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개발은 발전권인가

유예되어야 할 것은 인권이 아니라 발전정책

내가 어렸을 때는 도로에 ‘로터리’라는 것이 많았다. 중간에 무슨 탑이 세워져 있고 차들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곳을 그렇게 불렀다. 어느 날 자주 다니던 로터리에 ‘수출 100억 불 달성기념탑’이 세워졌고, 그걸 차안에서 바라보며 빙그르르 도는데 놀이공원에 가서 회전목마를 타는 것처럼 즐겁고 자랑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수출량, GNP, 주식시세, 통화가치 등 일상을 장악하고 있는 지표들이 보여주는 ‘성장’이 무엇과의 거래를 통해 이뤄졌고, 그 성장의 열매가 누구의 몫이 되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어른이 되고도 한참 후에서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떨까? ‘뉴타운 환영’, ‘재개발 환영’ 등의 펼침막으로 도배된 거리를 지나면서 마냥 뿌듯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어디로 가란 말이냐’, ‘생존권을 보장하라’ 등의 댓글을 달고 속 태우는 사람들이 있다.


인권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히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삶의 터전 위를 달릴 때마다 쫓겨나는 사람들, 환경파괴, 생계수단의 박탈, 인권침해라는 정류장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런 정류장에 멈추지 않고 논스톱으로 달리는 이들은 ‘경제성장이면 다 된다!’는 확성기를 끄지 않는다. 그 소리에 맞춰 흥얼거릴 것인가, 아니면 정류장에 내팽겨쳐진 사람들을 태우고 목적지를 변경할 것인가가 오늘날 개발이 직면한 문제이다.


발전권의 이중성


개발 또는 발전으로 번역되는 ‘development’란 단어는 상당한 이중성을 갖는다. 최근 인권분야에서 ‘발전권’이란 말을 쓰고 있지만, 개발 또는 발전이란 말이 갖는 성장지상주의적 인상을 쉽게 지울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초고속 경제성장을 의미할 뿐인 발전, “정국의 안정은 경제발전의 대전제”이기에 사상.양심.표현.결사의 자유 등을 억압하는 발전, 경제만 성장하면 빈부격차나 소수 엘리트에 대한 권력집중현상도 치유될 것이라는 경제만능주의 발전, 재분배에 대한 요구는 경제성장을 통해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또 다른 성장목표를 끊임없이 제시하는 발전…. 흔히 이해되는 발전은 이런 것들이다.


그럼 인권에서 말하는 ‘발전’이란 무엇일까? 우선 참조할 수 있는 것은 국제인권기준에 등장한 발전권에 대한 정의이다.


대표적으로 1986년 유엔총회에서 채택[찬성 146, 반대 1(미국), 기권 8]된 ‘발전의 권리에 대한 선언’을 통해 보면 발전이란 “포괄적인 경제적.사회적.문화적.정치적 과정으로서, 발전과 그로부터 산출되는 이익의 공정한 분배에 있어서의 자유롭고 적극적이며 의미 있는 참여의 기초 위에서 전 인구와 모든 개인들의 복지의 부단한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UNDP(유엔개발계획)의 정의를 보면 “인민이 자신들의 필요와 이해에 따라 자신의 완전한 잠재성을 발전시킬 수 있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이끄는 선택을 확대하는 것”이 발전이다.


물론 이런 정의가 있다고 해서 그를 둘러싼 해석이 한 목소리인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안이라는 의미심장한 주장에서부터 발전권은 특정한 대상을 가진 구체적 권리가 아니라 포괄적인 (우산 같은) 개념이라는 주장까지 발전권을 둘러싼 해석은 다양하다.


발전권을 빙자한 유사 주장들이 오히려 넘쳐난다고도 볼 수 있다. 선진국이 아닌 타 지역을 개발시키는 것을 발전으로 해석하면서 기초건강보호나 기초교육 등을 끼어 넣는 방식으로 발전권을 이용하는 세력도 있고, 발전의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성격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GNP의 성장을 핵심요소로 여기거나 발전권을 여타 인권, 특히 시민.정치적 권리에 대한 억압에 대한 합리화 도구로 이용하는 정부들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 발전권의 외피를 두른 또 다른 성장주의와 다를 바 없다.


20세기 마지막 국면에 인권의 무대에 등장한 발전권은 논쟁적이며, 모호하며, 미완이라는 수식에 둘러싸여 있다. 발전권을 오해 내지 오독하지 않기 위해 ‘발전’에 대해 ‘인권’의 옹호자들이 강조하는 점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접근법


우선 인권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강조한다.
발전권은 시민.정치적 권리(자유권)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사회권), 그리고 인민의 자결권 실현이 더불어 실현되어야 하며 각 권리가 서로의 필수적 조건이 된다고 본다. 인권을 자유권과 사회권이라는 범주로 나누어 다르게 취급하는 기존 경향에 분명히 반대한다.


총체적 접근과 더불어 발전권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인권에 대한 ‘구조적’ 접근이다. 기존의 인권체계가 기반하고 있는 개인적이고 추상적인 접근법에서 벗어나 인권의 실현을 저해하는 사회 부정의와 불공정한 국제질서(식민주의, 신식민주의, 세계경제질서, 침략과 위협, 모든 형태의 차별 등)에 대해 문제제기하면서 사회정의와 공정한 국제질서를 구조적 조건으로 요구한 것이 발전권이다. 따라서 발전으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지적은 명확하다. 불평등의 심화를 동반한 경제성장, 부와 권력의 집중화를 증대시키는 성장, 교육.보건.성차별의 시정.환경보호 같은 사회지표들의 향상이 없는 성장, 시민.정치적 권리에 대한 침해와 동반된 성장은 발전과정으로 간주될 수 없다.


둘째 인권에 기반을 둔 접근(human rights based approach)이다.
사회마다 추구하는 발전은 다를 수 있다. 특정한 체제나 질서를 못박아 놓고 그것만이 발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체제나 질서를 추구하든지 간에 그 ‘과정’이 ‘인권적 방식’으로 추구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인권적 접근을 주창한 한 민간단체 연구자는 “인간에 중심을 둔 발전을 증진하고, 차별 없이 모든 인간의 타고난 존엄성을 인정하고, 여성과 남성간의 평등을 인정하고 증진하며,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와 선택을 증진시키며, 경제적 형평에 기반을 둔 국가적 및 국제적 체제를 증진하며, 공적 자원 및 사회정의에 대한 접근에서의 형평, 인민간의 상호존중을 증진”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의 정의에 따르면 “국제 인권 체제의 규범.기준.원칙을 발전의 계획.정책.과정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규범과 기준은 국제인권조약과 선언에 담겨있는 것들이고, 원칙은 ‘평등과 형평’, 국가의 ‘책임성’, 권리주체의 ‘권한 강화’와 ‘참여’, 그리고 특히 취약집단에 대한 관심과 집중이다.


UNDP도 “발전에 대한 인권적 접근”이란 용어를 쓰면서, 인간발전이라는 목표에 기반을 두어 국가의 입법과 거버넌스 프로그램 속에 체계적으로 인권의 사안을 주류화하는 것을 강조한다.
인권적 접근에서 강조하는 원칙들 중에서 주목할 것은 ‘참여’이다. 발전권에서는 무엇보다도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발전권선언에서는 “모든 개인들의 발전에 대한 능동적이고, 자유롭고, 의미 있는 참여”, “발전권의 능동적인 참여자이자 수혜자”로서의 인간, “여성이 발전과정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할 것”, “발전의 중요한 요인이 되는 모든 영역에서…대중적인 참여를 장려” 등이 연거푸 언급된다.


셋째, 지금까지와는 다른 ‘능력’을 추구하는 접근이다.
여기서의 능력은 국가경쟁력, 돈벌이 능력 같은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하고 영위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 것이다. 즉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가치 있는 삶에 참여할 수 있는 선택의 강화이다. 어쩔 수 없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고,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을 파괴당하고, 인간을 포함한 자연을 해치는 선택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식량에 대한 ‘능력’은 돈을 잘 벌어 남보다 더 좋은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이용가능하고, 접근가능하고, 비용을 감당할 만하고, 문화적으로 적절한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농부가 지역에서 적절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고, 노동자가 그것을 구입할 수 있고, 전체 인구가 적절하고 안전한 영양을 취할 가능성이 있는 조건이 식량에 대한 능력이다.
도움 받고 구제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권한강화로, 개입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자기 삶의 발전의 주역이 되는 것이 발전권에서의 인간 능력의 실현이다.


이런 능력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 ‘인권교육에 기반을 둔 접근’이다. 무엇이 국익이며, 능력인가를 놓고 끊임없이 다투는 사회에서 인권적 선택을 위해서는 인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발전권이 침해당한 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결정이란 것이 도대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데 압력을 넣는 자는 누구이고, 그런 결정의 가장 큰 수혜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발전과정을 감시하는 것, 보상과 구제와 정의를 추구하는 피해자의 투쟁과 함께 하는 것, 공적 자원을 오남용하는 책임자들의 책임을 묻는 것, 인권과 부합되는 발전의 원칙을 이해하는 것 등이 인권교육이 기여해야 할 일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발전’ 자체를 인권으로 분명히 인식하는 접근이다.
70년대 초반 발전권이 공식적인 인권으로 제기된 이후 발전권에 대한 비판적.회의적 견해와 옹호간의 각축은 계속되어왔다. 발전권을 분명한 인권으로 이해한다면, 기존의 경제발전 관행을 옹호하려고 구상된 정치적 수사에 이용될 수가 없다. 흔히 지배적인 주장은 ‘발전이 인권존중보다 우위에 있다.’, ‘인권이 실현되려면 어느 정도 수준의 발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발전계획과 이행의 모든 과정에서 모든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발전권의 기본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유예되어야 할 것은 인권이 아니라 발전정책이며, 수정되어야 할 것도 인권원칙이 아니라 그에 반하는 발전정책과 관행이다. 물론 현실에서 수시로 무수하게 침해당하는 것은 발전권이라는 인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권이 없어지거나 포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발전권을 분명한 인권으로 인식할 때, 그에 따른 의무자와 의무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 모든 권리에는 그에 상응하는 국가 또는 기타 의무자의 의무가 있기 마련이다. “의무가 없는 경우 인권에 대한 요구는 단지 느슨한 말로 보여질 뿐”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구체적인 사회경제적 정책이 없는 발전권은 거짓된 권리다.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의 이분법 또한 잘못된 것이다. 구체적인 사회경제 정책은 경제.사회.문화.시민.정치적 권리의 총체성과 상호의존성 속에서 분석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따라서 발전권에 대한 의무는 국제법 및 국내법에 따른 여타 인권에 대한 의무와 다를 바 없다. 발전정책과 연관되는 구체적 인권이 특정 상황마다 분명히 지적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의무가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한편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의무자”라는 말이 있다. 국가가 일차적이고 주요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힘은 바로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의 의무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발전권의 장애물


앞서도 말했지만 발전권은 국익론 등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 인권증진을 위한 실천적 대화보다는 정부들의 뻔한 입장을 나열하는 정치적 대화에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사실상 발전권이 대두된 초기부터의 문제이다. 3세계는 발전권이 존중된다면 부당한 국제경제질서가 보상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고, 1세계는 원조나 부채탕감과 같은 요구와 기대를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썼다. 흔히 정치적 수사에 머무르기 때문에 실천방법은 빠지기가 십상이다. 선언만 늘어놓고 행동 계획 같은 건 내놓지 않는 것이다.


또한 발전권에 대한 심정적 동조와는 달리 발전권에 대한 이론적.경험적 지식은 취약하다. 인권영향평가라는 것은 아직 신조어일 뿐이고 발전관련 활동에서 인권실현에 기초한 분명한 지침, 평가기준, 우선순위 같은 것은 모호하며 국가정책과 발전계획이란 것이 인권의 실현에 관한 규정을 담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개발의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경제성장 예상수치와 장밋빛 청사진은 제출되어도 발전과정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고(벌어질 것이며), 어떻게 결정이 이뤄졌으며, 어떤 압력이 우선순위 결정에 영향을 줬고, 어떻게 이해관계자가 그 과정을 결정했는지를 알 수 있는 근거는 제공되지 않는다. 이런 장애물들이야말로 곧 발전권의 당사자들이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일 것이다.


“발전의 권리는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이기에, 모든 인간들과 인민들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발전에 참여하고 이에 기여하며 이를 향유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그 속에서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다.”(발전권 선언 제1조)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류은숙 | 인권운동연구소 활동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