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지역과 민주주의를 개발이 좀먹고 있다

새만금 사업과 지역개발

지역개발=발전 이라는 공식을 만드는 과정은 아주 간단하다. 지역이라는 공동체와 주민들에게 ‘가난’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그곳에 개발의 ‘신천지’를 보여주면 된다. 이렇게 되면 어느새 좀처럼 꺾이지 않는 ‘신화’가 탄생된다. 전국이 무차별 지역개발로 난리 아닌 난리가 되고 있는 와중에 어떻게 이러한 공식을 만들어 가야 하는지 전형을 제시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새만금 간척사업이다. ‘지역개발’ 이라는 논리 앞에 이미 사회적 담론으로 성장한 ‘지속가능한 개발’, ‘인권과 조화로운 개발’은 초토화 되다시피 했다. 또한 지자체가 정부에게 어떠한 부담을 끼쳐 사업을 강행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개발론자 중심의 ‘지역개발로드맵’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만금 찬성 프로레슬링 대회까지


1991년 11월 28일 성대한 기공식과 함께 막이 오른 새만금 사업은 이후 총선, 대선, 각 지방선거 등을 거치면서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선거와 ‘합체한(?)’ 새만금을 장식한 미사여구는 어떠한 선동문구에도 뒤지지 않는다. “단군 이래 최대 간척사업”, “ 전북 최대의 숙원사업”, “세계 최장방파제”등 최(最)자가 가장 많이 들어간 지역개발 사업일 것이다. 새만금을 표현하는 미사여구의 백미는 “낙후된 전북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국가주요 사업으로 진행되지만 개발에 따른 이익은 마치 전북만을 위한 것인 양 포장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선거 때 전북에만 오면 새만금 사업을 반복하게 된다. 국책사업이라면 온당히 전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함에도 오로지 사업 판단의 기준이 지역의 여론과 표로 집중되는 현실은 지역개발의 망령을 부채질 하는 꼴이 되었다.


거의 10년 동안 지역 언론의 헤드라인을 가장 많이 장식한 것 또한 새만금 사업이다. 새만금 사업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나 환경단체가 지역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의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했다. 하지만 새만금 사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 내지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만 하면 지역은 어느새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 대대적인 찬성 여론몰이가 전개됐다. 관과 관변단체가 총망라 되어 대정부 규탄투쟁을 전개하기도 하고 ‘전북 홀대론’을 유포하기도 했다.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아침방송에서 저녁방송까지 새만금 찬성 홍보로 도배를 하기 일쑤였다.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지역 인구의 약 80%가 찬성 서명을 하기도 하고 새만금 찬성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심지어 새만금 찬성 프로레슬링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 것을 보면 한마디로 여론 ‘쓰나미’였다. 새만금 찬성은 선이고, 반대는 악이라는 어이없는 기준점 이외에는 용납되지 않는 그런 흉물스런 ‘쓰나미’였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새만금 공사 강행은 어민들의 삶의 터전과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주었던 세계 최대 갯벌 중의 하나인 새만금 갯벌을 사라지게 할 처참한 위기를 만들고 말았다. 정부든 지자체든 더 큰 문제를 야기한 것은 새만금 사업을 평가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해 후대에 이 정책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조차 마련되지 않은 채 점입가경의 상황으로 치닫게 했다는 점이다. 지역개발의 시작과 끝의 모든 판단 기준이 과정과 절차도 없이 만들어진 ‘여론’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역개발이라는 명제에서는 개발우선이라는 획일적인 답이 가능하게 한 지역의 왜곡된 여론 형성구조가 있다. 이러한 여론형성의 기반 위에 개발론자와 자치단체의 장이 개발의 원칙을 세운다면 어느 사업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540홀 골프장, 중국까지의 해저터널…


올 해 치러진 지방선거가 단적인 예이다. 끝물막이 공사가 끝난 후 치러진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후보자로 나선 정치인들은 자신이 오늘의 새만금 사업이 있게 한 공로자이며 자신이야말로 새만금을 조기에 완공시킬 적임자라고 내세웠다. 새만금 찬성 마라톤 참가, 삭발 투쟁 참가 등 새만금 사업과 자신을 결부시키는데 혈안이 되다시피 했다. 이러한 사진과 현수막은 항상 첫 면을 장식하고 아예 선거 시작을 새만금에서 시작하는 과감한(?)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새만금 사업 논란을 가중시킨 것 중 하나인 “무엇으로 개발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매니페스토 방식에 어긋났건, ‘헛공약’이라는 비난을 받건 간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미 선거 전에 농지로 출발해, 동북아 물류단지, 세계 최대 540홀 골프장, 카지노까지 상상할 수 있는 개발은 모두 다 포함되었다. 심지어 미군기지 확장까지 포함되어 저마다의 욕심을 내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지역발전을 위해 여러 개발을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 무차별 공약을 남발했다. 새만금 자기부상열차, 새만금-중국 해저터널 등이 버젓이 공약이 되어 시민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켰다. 물론 타당성은 단순했다. 모두가 ‘지역발전’을 내세웠다. 누군가 금번 지방선거를 새만금 공약 경쟁 선거로 혹평한 것은 그 정도를 가늠하게 한다. 새만금 사업과 연계해 크고 작은 일들을 하겠다는 공약을 합치면 새만금 사업 하나로 100여개의 유사 공약이 제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단순한 논리로 그들의 어이없는 주장이 인정되고 주장되는 현실이 수년 동안 계속되어온 새만금 찬반 논란의 현실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동상이몽이 논란이 되고 사회적 합의의 기초가 되기보다는 신천지를 상상하는 저 마다의 자유로움이라는 ‘관용’으로 타당성조차 논의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새만금을 지켜온 사람과 뭇 생명의 몫은 있었을까? 새만금 연안 어민들은 한해 수입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새만금 사업의 대가로 받았다는 죄스러움에 발언조차 차단당했다. 또 지역발전이라는 공룡 앞에 반대의 동조자는 곧 여론의 뭇매가 될 수밖에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현실에 선뜻 자신의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끝물막이 공사가 거의 완료될 즈음, 어민들은 할 수 있는 말을 모조리 뱉어내며 해상시위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막아보고자 노력했다. 시민단체, 종교인들도 지역도민과 국민들에게 마지막 호소를 하였다. 하지만 간절한 염원은 건설장비의 굉음에 묻히고 말았다. 갯벌이 아니면 떠나야 하는 수많은 어민은 이제 남의 땅이 되어버린 바다에서 마지막 권리마저 버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빼앗길 수 없는 인권은 설 자리를 상실하고 말았다. 인권은 맥없이 지역개발 앞에 양보되는 것, 모두의 발전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으로 자리 잡게 된 상황이 되었다. 그들의 권리가 파괴되어 조상대대로 일궈온 지역의 공동체는 파괴되었다. 이들의 절규가 담아질 그릇이 인권이라면 그 그릇조차 산산조각 난 현실에서 말이다.


절규가 담길 그릇까지 산산조각 난 현실


이제는 특별법을 만들어 농지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내부 개발을 해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같은 방법으로 웅장한 새만금 방조제를 시각적 효과로 해서 언론을 통한 캠페인도 계속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생태계가 파괴되어 가고 있는 현장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망연자실한 어민들의 한숨은 날로 커져 지역 공동체는 갈등과 회한으로 가득 차서 웃음과 생기를 잃은 지 오래이다. 또한 이들의 문제는 하나의 기억으로 사라질 처지이다. 이 넓은 바다를 흙으로 메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산을 깎아내고 주민들과 갈등을 겪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파괴를 동반한 지역개발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역개발=발전’의 논리는 지역개발의 모든 추진과정에서 원주민들의 아우성과 환경파괴는 통과의례 정도로 인식되어 최소한의 사회적 논의와 합의 기반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일방적 개발은 민주적 토대를 잠식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21세기 지역개발논리가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을까? 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다. 제도적 보완장치가 존재하는가? 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다. 지역사회가 언제부터인가 ‘지역개발과 인권’이라는 화두를 던져놓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보완장치를 만들 것인지, 지자체의 지역개발방식에 대한 합의구조를 어떻게 다양화해서 시민들의 광범위한 참여로 개발의 동력을 만들 것인지 모두가 고민의 시작단계에 있다.


환경과 사람이 철저히 배제된 것이 구시대 막개발 이었다면 지금의 새만금의 진행 논리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하나의 개발 사업으로 모두가 존중되거나 상생한다는 기대치는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 다만 개발에 대한 반사이익을 누가 좀 많이 가져가는 아귀다툼만이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배타적 개발, 승패와 우열이 분명한 지역개발이 득세하는 새만금의 추진과정은 한국사회가 뒷걸음치는 표상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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