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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 한가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적이 포기가 안 된다고 한다. 이중 국적 중에 하나를 가질 수는 있어도 무국적인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란다. 내가 이 나라에 꼭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리고 국가도 내가 태어난 것이 굳이 너무 좋아서 내게 국적을 준 것도 아닐 텐데 이제 와서는 국적을 내줬으나 돌려받을 수는 없단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작은 것 하나도 ‘내 것’이라면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는 요즘 세상에서 돌려받지 않으려는 태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게 아닌데;;)
인권이라는 게 자기 스스로 주장하지 않으면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 것이라서, 스스로의 권리를 대놓고 떠들어 대는 것이 참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이 나라에서는 어디서든 ‘이게 내 권리요’ 하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참 억울한 경우를 당했을 때는 그에 대한 반편향이 드러나는 것인지 목소리를 드높여 ‘내 것이오!’를 외쳐댄다. 그런데 그 마저 논리적이지 않으면 속된 말로 ‘개무시’ 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논리적인 근거를 대기 위해 종종 써먹는 편리한 도구로 발명된 것이 바로 ‘세계인권선언’ 아닌가. 국적을 포기할 수 있는 것도 권리 아닐까 싶어 잽싸게 뒤져본다.
제15조
1. 모든 사람은 국적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자신의 국적을 박탈당하거나 그의 국적을 바꿀 권리를 부인당하지 아니한다.
1. 모든 사람은 국적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자신의 국적을 박탈당하거나 그의 국적을 바꿀 권리를 부인당하지 아니한다.
어머? 국적을 ‘가질’권리는 있어도 ‘포기할’ 권리는 없네? 국적이라는 게 사실 알고 보면 대단한 벼슬자리 같은 것 인가보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요~’라고 내 국적을 써먹어 본적이 언제인지. 음… 제주도 갈 때 주민등록증 없어서 비행기 탈 때 여권 내밀어 본 것? 딱 한번 해외로 나갔을 때 입국/출국 심사 받은 것? 국회 앞에서 ‘FTA 싫어요~!’ 한 마디 했다가 경찰서로 끌려가 되먹지도 않은 법 적용 받을 때? 대체 좋은 게 뭐냐?
조국이 내게 해준 게 뭔데?
국적은 내가 그 나라의 법/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게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일 텐데, 내가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한다고 느끼면 당연히 거부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밤중 취객들의 시비에서, 땡볕 아래 달궈진 아스팔트 위의 추돌사고에서, 이웃 주민간의 쓰레기 투기로 인한 동네 싸움에서도 ‘법으로 해결하자구!’라는 외침이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지만, 진짜 법이라는 게 그런 사람들의 속사정을 시원하게 풀어줄 수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사소한 생활 속 분쟁을 법으로 해결해보는 모 방송국의 TV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은 그것이 사람들의 판결이 아니라 그 이름도 거창한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결임을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 법 테두리 안에 꼭꼭 사람들을 가둬두기 위해 ‘국적’을 포기할 수 없게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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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달밤’이란 영화에서 한 배우의 대사 때문에 한 동안 친구들과 그 대사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동사무소 직원이 예비군 통지서를 내밀 때 ‘XX! 조국이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라 소리 지르는 조폭 아저씨의 일갈. 평소에도 집회만 하면 집시법위반이다 도로교통법위반이다 해서 헌법상의 집회 시위의 자유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법이 뭐 이래?’라고 투덜댔던 사람들에게 상업영화에 등장한 그 대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람 나고 국가 났는데
국제법에서는 국적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국적에 대한 권리는 “다른 권리의 기초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UNHCR-유엔 난민 기구 홈페이지에서 발췌)고 한다. 국적을 가질 수 있는 권리가 모든 권리에 우선한다는 의미인 셈이다. 수백만에 달하는 국적 없는 난민들의 상황을 보면 유엔 난민 기구의 설명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생존해 있는 인간에 대한 권리보다 인간들이 구성한 사회 시스템이 부여한 권리가 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 예로, EU가입국 중의 하나인 슬로베니아 역사상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 중 하나는 지난 1992년 약 1만 8,000명의 슬로베니아 인이 하룻밤 사이에 국적을 박탈당한 일이었다. 유고연방에서 막 독립했던 슬로베니아 정부는 약 10만 명의 비 슬로베니아 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면서도, 정작 집시 등의 시민권은 박탈해버렸다. 슬로베니아의 사회학자 고라즈 코바치치는 “슬로베니아인 100명 중 1명꼴로 거주지와 국적을 잃었다.”면서 “이들은 직장, 연금, 의료보험까지 잃어버린 채 추방위기에 놓였고 이로 인해 많은 가정들이 붕괴됐다”(존 페퍼, ‘유럽 통합과 아시아’, 문화일보, 2004. 06. 29일자) 고 말했다.
문득 ‘바람의 딸’ 한비야 씨가 세계의 오지탐험을 할 때도 국적이 있다는 게 진짜 중요한 문제였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한비야 씨가 여행 다니며 만난 사람들에게 ‘어느 나라 국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과연 중요한 일이었을까. 인권은 인간 사이에서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고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지 국가가 부여하고 내려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 나고 국가 났지 국가 나고 사람 났을까. 인종차별주의를 국적의 차이로 무마하려 하면서 아시아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에게 가하는 무시와 차별, 집시들에게 ‘국적을 박탈한다.’면서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것들은 국가가 국민, 민중을 위해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행정적 처리 대상으로서 국민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허울뿐인 국적 유지/소유 권리, 그 보다는 진짜 안정적으로 내 생존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진짜 인권 아닐까?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