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한상희의 쇳소리] 통상절차법안을 위한 변명

현대사회는 풍요해질수록 위험도 증가한다. 핵발전의 과학은 편익과 함께 체르노빌의 재앙도 안겨준다. 개인의 발견은 근대 이후 최대의 사건이지만 그의 무한욕망과 신자유주의의 ‘잘못된 만남’은 수많은 인간을 양극화의 질곡으로 처단한다.


이 역설의 위험사회를 두고 울리히 벡은 비판적 성찰과 대항담론의 형성을 요청한다. 기업이나 관료가 생산하는 근대화담론이나 지식들에 숨겨져 있는 한계들을 천착해 내고 그에 대한 사회적 제어장치를 구축하는 대중적 노력을 촉구하는 것이다.


최근 한미FTA 등 통상조약의 체결과정에 국회가 관여할 수 있도록 한 통상절차법안은 이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실제 한미FTA의 체결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논의 과정에서 대중들은 무엇으로 대접되고 있는가이다. 대중이 그 “풍요”에 내재하는 수많은 위험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단순한 정책대상으로 전락하여 마냥 나라님의 은전만을 기다리는 수혜자·소비자의 처지로 전락되어 버리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예의 통상절차법안은 이 점을 주시한다. 종래 관료들 혹은 자본가나 정치권력에 봉사하는 테크노크라트 집단에 장악되어 있던 조약체결권을 국회가 공유하면서 사전적·예방적으로 그 위험과 질곡을 관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이들 집단이 만들어내는 지식담론-혹자는 이를 ‘은밀하고 치밀한 폭력’이라 한다-에 은폐되어 있는 수많은 위험들을 비판하고 교정하는 일련의 사회적 제어장치를 구축해 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현 정부가 조악한 헌법해석론을 내세우며 이 법안을 저지하고자 노력하는 현실은 정녕 실망스럽다. 실제 우리 헌법은, 조약체결은 원칙적으로 행정부의 권한으로 하되 국회에는 예외적인 동의권만을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통상절차법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너무도 고리타분하다.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1987년의 시대에는 의연히 동서진영 간 냉전이 지속되었고 독립된 주권을 가지는 국민국가가 법운용의 중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현대는 이미 경제의 세계화가 절정에 달하고, EU등 권역별 통합은 새로운 법질서를 창출하는 근원이 되고 있다. 오늘날 변화된 국제법 환경에서 국제조약은 국경을 뚫고 국가내부에까지 깊숙이 침투한다. 그것은 국민들의 생활 하나 하나까지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날의 IMF체제가 그러했고 오늘날의 미군기지 이전조약이나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또 그러하다.


요컨대, 조약체결행위는 국회의 입법행위와 유사한 혹은 그 이상의 힘을 가진 또 다른 입법행위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통상절차법안이 정부의 조약체결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조약체결권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에 국민국가적 주권개념에 고착된 헌법이론을 빌어 권력분립 운운함은 오히려 반시대적이다. 차라리 입법이든 조약체결이든 국민의 생활 그 자체를 규율하는 국가적 조치들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나아가 국민들의 자기운명결정권이라는 인권요청은 어떻게 실천되는지가 보다 중요한 헌법사항이 된다. 그리고 통상절차법안은, 신자유주의의 강제에 밀려 “무언가 거대한 괴물 같은 것이 체계적으로 생산되는” 현시대의 질곡을 털고 대중의 참여에 의한 대항담론의 형성기회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가장 헌법 친화적 법안이 된다.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의 탐욕이 권력분립이라는 헌법적 가면 하에 양자동맹을 체결하는 이 분열증적 국면을 깨치고 진정으로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최저한의 요건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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