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운동 길찾기] 진보적 인권운동은 끊임없는 재구성의 작업

인권운동 길 찾기 3 | 자유와 평등을 함께 끌어안고 가야

지난 호에서 인권운동은 진보여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인권이라는 개념은 늘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진보하여 왔고, 앞으로도 진보할 것이라는 점을 당위로 설정하고 있는 필자의 견해를 표현한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현실에서 인권은 늘 진보의 방향으로만 가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인권은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누구도 나서서 인권을 부정하지 않는다. 최소한 경제개발우선론을 앞세워 인권을 유보하자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인권활동가들이 주장하는 급진적인 주장들에 대한 반론을 펴더라도 인권 그 자체를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들의 논리로 인권을 주장한다. 지금 당장 노동자 하중근을 때려죽이는 정권이라고 해도 그 정부에서는 인권이란 꼬리표를 달고 많은 정책들을 실행한다. 기업하는 이들도 인권을 깡그리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삼성과 같은 배짱 좋은 몇몇 기업들 빼고는 당장 눈앞에서만은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인권이 상식이 된 우리 사회에서 왜 아직도 인권은 해결되었거나 곧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볼 수 없는 것인가? 과거처럼 혹독한 정치탄압도 없으며, 고문도 사라졌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어 활동하고, 유엔인권이사회의 이사국이 된 나라이기도 한 한국에서 인권운동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인권운동의 ‘보수’와 ‘진보’의 갈림길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처음 ‘진보적 인권운동’을 제기했을 때 몇 사람들이 ‘인권운동에도 보수와 진보가 있냐?’고 물었다. 진보적 인권운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도 모호한 것이지만 인권운동의 보수화는 얼마든지 있고, 그런 현상들은 사실 너무도 많이 우리 주위에 나타나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이고 상식이 된 인권론은 서구에서 탄생하고 발전해 온 자유주의 인권론이다. 자유주의 인권론은 비록 가장 진보적인 형태로 발전하여 재산권에 대한 일정한 제한을 가하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사회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인정하지만 아무래도 시민.정치적 권리(자유권)를 중심으로 하는 인권관이다. 이런 인권관에서 인권의 주체는 개인이 되고, 그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런 인권관이 우리가 아는 국제인권조약의 핵심을 이루고 있고, 더욱이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전지구적 차원에서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요즘에는 세계적으로 인권론을 대표한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얘기다.


독재정권과 맞서서 싸우던 시절에서는 이 인권론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도 인권운동은 당연히 진보의 방향에 설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민주화 이후 자유주의 정권들이 최소한 형식적인 면에서는 자유주의 인권론의 상당 부분을 정책으로 수용하고 법제를 개선하여 국가권력의 억압적인 측면들은 많이 사라져갔다. 물론 사상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존재하고, 집회.시위는 폭력적으로 탄압 받고 있으며, 사회복지시설에서는 신체의 자유조차도 확보되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아직 자유권조차 완전하게 확보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현실도 엄연히 존재한다. 더욱이 자유주의 인권론에서조차 옹호되었던 사회복지 국가는 요원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 자유권도 늘 시대에 맞추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재해석되어야 한다. 국제인권조약이나 헌법에서 규정하는 ‘시민’이나 ‘국민’의 권리가 아니라 인간의 권리 일반으로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시민이나 국민에서 배제된 사람들- 이주자, 장애인, 성소수자, 어린이.청소년, 노숙인 등의 목소리가 반영된다면 자유권은 다시 급진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지 않을까? 자신들의 존재조차 드러내지 못했던 이들 소수자들은 1990년대를 경과하면서 사회적으로 자신의 존재들을 드러내고 있지만 아직 그들이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앞서도 말한 것처럼 아예 보수적 정치운동의 일환으로 활동하는 인권운동단체들은 우리가 논하는 인권운동 범주에서 제외하고 말하더라도 자유권을 바라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보수적 인권운동과 진보적 인권운동은 갈리게 될 것이다.


나아가 보수적 인권운동은 마치 자유주의 인권론처럼 대체로 사회권에 대한 경시 태도를 견지한다. 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않더라도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경제체제가 갖는 착취적 성격에 대해서는 애써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도 평등을 말하지만 법 앞의 평등이나 기회의 평등에 만족한다. 평등의 형식화는 사유재산권을 우선적인 권리로 설정해 놓은 자유주의 인권론의 근본적인 한계로부터 비롯된다. 사유재산권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면서 사회복지국가로 나아갔던 서구에서 최근 사회복지국가의 시스템이 해체되는 것은 그만큼 사회권이 핵심 가치로 구성되어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반증일 것이다.


진보적 인권운동이기 위한 요소들


진보적 인권운동에 대한 인권운동의 모색은 아직 뚜렷한 방향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진보적 인권운동에 대한 논의는 각 단체나 활동가들의 내부 논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 각각의 논의들이 각 단체나 개인 활동가들의 의견으로 머물지 않고 인권운동 진영 내에서 건설적인 논의로 전개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인권활동가들은 인권운동이 진보적이기 위한 요소로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제시한다. 물론 이 제안들은 우리 인권운동이 서 있는 현실을 고려한 제안이다.


첫째, 진보적 인권운동은 문서 안에 갇혀 있는 인권을 현실로 끄집어내서 현실의 질서를 바꾸어내는 것이다. 선언이나 조약으로 국제사회가 합의한 보편적인 인권의 가치들은 아직 문서 안에서만 진보성을 갖춘다. 사실 세계인권선언의 조항들이 인권의 최소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실현된다는 것은 아직껏 불가능하다. 문서로 약속된 보편인권은 잊힌 채 반인권적인 기존질서는 완강하게 유지된다. 이 기존질서와 가치와의 투쟁은 진보적 인권운동의 기본이다. 가령 인권을 말하면서 국가보안법이 온존하는 기존 국가안보질서와 투쟁하지 않으면 결코 진보적 인권운동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진보적 인권운동은 지금까지의 인권의 한계를 지적하고, 넘어서기 위한 운동이다. 서구에서 탄생한 인권 개념에서 인권의 주체인 ‘인간’의 범주에는 백인, 남성, 자산계급으로 한정되었다. 그런 ‘인간’ 범주의 한계는 인권 개념의 한계로 연장된다. 여성이나 어린이, 장애인과 같은 층들은 이 주체에서 배제되었거나 인권의 이름으로 억압받을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정치과정에서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편적 인권의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없었고, 그들의 입장이 반영될 수 없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입장에서 기존의 인권의 한계를 검토하고 재구성하는 일은 끊임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셋째, 진보적 인권운동은 인권을 실현하는 것을 운동단체나 활동가가 대리하는 것을 지양한다. 근대 자본주의 이후 인권의 주체로 대중들이 제대로 대우받은 적은 없다. 기껏해야 자신들의 대표들에게 주권을 위임하였고, 그들이 대중들을 대리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대중들은 전일적인 당과 국가에 의해서 대리되었다. 그 동안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 인간들이 인간으로 승인받고, 그들이 인권의 주체로 서도록 하는 것이어야 진보적 인권운동일 것이다. 그래서 과정과 방법으로서 진보가 필요함을 인정하고, 그렇게 되도록 인권교육을 통한 의식화.조직화를 해내는 것이 진보적 인권운동일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대중들은 민주주의 체제를 발전시킬 것이다.


‘상대적 진보’와 ‘절대적 진보’


넷째, 인권운동의 연대성을 회복함을 통해 반인권의 근본구조의 변혁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의 인권운동은 자신들의 영역 속에서 자신들의 필요에 의한 운동에 매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등장하는 소수자 운동은 거대담론 벽을 뚫고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는 일정한 정도 성공했고, 그들은 인권운동의 지평을 넓히는 데도 일조한 면이 있다. 그러나 운동주체들이 각각의 영역들에서 자신들의 운동에 매몰되는 동안 총체적인 사회적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각각의 영역에서는 일정한 성과도 있지만, 인권보장체계의 총체적인 위기에 대응하는 운동으로는 나아가지 못하는 심각한 한계도 노출된다. 진보적 인권운동은 모든 인권현상들의 이면에 있는 인권의 현실을 규정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이해와 이를 바꾸기 위한 노력들을 경주하는 것이어야 한다. 단기적인 목표만을 설정하고 뛰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장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와 연대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인권활동가는 상대적 진보와 절대적 진보를 헌법질서를 기준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현대 국가의 헌법은 기본권이라는 이름으로 인권기준을 규정하고 있고, 한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제시한다. 국가는 헌법질서를 구현하기 위한 합리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률을 동원한다. 하지만 헌법질서는 대체로 국가의 지배세력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상대적 인권운동은 이 헌법질서 안에서 최고 수준의 합리성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것마저도 우리 인권운동 내에서는 힘에 겨운 과제일 것이다. 헌법 체제 내의 상대적 인권운동은 헌법이 제시한 인권기준을 지속적으로 재해석하고 그 기준을 높여나가는 운동일 것이다. 가령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을 과거 냉전주의적, 수구적 해석이 아닌 보편인권 개념에 입각하여 국제인권조약의 기준에서 재해석하고, 그에 따른 법률들을 개정 내지 제정하려는 노력이나 과거 인권유린을 자행한 기관들의 폐지 또는 개선을 위한 노력들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반면 절대적 진보의 입장은 헌법질서 내의 합리성 그 자체를 문제삼는다.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고, 사유재산제를 우선적인 가치로 설정하는 헌법체제를 넘고자 하는 것이다. 인권 기준이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를 넘어서 평등의 기준이나 관념을 바꾸어내고 재구성한다. 통합과 배제를 통해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를 양산해내는 지배전략을 파탄시키는 것까지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공세를 저지하는 일은 자본주의 체제원리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질서로는 불가능하며,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근절하는 새로운 헌법질서를 만들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때 인권운동은 인간해방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진보적 인권운동을 제약하는 현실적인 요소들


하지만 위에서 제시된 활동가들의 의견은 아직 정교한 이론체계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고,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인권현실을 규정하는 구조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결여되어 있다. 아울러 우리가 자유주의 인권관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사회주의 인권체계 또는 2차 대전 이후 이른바 제3세계 국가들에서 논의되었던 집단적 인권체계에서 그 긍정성과 한계를 검토하여 보완하고 있지도 못하다. 그렇지만 이런 진보적 인권운동에 대한 초보적인 논의마저도 한없이 부족한 역량의 인권운동, 그것마저 파편화되어 있는 인권운동의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신좌파 이론가였던 허버트 마르쿠제는 20년 전 쯤에 다음과 같이 현대 사회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보수주의적인 대중 매체가 반쯤 독점된 상태에서…사이비 민주주의의 과정이 동일한 사회와 대규모로 면역된 다수를 만들어 내고 재생산하는 단계에 따라 정치 교육 및 그 준비는 전통적인 자유주의의 형식을 넘어서야만 한다.”


지금은 보수주의적인 대중 매체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고, 그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사이비 민주주의가 구조화되어 있다. 한미 FTA 문제나 전략적 유연성을 추진해 가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사이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실에서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곱씹어 볼 말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민중 배제의 민주주의이건, 87년 체제의 위기이든 우리 사회는 막 정착되기 시작한 초보적인 인권기준이나 인권보장체계마저 위협당하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적 인권운동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다음 호에서는 우리 인권운동의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인권운동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보도록 한다. 그런 뒤에 진보적 인권운동의 방향에 대해서는 이 연재의 결론부에서 다시 정리해 보도록 하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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