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내목소리] “10원도 아깝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몇 가지 생각들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리는 논현동 최임위 건물 앞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투쟁결의대회가 열렸다.


사실 올해 최저임금 결의대회에 참여하면서는 유난히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놈의 월드컵 때문에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이유를 대보지만, 월드컵이 열리지 않았을 때에도 관심이 없기는 매 한가지였다.


올해 최저임금 결의대회가 열리는 날엔 예년보다 편해진(?)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올해부터는 최저임금 위원회 회의 시간이 변경되면서 새벽에 열렸던 집회시간도 오후 1시나 오전 9시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물론 시간이 늦춰졌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오지는 않았지만).


한때 ‘아침형 인간’에 대한 얘기들이 화제가 될 때, 꼭두새벽에 모여서 조찬모임이나 회의하는 인간들이 최저임금 회의조차 새벽에 잡아서 사람들 고생시키는 것도 모자라,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일하느라 뼈 빠지게 고생해도 별로 나아질게 없는 노동자들에게 아침형 인간의 ‘성실함’을 은근히 강요하는 게 마뜩치가 않았다.


예년의 모습을 떠올리면, 새벽에 교대하자마자 쉴 새도 없이 무가지 한 뭉치씩을 들고 집회에 삼삼오오 결합하시던 청소용역 노동자 분들에게 회의시간이 변경된 게 그나마 나아진 점이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회의시간 변경보다 제대로 된 최저임금 수준을 보장하는데 신경 쓰라고 얘기하고 싶기도 하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리는 강남


최저임금위원회 건물 앞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할 때 마다 그 뒤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지켜보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십 수 년 전 이른바 8학군에서 자식을 공부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강남땅으로 이사와 지하셋방을 전전하며 맹모삼천지교의 교리를 몸소 실천하셨던 어머님의 노고에 힘입어, 최저임금위원회 뒤에 있는 중학교에 다녀야만(?) 했던 나에게, 이곳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집값, 땅값을 감안하면 노동자들이 강남땅에 발붙일 기회야 요원한 일이겠지만,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계급적으로 확연하게 구분되는 모습으로 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최저’임금의 결정이, 한국사회에서 ‘최상’위 수준의 소득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강남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도 아이러니 하지만,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 최저임금투쟁과는 평생 무관한 사람들로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개’천에서 용 나기보다 ‘용’천에서 용 난다는 ‘교육론’이 진리로 여겨지고 있는 현실이 더욱 우려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10원에 담긴 속셈


지난 6월 29일 2007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시급 3,480원(주44시간 786,480원, 주40시간 727,320원)으로 결정되었다.


최저임금의 결정이 노사 ‘합의’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지금껏 ‘합의’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은 최저임금 결정방식의 문제점을 확연하게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노동자 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각 9명씩인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의 협상구조 안에서는 한쪽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로 한쪽의 안이 결정되거나, 공익위원이 제시한 안에 동의하는 방향으로 밖에 결정될 수 없는 셈이다.


올해에도 수정안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계속되다가 결국 공익위원들이 최종적으로 12.3% 인상된 3,480원을 조정안으로 제시한 뒤 표결에 들어갔고, 결과는 총 27명의 최저임금위원 가운데 2명의 공익위원이 빠진 상태에서 찬성이 16표, 반대가 9표로 나왔다.


재계를 빼고는 노동계와 공익위원들이 모두 조정안에 찬성한 셈인데, 공익위원 최종안의 내용이란 게 노동계 최종안보다 10원이 적고, 재계에 비해서는 10원이 많은 상황에서 ‘저쪽’은 10원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셈이다.


지속적이고 폭넓은 연대


최저임금 집회 때 마다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발언 중에 한 가지는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단지 00만원을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는 말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결정과정을 보면 단지 00만원을 더 받는 것으로 끝나버리게 만들곤 한다. 매년 그 숫자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만원단위로 하면 두 자리 수는 변함이 없다.


과연 두 자리 수의 임금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는 게 가능한가를 따져보면 답은 분명한데도, 최저임금 현실화의 발목을 잡는 이런 결정방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내년에도 똑같은 문제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레(?) 늘상 외치는 00만원 쟁취의 구호에도 자릿수 변동이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쟁취하겠다는 투쟁의 목표를 무색하게 만드는 과정을 반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매년 최저임금 결정시기가 되면 반복되는 한계와 문제들이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지만 막상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과 실천을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최저임금 투쟁이 저임금과 빈곤에 맞서 인간다운 생활을 쟁취하고자 하는 투쟁의 전부가 돼서도 안 되겠지만,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는 점이 지금까지의 중요한 성과라는 생각을 해본다.


미국의 생활임금 운동 사례를 보면, 생활임금 운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함께 참여하고 있는 종교단체에서 주일예배를 볼 때 주보에 생활임금캠페인에 함께 참여하자는 내용을 실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단다. 종교단체를 포함하여 지역의 노동조합과 주민조직과 사회운동단체들이 지속적이고 폭넓은 연대를 형성하며 새로운 운동의 전망을 만들어갔던 미국의 생활임금 운동의 사례는 참고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주일마다 교회에 모이는 그 많은 사람들이 최저임금 현실화를 부르짖는 목사님의 ‘감동적인’ 설교를 들으며, 최저임금 투쟁기금 마련을 위해 모금함을 돌리고,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해 주님께 기도드리며 예배를 끝마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는 건 한국사회에서 꿈같은 얘기겠지만, 불가능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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