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부산지부의 통일 세미나 교재가 보수언론의 도마 위에 오를 무렵, 우연히도 당시 내가 읽고 있던 근대사 관련 논문에도 『현대조선역사』가 각주로 달려 있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학자가 북한에서 출간한 서적을 분석하고 참고하는 것은 문제시하지 않으면서, 교사들이 북한의 역사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북한 서적을 나름대로 가공해서 인용한 교재를 문제 삼다니!’
하지만 이건 건수 올리기 식의 단순 폭로전이 아니었다. 결국 사문화되었다던 국가보안법이 마녀사냥의 재판관으로 부활하면서, 그 희생양 전교조는 교육위원 선거에서 대거 낙선했다. 그리고 마침 때를 기다린 듯, 보수언론들이 교육위원 선거 결과를 들먹이며 사설, 기획, 칼럼 등을 총동원해 번득이는 살기로 전교조 때리기에 나섰다.
그 선두에 단연 『조선일보』가 있다. 전교조에 대한 용공시비는 그야말로 도를 넘는다. “대한민국을 공격하는 극렬 노조 테러, 죽는 길만 골라 가는 전교조”, 이것이 소위 ‘대한민국 1등 신문’이 통일 세미나 교재 사건을 다룬 사설의 제목이다. 전교조는 “선생님의 길을 스스로 포기한 가짜 선생님, 선생님으로 위장한 싸움꾼의 집단”이란다. 이번에는 『중앙일보』가 ‘외면당하는 전교조’라는 기획기사를 연재하며 ‘2중대’로 나섰다. “전교조의 친북성향, 시대착오적 이념편향성, 집단이기주의, 과격한 행동 등을 감안하면 선거 패배는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보수언론들이 전교조를 공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선을 의식하며 수구보수 세력의 정치적 결집 강화를 도모하는 동시에 진보개혁 세력의 성장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을 전교조 때리기를 통해 깔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보수언론은 전교조 마녀사냥에 이미 용도 폐기처분된 줄 알았던 ‘용공이적단체’라는 올가미를 사용했다. 전과 달리 이번에는 나름의 효과를 거두자 더욱 신명이 나서 이참에 전교조를 아예 죽이겠다고 나서고 있다. 아, 국가보안법이 결코 사문화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국가보안법 체제는 여전히 작동되고 있고, 국가보안법은 언제든지 악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지극히 상식적인 비극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아직 폐지되지 않았고, 악용의 역사는 이렇게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 비극을 연출한 것은 누구인가. 스스로 곱씹어 보면서, 또 세상을 향해 우문(愚問)을 던져본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