를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자본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하나는 다양한 규모의 국지전, 전면전을 감행하여 과잉투자, 과잉생산 상태에 있는 경제상황을 타계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의 확대보다는 전쟁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계급구조 상, 전쟁준비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선호하는 미자본가계급의 특성 상 새로운 전쟁의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오바마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 확대를 준비하고 있으며, 시리아, 이란이 새로운 전쟁 상대로 점쳐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에게 무의미한 죽음과 처참한 파괴만을 남긴 채, 제2, 제3의 실패한 이라크전을 양산할 뿐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이 체제는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위기와 삶의 파탄, 무의미하고 참혹한 전쟁 등을 낳을 뿐이다.

공황에 빠진 미국자본주의의 현실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현실을 보여준다. 미국자본가들이 택할 수 있는 수단들은 자본주의 모순 그 자체 때문에 일시적이고 대증요법적 의미밖에 지니지 못한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삶의 고통은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이 생산을 장악하고 생산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노동자와 사회의 구성원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구조로 재조직화할 때에만 희대의 세계공황을 극복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보장받기 위해서 싸우고자 한다면 자본주의 체제와 정면대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