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열린칼럼] 한미FTA 묵시록

현지를 떠나온 지 어느덧 한 달, 프로그램이 방영된 지도 2주가 지났건만 난 아직도 그곳 멕시코의 취재과정에서 얻은 우울과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령의 마을을 연상케 하는 텅 빈 농촌, 문 닫은 중소기업의 잔해들로 그득한 공단지대, 끝이 안 보이는 노점상 대열, 유랑하는 노동자들과 목숨을 건 미국으로의 탈출대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빈곤은 각자의 능력부족 탓이라고 강변하는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그들. 그 안타까운 잔영들이 마치 보아서는 안 될 예언서를 들쳐본 듯 마음을 짓누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과거 멕시코 정부를 흉내 내는, 아니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한국정부의 미국과의 ‘묻지 마’식 FTA(자유무역협정) 올인 행태다. 무려 38억 원을 쏟아 부어 이런저런 미디어에 홍보 광고를 덧씌우고, 온통 장밋빛으로 분칠한 책자들을 각 급 학교에 대량 살포해대고…. 그들에게 시민사회의 공론은 숙의와 경청이 아닌 선전과 조작의 대상일 뿐이다. 게다가 정작 중요한 협상결과는 아예 공개하지 않거나 구렁이 담 넘듯 슬쩍 넘긴다. 대신 ‘의사쟁점’을 부각시켜, 마치 뭔가를 대등하게 주고받는 듯 모양새를 연출(!)한다. FTA의 골간인 투자관련 조항에서 이미 모든 핵심( 외국자본에 대한 내국인 대우, 이행의무 부과금지 , 투자자의 해당국 정부 제소권 등)을 내주고는 지금까지의 어떤 통상협정(심지어 NAFTA에서도)에서도 보장되어온 농산물 쿼터와 할당관세 부과권을 마치 많은 것을 양보해야만 따낼 수 있는 핵심 협상목표로 둔갑시킨다. 정말 이건 아니다.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국정홍보처 홈피에 재경부에서 작성한 반박 보도 자료가 게시됐다. “나프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자료도 있는데 반영되지 않았다.”, “멕시코의 부정적인 사회경제현실은 FTA 때문이 아니라 94년 페소화 위기와 후속 구조조정 노력이 미흡한 탓”이라는 주장을 들이댄다. 하여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지금 이 시점에서 IMF와 World Bank 그리고 멕시코 정부 관료들 이외에 어느 기관, 어느 연구자가 NAFTA의 긍정적 효과를 입에 담고 있단 말인가? 94년 페소화의 가치가 1/3로 대폭 하락한 것이야말로 멕시코 정부가 NAFTA의 성과로 내세우는 외형상의 성장 즉 수출증대, 외자유치 확대의 진정한 이유가 아니었던가! (97년 우리나라 외환위기 이후를 돌이켜보라.) 지난 12년간 NAFTA를 명분으로 대대적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행하고도 이제와 또다시 구조조정 타령을 읊어대는 멕시코 기득권 세력의 핑계를 무슨 대단한 논거라도 되는 양 되뇌는 한국정부는 정말 제 정신인가? 과연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만 해댈 것인가?


NAFTA의 진실은 결국 FTA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사실상 한 몸임을 웅변한다. 아무리 덮고 가리려 해도 그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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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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