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10일 오후.
문화관광부 유진룡 전 차관은 서울 광진구 구의동 자신의 집으로 ‘불쑥’ 찾아온 동아일보 기자를 만났다. 열흘 전쯤 ‘잘린’ 유 전 차관은 가족과 여행을 떠나려던 참에 집 앞까지 찾아온 동아일보 기자와 부닥친 것이다. 유 전 차관은 “인터뷰 할 뜻이 없다. 나 좀 봐주라. 좀 쉬려고 한다.”고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누차 거절했다. 그리고 거듭된 질문에 청와대로부터 산하기관 인사의 낙하산 청탁 압력을 증명할 만한 내용의 몇 가지 대답을 했다.
기자에게는 이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인터뷰 내용. 동아일보 기자는 문화관광부 관계자의 발언과 차관 경질 당시 상황 및 배경 등을 묶어서 11일자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그리고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 압력 정황을 담은 이 기사는 당장 이날 오후부터 문화일보가 받아서 쓰는 등 청와대와 한나라당, 언론 등이 지대한 관심을 쏟아내는 ‘특종 기사’가 됐다.
동아일보와 함께 ‘수구언론 트로이카’를 이루고 있는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잠시 자존심을 접고 경쟁 신문의 특종 기사를 하루 늦은 12일자로 ‘받아서’ 썼다(신문기자들은 다른 신문의 특종을 자신의 신문에 뒤늦게 쓰는 것을 ‘받아쓴다’고 표현한다. 어지간한 중량감이 아니면 보통 무시하곤 한다.). 이들은 각각 1면 톱과 2~3개 면을 털어서 썼다. 이날 이후 열흘 남짓 동안 동아일보가 연일 1면은 물론, 2~3개 면을 털어서 특별한 내용은 없지만 속보를 이어 붙였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유 전 차관은 15일자 한겨레와 가진 인터뷰 기사에서는 “조중동 기자들은 주말 이후는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다.”면서 “청문회에서 인사 청탁 자료를 폭로하겠다는 14일자 조선일보의 보도는 모두 작문이다.”고 말해 이들 언론 후속 보도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남겼다.
상황이 계속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관련 당사자 중 한 사람인 청와대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은 17일 오마이뉴스에 기고문을 보내 자신의 무고함을 강변했다. 양 비서관은 “청문회, 열 번 백 번 얼마든지 해보라. 거리낄 게 없다. 야당도 면책특권 뒤에 숨지 말고 당당히 진실을 가려보자.”는 요지의 글로 일차 해명을 대신했다.
사건은 점점 진실 게임 양상으로 변해가며 미궁으로 빠져가고 있고, 국회 청문회는 불가피한 지경에 다다랐다.
#장면 2 신문사에도 투하된 청와대의 낙하산
부끄럽지만 고백해야겠다. 필자가 매달 꼬박 월급 받고 있는 서울신문 역시 지난 6월말 정부-아마도 확신컨대 청와대-의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낙하산 인사 관행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사원들 스스로 ‘독립 언론’이라는 자존심과 대의명분을 버리고, 낙하산 인사를 간절히 요청하는 모양새가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정부의 낙하산 인사 투하 의지가 그에 상응했거나 훨씬 강렬했음은 더더욱 부정할 수 없다.
지난 6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서울신문 주주총회장.
재정경제부와 포스코 등 범정부 대주주들은 이날 주총에서 특정 인물을 서울신문 사장으로 추인했다. 사실상 청와대의 낙점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그 자리 모인 주주들 모두가 암묵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바였다. 주총 한참 전부터 성명서와 공문 등을 통해 청와대와 재경부에 반대 입장을 밝혔었고, 이날 주총장 바깥에서 사원들 20여명의 ‘청와대 낙하산 인사 반대’ 피케팅 시위가 있었지만, 결과 자체를 거스를 수 없는 미약한 외침에 불과할 뿐이었다.
과거 50년 동안 정부 기관지, 독재정권의 나팔수라는 부끄러운 과거를 안고 있던 서울신문은 지난 2002년 1월 소유구조를 개편, 사원들이 주인인 신문으로 거듭 태어났다. 퇴직금을 출자 전환하고, 누진제를 폐지하며, 상여금을 삭감하는 등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우리사주조합을 만들었고, 회사의 39% 지분을 직접 소유하는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개혁 실험을 감행했다.
사장을 사원들이 직접 뽑고, 편집국장 직선제를 실시하며 편집권 독립을 이뤄냈고, 회사의 주요 현안을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등 여러 형식과 내용의 제도적 개혁을 통해 명실상부한 독립 언론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4년 6개월이 지난 뒤 사원들은 이를 스스로 포기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최고위 핵심 관계자인 L씨와 Y비서관 등의 이름이 계속 거론됐고, ‘S씨 등 현 정권 실세인 부산파가 움직였다.’는 등 얘기도 심심찮게 나왔다. 회사의 ‘비어가는 곳간’ 앞에서 사원들은 무기력했고, 낙하산이 떨어질 빈 자리를 채우고자 하는 청와대의 의지는 확고하기만 했다.
내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바뀌면 서울신문의 사장은 또 바뀌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서울신문이 아무리 없어보여도 정권 입장에서는 하나쯤 소유하고 있어도 좋을 것이 종합일간지, 신문 아닌가. 서울신문 사원들은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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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3 “적의 적은 친구 아이가”-수구언론 유일한 잣대는 ‘노무현 정권 반대’
낙하산 인사 논란 파문에서 유 전 차관은-그의 본의건 아니건, 결과적으로- 조중동과 한나라당을 통해서 노무현 정권의 부당함에 정면으로 맞선 의기로운 영웅호걸이 됐다. 언론들 뿐 아니라 그 역시 할 말은 많지만, 애써 얘기하지 않겠다는 듯 문화광광부 직원들에게 보내는 퇴임사 e-메일에서 ‘소오강호(笑傲江湖, 중국 무협소설의 제목이며 굳이 해석하자면, 오만하게 세상에 웃음만을 보낸다. 정도…?)’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유 전 차관은 본인 스스로 “조선, 동아를 찬성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해왔을 정도로 수구언론과 거리를 둬왔던 인물. 또한 국회 문광위에 참석해서는 한나라당 국회의원과도 설전을 마다하지 않는 당찬 결기를 보여줘 현 정부 들어 부이사관, 이사관, 관리관(1급)을 거쳐 차관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런 유 전 차관이었지만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 고흥길 의원 등은 ‘보복 경질’이니, ‘소신이 뚜렷한 인사’니 하면서 그에 대한 칭찬 일색과 두둔 일색으로 연일 말을 쏟아내고 있다. 조중동 역시 마찬가지로 유 전 차관을 ‘의인’으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정치적으로는 한나라당의 입장과 상반되는 스탠스를 갖고 왔으며, 언론정책과 언론 경향성에 있어서는 조중동과 느슨하나마 ‘전선’을 그어왔던 유 전 차관이었음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정도 쯤은 그들의 목표를 위해 괘념치 않았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정책에 대한 입장도 굳이 일과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분명한 일관성은 있어 보인다. 바로 노무현 정권에 얼마나 타격을 가할 수 있느냐다. 그 잣대를 보면 유 전 차관에게 보내는 찬사는 별로 낯설지 않다. 적의 적은 동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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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부재 참여정부의 필연적 귀결점(?)
참여정부도 참, 어찌 그리 약속이나 한 듯 과거 정권의 마지막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풀려 가는지 모르겠다. 최근 보여줬듯이 ‘좌파신자유주의’니, ‘친미자주’니 하는 표현에서 드러난 인식의 혼돈, 철학의 부재를 책망하며 참여정부의 좌초에 대해 쾌재를 부르기에는 우리(한국사회 범개혁진영)가 치른 희생과 잃어버린 시간, 노력 등 상실된 기회비용에 대한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권력의 일반적 속성이라고 말하면서 그저 데면데면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나버린 3년 6개월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야 하고, 돌아올 5년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정권 입장에서는 권력을 4년 가까이 운용하며 수없이 많은 인사를 산하 기관 등에 내려 보냈을지라도 임기 말 즈음이 되면 항상 아쉬움은 남고, 챙겨줘야 할 사람은 아직도 많이 남았을 법이다. 정권 실세들이 무리수를 남긴다는 점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낙하산을 투하하지 않을 수 없는 원인이다.
하지만 기세등등한 임기 초에는 잡음이 없다가도, 힘떨어진 임기 말에는 이번 사안처럼 꼭 뒷말이 나오고 그로 인해 레임덕 현상을 스스로 재촉하게 된다.
한나라당은 유 전 차관의 직접 참석 여부를 타진하며 청문회 개최 및 국정조사 등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 언론들 역시 점점 진실게임 양상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지만, 참여정부의 숨통을 끊어놓으려 숱한 의혹 제기와 함께 “배 째드리겠다.”는 말을 누가 했는지와 같은 말초적이고 선정적인 부분에 의문을 쏟고 있다.
레임덕 자초하는 정부
물론 청와대가 자초한 정황적 측면이 많다.
11일 동아일보의 첫 보도 이후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청와대는 16일이 되어서야 전해철 민정수석과 박남춘 인사수석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공식 해명에 나섰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정상적 인사협의’니 ‘추천’이니 지엽적 논란이 진행되어 왔다. 또 ‘직무 회피’라는 이유로 경질시킨 정무직인 차관을 애초 선발한 한계를 노출한 인사시스템에 대한 문제 등 숱한 의혹과 문제점들도 나타났다. 성인오락실 ‘바다이야기’와 관련된 대통령의 조카 등의 문제가 거론되면서 ‘권력형 게이트’의 주장도 나왔다. 이 기간동안 야당에서는 두루두루 문제들을 묶어서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주장했고,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남발했다.
정무수석과 인사수석의 해명은 17일 양정철 비서관의 공식 대응과 함께 상황을 ‘진실 게임’으로 몰고 가는 데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이와는 별개로 정권을 지탱해 온 한 축은 눈에 보이지는 않았을지라도 붕괴의 조짐까지 보였다.
골치 아프다.
유 전 차관이나 양정철 비서관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보지 않았으니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또 유 전 차관이 수구 언론들에 언론플레이를 했는지, 청와대가 몇 차례 말 바꾸기를 하면서 제 무덤을 스스로 팠는지 역시도 알 길이 없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들을 만나 “이번 정부에서는 게이트가 없다. 바다이야기와 관련된 스캔들도 없다.”고 공언했다. 노 대통령이 자신 있게 누차 말한 것처럼 부정부패로 얼룩진 게이트는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현 정부의 레임덕은 이번 사안으로써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정부가 신문사를 소유해?-5공 회귀한 참여정부 언론정책
이번에 낙하산 인사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아리랑TV나 한국영상자료원 등과 같은 정부의 산하기관에 대한 인사도 물론 문제다. 하지만, 민간 신문사의 사장 인사권마저 정부가 행사한 대목은, 비록 세간의 주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점입가경 낙하산 인사의 절정이었다.
‘국정브리핑’을 운영하며 자체 언론 매체로 진화하는 몸부림을 치던 정부는 아예 사장 선임권을 통해 신문사를 사실상 전면 소유하는 데까지 왔다. 전두환, 노태우 등 군부 독재정권 시절로 고스란히 돌아온 셈이다.
서울신문은 1대 주주 우리사주조합(39.99%), 2대 주주 재정경제부(30.49%), 3대 주주 포스코 (19.40%), 4대 주주 한국방송공사(8.08%)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50% 이상을 소유하지 못해 완전한 과점지배주주는 아니었지만 독립언론의 정신 아래 2002년 1월 소유개편 이후 두 차례에 걸쳐 1대 주주인 사원 주주들 스스로 사장 선임권을 행사해 왔다.
헌데 지난 5월 하순 국가의 재산을 관리하는 재정경제부는 물론,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서 움직이는 포스코와 KBS 등 3~4대 주주-이른바 범정부 지분 주주-들이 몇 시간 상간을 두고 일제히 기존 사장추천위원회 해산 및 자신들이 직접 사장을 추천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왔다.
재정경제부와 포스코, 한국방송공사를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힘이라면 뻔한 것이었다.
서울신문 내부에서는 그 주체로서 이병완 비서실장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거론됐었다. 이에 노조가 숱한 성명서와 노보, 공문 등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관련 의혹을 던지며 재경부 및 포스코 등 대주주들의 답변을 요청했음에도 대주주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자신들이 정한 프로그램을 하나씩 착착 진행해 나갔다. 그리고 하릴없이 서울신문의 사장 선임은 정부의 구체적인 의지 하에 단행됐다.
한탕주의 국감, 한탕주의 국감보도 없어졌으면…
9월 11일, 17대 국회 2006년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올해는 다수의 의원들이 상임위가 바뀐 데다가 대통령 선거를 1년 쯤 앞 둔 상황에서 정치게임에 더욱 치중할 가능성이 높다. 예년의 경우를 보면, 부실국감, 한탕주의 국감이라는 평가가 되풀이되면서 ‘국감 무용론(無用論)’ 역시 되풀이되었다. 하지만 국감을 둘러싼 언론의 행태를 보면, 이와 같은 정당성이 높은 사후 비판을 함에도 스스로 그럴 자격이 있는지 반추해보게 만드는 것이 슬픈 현실 속의 언론 자화상이다.
국감 도중에는 국회의원의 정치적 공세와 같은 한건주의 폭로 등을 충실히 보도하면서 기쁘게 화답하곤 한다. 또 국감이 끝나고 나면 시민단체 관계자 몇 사람의 말을 인용하며, ‘부실했다’는 둥 ‘한탕주의 정치공세 뿐이었다.’는 둥으로 자신들의 책임은 쏙 빼놓은 채 젊잖게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는 보도로 마무리한다. 언론 스스로 결국은 정치권의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말이다.
아무튼 찬 바람이 부는 올 가을 여의도에서 벌어질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러저러한 골치 아픈 사건들의 분명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