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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2009년 상반기 사회주의(좌파)운동 평가

- 조합주의에 머물러 있는 사회주의 세력

2009년 역시 용산투쟁과 쌍용자동차투쟁 등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이어졌다. 이 글에서는 2009년 상반기의 전반적인 평가가 아니라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세력들에 대한 평가를 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09년 상반기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많은 세력이 실제로는 조합주의에 머물러 있음’을 또 한 번 보여주는 기간이었다는 것이다.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투쟁의 성격을 부여한다.” 레닌이 그의 책인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그토록 비판했던 말이다. 이 책은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활동가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책 중의 하나이다.

임·단협 투쟁과 정리해고 투쟁 등 경제투쟁(조합주의 투쟁)은 경찰의 탄압으로 인해 정권퇴진 구호가 나오는 등 정치투쟁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많은 사회주의 혹은 좌파를 자임하는 조직들은 노동자의 경제투쟁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고, 이것이 바로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투쟁의 성격을 부여한다”라는 말의 의미이다.

얼핏 보면 당연한 말로 보이는 이 말을 레닌은 왜 그토록 비판했을까? 경제투쟁이 경찰의 폭력 진압 등으로 정권퇴진 투쟁으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이런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를 공격하는 투쟁은 아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탄압으로 인해 정리해고 투쟁에서 정권퇴진이라는 구호가 나오더라도 이 투쟁은 원래의 출발점 즉,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정치투쟁과는 아무런 연결이 없게 된다. 자본주의체제 자체에 대한 공격은 더욱더 말할 것도 없다.

사회주의는 단순히 임금인상을 하는 운동이 아니다. 노동자 민중의 삶을 억압하는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를 철폐하기 위한 운동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사회주의 운동이 이루어질 수 없다.

사회주의 혹은 좌파를 표방하는 우리 운동 내부의 세력들이 2009년 상반기에 보여준 모습은 바로 레닌이 그토록 비판했던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투쟁의 성격을 부여”하는 운동 즉, 사회주의 운동이 아니라 조합주의 운동에 머물고 있는 것, 그 자체였다.

용산투쟁에서 드러난 조합주의

1월 20일 용산에서의 학살이 자행되고 운동진영은 범대위를 구성했다. 초기에는 많은 투쟁대오가 형성되었지만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투쟁동력은 줄고, 범대위의 핵심은 사회주의 진영 혹은 좌파 진영이 주를 이루었다. 좌파진영이 범대위에 남아 투쟁을 이어간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좌파진영이 한 것은 딱 여기까지이다. 즉, 조합주의 투쟁에서 끝났다.

용산투쟁이 상가를 중심으로 한 투쟁이었지만 근본 문제는 부동산을 통한 이윤 획득 즉, 토지가 사적 소유의 대상이 되고 이윤창출의 도구가 된 자본주의이다. 하지만 좌파 진영의 용산투쟁 결합 내용은 ‘경찰의 폭력성-책임자 처벌, 무차별적인 재개발 문제’를 제기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책임자 처벌, 재개발 문제’ 요구는 분명 중요한 구호다. 하지만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자본주의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폭로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쌍용자동차 투쟁에서 드러난 사회주의 혹은 좌파 진영의 조합주의

용산투쟁에서보다 사회주의 혹은 좌파 진영의 조합주의 성격이 잘 드러난 것은 쌍용자동차 투쟁이다.

① 과격해 보이지만 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구호 - ‘위기 전가 반대’의 재현

좌파들은 지난 10여년 간 ‘위기 전가 반대’ 구호를 자신의 상징으로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 구호야말로 노동자 투쟁을 수세적이고 방어적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IMF와 2008년 경제공황은 자본가계급이 경제와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사회주의 진영의 대응은 당연히 자본가계급에게 책임을 묻고 노동자 투쟁을 자본주의에 파열구를 내고 새로운 사회인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투쟁으로 이끄는 것이어야 했다.

쌍용자동차 투쟁에서 사회주의(좌파) 세력이 견지해야 할 관점은 ‘정리해고 반대라는 위기전가 반대’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했다.

쌍용자동차의 문제가 단순히 상하이 자동차라는 개별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이며, 자본주의에 파열구를 내기 위해 과도적 요구로 국유화와 노동자통제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쌍용자동차 투쟁은 처음부터 대정부 투쟁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어야 했다.



② 좌파들의 쌍용자동차 투쟁방향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회주의나 좌파 세력들의 쌍용자동차 투쟁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졌다.

첫째, 국유화와 대정부 투쟁에는 동의했지만 실제 대중에 대한 선전·선동의 내용은 투쟁방향이 아니라 오로지 옥쇄파업과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연대파업만을 선동한 경우다. 이들은 정작 쌍용자동차의 투쟁방향을 잡을 때에는 옥쇄파업만 얘기하다 투쟁이 끝을 향하고 있을 때 국유화와 노동자통제를 선전했다.

또한 이들은 투쟁주체(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상황이 대정부 투쟁을 할 만큼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파업을 통해 가능해지면 그때 대정부 투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들의 입장은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투쟁의 성격을 부여한다”는 조합주의의 입장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따른 것이다.

둘째, 오로지 정리해고 분쇄 투쟁만 열심히 하면 되고 국유화 등의 요구는 노동자들이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입장은 정리해고 투쟁만 열심히 하면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자본주의를 철폐하기 위한 투쟁에 나선다는 것이다.

87년 이후 무수히 많은 투쟁과 열사가 생겼지만 단 한 번도 자본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투쟁으로 발전한 적이 없다. 이들은 20년간 현실에서 교훈을 단 하나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③ 쌍용자동차와 관련한 사회주의 정치세력의 독자적 정치투쟁

사회주의(좌파) 조직들은 쌍용자동차 투쟁에 열심히 연대했으며, 이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정치조직의 주된 임무는 노동자의 경제투쟁(조합주의투쟁)을 지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독자적인 정치투쟁을 만들어내는 데에 있다.

쌍용자동차는 법정관리상태이고 당연히 그 투쟁의 성격은 정치투쟁이었다. 그러나 투쟁 주체인 쌍용자동차 지부는 투쟁 초기에 이를 선언하지 못하고 옥쇄파업에 들어간 후에야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국유화’라는 형태로 정치투쟁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 구호 역시 힘의 관계에서 밀리면서 사측과의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형태로 후퇴했다.

중요한 것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요구가 후퇴된 것이 아니라, 쌍용자동차 투쟁 내내 사회주의나 좌파를 자처하는 조직들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쌍용자동차 투쟁을 초반부터 정치투쟁으로 이끌려는 시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나 좌파 정치세력들은 오로지 쌍용자동차 현장에만 있었지, 서울에서의 독자 집회 등 정치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독자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레닌의 말을 다시 한 번 인용하자면,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회주의와 좌파 세력들은 독자적인 정치투쟁 없이 “대중의 꽁무니만 쫓아다닌 것이다.”

당장 역량이 안 된다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몇 십 명이 모여서 독자 집회를 해봐야 효과도 없고 오히려 현장에 결합하는 것이 낫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가장 조합주의적인 변명일 뿐이다. 성과의 측면에서 따지면 할 것이 없다. 민주노총이 하루 총파업을 한다고 해서 쌍차 문제가 해결될 수 없었다.

성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이것은 조합주의도 아닌 실리주의의 근본 사상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쫓는 활동을 넘어서는 것. 이는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을 위해 넘어서야 할 과제이다.



여러 곳에서 사회주의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우리 사회주의 운동 수준은 여전히 말로는 사회주의지만 실제로는 조합주의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여전히 전투적 투쟁을 사회주의와 같은 것으로 여기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조합주의를 극복하지 않는 한 사회주의정당 건설은 불가능하다. 2009년 상반기 투쟁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사회주의나 좌파를 표방하는 단체들은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스스로 평가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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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 조합주의 , 쌍용차투쟁 , 용산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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