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캠페인] 에이즈 감염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증언대회,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한걸음 앞으로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AIDS예방법대응 공동행동에서는 오는 9월 ‘감염인 인권증언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세계 에이즈 날인 매년 12월 1일을 전후해서 안쓰러운 모습으로 언론에 비춰지고는 하던 감염인의 단편적 일상이 아닌, 감염인들 스스로 준비하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이 행사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2002년부터 감염인들의 인권신장을 위해 활발히 활동 중인 카노스(KOREA HIV/AIDS NETWORK OF SOLIDARITY) 사무실에서 증언대회 준비모임에 함께 하고 있는 감염인, 성진(가명)과 요한(가명)을 만났다.


언제 감염 사실을 알게 됐으며 당시 심경이 어떠했는지?
성진
2002년에 헌혈을 하면서 감염 사실을 알게 됐다. 99년부터 이반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후에 감염된 것 같다. 헌혈 후에 보건소에서 직접 나를 찾아와서 감염 사실을 알려줬다. 감염 사실을 알고 어디다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우울증에 걸려서 대여섯 번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요한 내가 최종확진을 받은 것은 2005년이다. 수출업체에서 일했기 때문에 한동안 외국에서 생활하다가 돌아와서 보건소 검사를 통해 알게 됐다. 당시만 해도 에이즈에 대한 지식이 보통 사람과 똑 같았기 때문에 정말 두려웠고 내 스스로를 탓했다. 그러다가 점차 에이즈에 대해 알게 되고 오랜 시간 잘못된 학습을 통해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을 가졌다는 것을 깨닫고 카노스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편견과 차별 외에도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고 들었다.
요한
우선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둬야 했다. 건강 때문이기도 했지만 외국을 자주 나가야 하는 직업인데 출국도 쉽지 않고 나가더라도 약값이 봉급만큼 들어가기 때문에 몸이 회복돼도 같은 직업을 구하기는 불가능했다. 현재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되어 정부의 생활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성진 나는 2차 감염으로 한쪽 눈 시력을 잃은 상태다. 그전에 개인사업을 했지만 치료와 사업을 병행하기는 솔직히 힘들다. 육체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도 어려움이 많다. 얼마 전부터는 가족들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요한 감염되고 건강이 나빠진 대부분은 직장을 못 구한다. 경제적 활동을 하지 못하므로 빈곤에 바로 노출된다.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수시로 병원을 오가야 하는데 그것을 용인해줄 직장을 찾기는 어렵고,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다고 해도 조금의 피로에도 쉽게 지치고 편도나 관절 등에 병이 나기 쉽다. 그러면 며칠을 쉬어야 하니 일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성진 물론 직장에서 감염 사실을 밝힐 수 없고, 고용주의 이해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아프게 되면 혹시나 감염 사실이 알려질까 하는 걱정에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돼도 직장에 나가기가 꺼려지는 문제도 있다.
7월 30일, 신촌에서 열린 A's people 캠페인에서 진행된 퍼포먼스의 한 장면.
다국적 제약회사의 횡포를 보여주고 있다.


감염 전과 후에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성진
무엇보다 환자가 되었다는 것이 크다. 치료받기에 바쁘다. 병원 치료 이외에 무엇을 하기 힘들다.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니 먼 여행을 떠나기도 힘들다. 집 주변이나 근교 나들이를 하는 정도다.
요한 인간관계가 단절된다. 감염 사실이 알려진 것도 아니지만 내 잘못으로 에이즈에 결렸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벽을 쌓게 되고 관계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싶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싶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다시 만나서 편견들을 넘어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고민스럽기도 하다.
성진 일상적인 접촉으로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감염된 후에는 만에 하나라도 피해가 갈까봐 조카들을 안아주기 꺼려진다. 그런 심적인 변화들이 인간관계의 단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증언대회 자체가 큰 용기가 아닐까 싶다.
성진
나는 준비모임에는 함께 하지만 증언대회에는 나가지 않을 생각이다. 밝혀지는 것이 두렵다. 너 혼자 살려고 그러느냐하면 할 말 없지만 방송이나 언론을 솔직히 믿을 수 없다. 친척 결혼식장에 갔는데 상대편 집안에 나의 감염사실을 알고 있는 간호사라도 만날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최소한 감염사실을 숨기고 널리 알려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거다. 누나 집에 가서 수건 한 장을 써도 물에 적셔서 세탁기에 집어넣고 나온다. 면도기, 칫솔 하나도 버리고 나온다. 사실이 밝혀지면 이정도의 관계도 지속할 수 없다. 경제적인 지원은 물론이고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고통도 크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거다.
요한 한국에서 가족이라면 아직도 강한 유대감이 있고 지지를 받을 수도 있지만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내가 겪은 고통을 준다는 것에 회의적이고 그런 의미에서 성진의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내 경우는 담당 공무원에게는 떳떳이 알리고 소통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서로 신뢰가 생기기도 하고, 나로 인해 그 사람들도 에이즈나 감염인에 대해서 보다 많은 상식이 생기고 편견이 깨어지는 계기가 생기기도 한다. 때문에 가족이 아닌 경우 나는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알리는 편이다.
거리캠페인에서 지지선언을 받고 있는 모습.
차별없는 별을 꿈꾸는 A's people 거리 캠페인은 9월 23일 서울역에서 다시 열린다.


작지만 에이즈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느낄 때도 있지 않나?
요한
2006년 월드컵 응원 때 나온 사람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예전에 비해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솔직히 좀 놀랐다. 또한 동성애에 대해서도 논쟁이 되고 관심이 높아진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진 에이즈가 걸리면 죽는 병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전염이 되고, 완치가 안 되는 병이기에 거기서 오는 두려움은 어쩔 수 없다. 감염인인 나조차도 두려움과 공포를 갖고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당연한 것 아닌가. 또한 동성애자들이 많이 감염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에이즈는 성적 문란에서 오는 질병이란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어쩌면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편견은 여전하고 똑같은 것 같다.
요한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다. 감염인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들이 공유되고 소통될 필요가 있다. 감염 전에는 복지나 사회안전망 등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감염이 되고 나니 자연스럽게 에이즈 정책이나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많은 문제들에 대해 감염인들 스스로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장 나부터도 얼굴을 공개하고 증언대회에 나서기에는 힘들겠지만 조금씩 감염인들이 앞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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