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내목소리] 국가주의가 헌법과 양심을 징계했다

우리가 일본 우경화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남성이며, 어른이며, 이성애자이며, 비장애인이다. 이 사회의 성별에 따른 차별, 나이에 따른 차별, 성적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신체에 따른 차별 속에서, 나는 이미 소수가 아닌 다수의 위치에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차별은, 차별로 인해 소외되는 사람들에 대한 억압이자 폭력으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차별에 따른 이득을 배분받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더라도) 것이다.
이용석 교사


폭력을 교사의 소명으로 내면화하면서


난 교사이다. 특히 남교사이다.
교실에 서는 순간 나에겐 이 사회가 부여한 권력 관계에서 학생들에 대한 권위를 획득한다. 이 사회가 나에게 부여한 이러한 권력 관계와 더불어, 특히 교사는 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학생들은 무엇인가 부족한 대상으로서 그저 배워야만 하는, 또 하나의 권력 관계 속의 권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했기에 난 학생들을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왜냐면 학생들은 아직 무엇인가를 잘 모르는, 아직 무엇인가가 부족한 대상이기에 외부에서의 적절한 자극(통제를 포함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대한민국 남성 교사로서 나에게 그 정도의 권위는 내면화되어 있었고, 그 권위에서 나오는 행동들은 폭력이 아니라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한 교사의 소명일 뿐이라고 이미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필요하다고 생각할 땐 학생들을 때렸고, 학생들을 설득하려고 했으며, 때론 학생들에게 부드러운(?) 협박을 했다.


지각한 학생은 인권이 없다?


그러나 그런 나의 모습은 내가 가장 싫어했던 모습을 닮아 가고 있었다. 바로 군대의 폭력이었다. 군대는 오직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한다. 군대를 위해 개인은 희생해야 한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남는 것은 군인 정신을 위한 육체적, 정신적 폭력뿐이다. 군대는 개인을 주체로 보지 않는다. 그 속에서 ‘나라는 주체, 특히 인간으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군을 제대하면서 난 어떠한 경우에라도 어떤 대상에게라도 폭력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싫어했던 모습을 내가 닮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면서도 더 이상 학생들에게 그 어떤 폭력도 사용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었다. 왜냐면 이 사회가 나에게 부여한 권위 속에서 난 이미 그 폭력의 정당성이 내면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권위를 내가 스스로 포기하는 것에 대해 불안하기도 했을 것이다.


일 년, 이 년, 삼 년… 해를 거듭하면서 나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폭력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폭력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폭력은 무차별적인 모습으로 나오는 것임을 어설프게나마 느끼기 시작했다. 그 폭력 앞에서는 개인도 인권도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노동자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성적소수자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여성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청소년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자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오직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정한 법과 제도만이 있었다.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 개인의 인권은 사치였다. 이 땅의 주인은 민중이라지만, 가진 자+비장애인+이성애자+남성+어른+한민족주의자로서 국가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 다수자들은 한 번도 이 땅의 주인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없다.


지각한 학생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이름표를 착용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두발이 학교 규정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학생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교복을 학교 규정에 맞게 입지 않는 학생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생각해볼 틈도 없이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었다.
청소를 시키면 화장실까지 손으로 닦아야 했다.
전체 운동장 조회 때는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듣기 위해서 뙤약볕에서도 버텨야 했다.
몸이 아파도 야간자율학습에는 무조건 참여해야 했다.
필요하지 않아도 방과 후 보충학습은 빠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오직 학교와 학교가 정한 규정만이 있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인권은 사치였다. 학교의 명예를 위해 인권은 사치였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었지만, 학생은 한 번도 학교의 주인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없다. 이렇게 지금의 학교는 이 사회를 ‘그대로’ 재생산하고 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를 뿐인 것을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이 부당하다면 내 일상의 삶에서부터 그 차별과 억압을 거부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랬을 경우, 난 이 사회의 다수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어 소수로서 또 다른 차별과 억압을 받지는 않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사는 말이 아닌 삶의 실천으로 학생들과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난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 ‘국가의 이익’이라는 허상 - 실제는 기득권을 가진 지배계층의 이해에 불과한 - 을 위해 무조건 국가에 충성하고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는 것은 국가주의이며 바로 전체주의이다. 그것은 바로 학교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다. 그렇기에 난 국기에 대한 경례부터 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이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를 거부하는, 일상의 실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를 결심하다


“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라고 학생들에게 말했다는 이유로 재직 중이던 학교의 일부 학부모가 나를 경기도교육청에 고발하였고, 조선일보는 나를 ‘편향된 가치관을 교육’하는 문제 교사로 매도했으며,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학사모)’은 나를 영구 퇴출시킬 것을 경기도교육청에 요구하고 있고, 경기도교육청은 나에게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의결하여 통보했다.


일본이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강제하려는 법 제정을 강행하려고 한다. 이에 반대하며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거부하는 일본 교사들에 대한 징계가 줄을 잇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군국주의와 우경화, 보수화를 운운하며 이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이 땅의 나는 중징계를 받았다.


국가주의가 헌법을 징계한 것이며, 개인의 양심을 징계한 것이며, 차별에 따른 억압의 거부를 징계한 것이다. 과연 차별을 억압하는 획일성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차이를 차별로 정당화하고 그 차별을 억압하는 것은 그 차별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지배계층의 전형적인 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은 바로 전체주의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 전체주의는 더 나아가 국가라는 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자신의 이윤을 유지, 강화하려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침략주의의 속성이기도 하다.


넘어야 할 큰 산을 힘겹게 넘고 있다. 그러나 그 산을 넘고자 하는 발걸음이 나 혼자가 아님을 이번 기회에 새삼 알았다. 그것이 나에게나 이 사회에 크나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 발에 힘이 남아 있는 한 계속 걸어가고 싶다. 차이가 차별로 억압받지 않는 세상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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