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6호]6·10 22주년, 다음 민중항쟁은 새로운 사회를 열 것이다!

지금 민주주의는 왜 뒷걸음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이명박정권은 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가 라는, 이명박정권의 성격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에 대한 손쉬운 답변을 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려 하지 않고 일방통행한다.”

그러나 손쉬운 답변은 약점을 갖기 마련이다. 이명박정권의 강압성은 이명박과 그 주변의 개성으로 전부 환원되지 않는다. 이명박정권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시기에 들어선 정권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IMF공황 이후 한국사회는 빠르게 신자유주의화 돼왔다. 일자리의 비정규직화, 공공부문의 민영화, 이윤추구에 대한 규제철폐, 복지확대 억제, 시장개방 등이 이뤄져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약속과는 달리 양극화, 절대빈곤 증가, 일자리 부족, 낮아진 성장률, 빈번한 경제위기였다.

이처럼 더 어려워지는, 나아지지 않는 경제에 대한 불만은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신자유주의의 실패에 힘입어 탄생한 이명박정권이 신자유주의화를 완성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10년간의 국민적 경험에 완전히 반하는 것인데, 실제로 이명박정권은 정책추진 과정에서 계속 반대에 부딪쳐왔다.

2008년 촛불투쟁은 광우병쇠고기 수입뿐만 아니라 대운하, 교육시장화, 물·전기·가스·의료 민영화도 함께 반대했다. 또한 은행을 재벌에 내주는 금산분리 완화법안과, 재벌의 지상파 소유를 허용하고 조중동의 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방송법 개정안 등 이른바 MB악법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다.

실패한 신자유주의를 붙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정권은 경제위기 극복, 경제불만 해소에 무능할 수밖에 없고, 위기와 불만에 더 불을 지필 것이다. 그리고 이점이 바로 지금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근본적인 차원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도, 불만을 풀어줄 수도 없는 통치자의 선택은 늘 그렇듯이,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몽둥이를 드는 것이다.



87년과는 다른 오늘날의 민주주의투쟁

신자유주의는 경제위기에 대한 자본주의(한마디로, 이윤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자본 중심 체제)의 위기극복책이다. 위기에 처한 자본(기업)의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은 인건비 절감과 해고이다. 그리고 정부는 자본을 지원하기 위해, 노동유연화를 촉진하고 이윤추구의 장벽들을 치워준다(규제철폐, 민영화, 감세 등).

그러나 이러한 기업 차원에서의 미시적 합리성(=신자유주의)은 거시적 불합리성을 낳는다. 해고의 범람, 비정규직화,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등으로 인해 수요창출능력이 약화되고, 따라서 경제성장은 정체한다. 이에 자산가격 상승과 민간부채 증가를 부추겨 소비를 진작시키려는 시도들은 모두 거품경제 붕괴로 귀결되고 말았다.

가장 자본주의다운 위기극복책이었던 신자유주의의 실패는 자본주의가 경제위기 해결에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의 실패는 자본주의의 실패이다.

앞서 민주주의 후퇴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실패에서 비롯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자본주의를 대변한다면, 소수 자본가와 상류층의 편에 서서 대다수 노동자 민중의 권리(일할 권리, 살 권리, 희망을 가질 권리...)를 빼앗고 억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누구도 민주주의자일 수 없다. 자본주의는 독재의 다른 이름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은 자본주의 반대, 대안을 향한 싸움과 다른 별개의 투쟁일 수 없다. 이점이 22년 전과는 다른 현재의 특징이다. 87년에는 민주주의 절차·형식의 부재가 문제였다면, 현재는 민주주의의 내용이 문제이다.

어떠한 민주주의인가? 무엇이 국민이 진정 주인되는 정치인가? 이제는 반자본주의만이 민주주의적일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하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와 기층민중만이 민주주의투쟁을 올바로 이끌 수 있다.

노동자계급이 민주주의투쟁의 선두에 서야 한다

자본주의의 실패, 이로부터 비롯하는 민주주의 후퇴가 노동자계급에게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이다.

첫째, 경제적 요구와 생존권투쟁, 경제투쟁은 정치적 요구와 민주주의투쟁,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고, 나아가지 못한다면 기본적인 요구조차 쟁취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후퇴는, 탄압과 독재는, 노동자와 기층민중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부패한 사회조건들을 옹호하는 국가의 참모습이라는 점을 유념하자.

이 나라는 재개발이익의 무제한적인 보장을 위해, 살겠다고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을 하루 만에 불태워 죽였다. 또한 이윤추구 보장을 위해, 노동자에 대한 살인과 다름없는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끊임없이 부추긴다.

자본과 국가는 노동자 민중을 적대하며 하나로 단결해 있다. 민주주의 확대 없이, 나아가 국가를 바꾸어내지 않고서는, 노동자 민중은 삶을 개선할 수 없다.

둘째, 민주주의투쟁에서 자유주의세력의 주도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노동자 정치를 견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민주주의투쟁은 민주당, 이와 밀접한 시민단체 등의 자유주의세력, 그리고 이들의 지지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또한 아이러니하다. 자유주의세력은 지난 10년간 민생파탄의 주범이지 않는가. 신자유주의 신념을 이명박정권과 공유하고 있는, 따라서 반민주적인 이들은 민주주의투쟁을 이끌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정국을 이들이 주도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성숙의 부족, 경제주의가 원인이다. 여태까지처럼 자유주의세력에게 민주주의투쟁의 주도권을 내준다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아래서 겪었던 비운을 다시 맞이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정치투쟁을 외면하고 경제적 요구에 집중하는 ‘경제주의’를 떨쳐내고 민주주의투쟁, 정치투쟁을 주도해야 한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정권, 자본주의 국가에 맞서, 한국사회의 발전방향을 놓고서, 노동자계급 자신의 대안을 가지고서 투쟁을 벌여야 한다.

노동운동, 민중운동은 민주주의투쟁, 반자본주의투쟁을 이끌어야 하는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우리의 운동이 고양되고 다시 민중항쟁이 일어난다면, 새로운 6.10항쟁은 새로운 국가, 새로운 경제, 새로운 사회로 가는 길을 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