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크게 계획도시와 자연도시로 나뉠 수 있다. 전자는 처음부터 계획을 세워서 만든 도시를 뜻하고, 후자는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만들어진 도시를 뜻한다. 달리 말하자면, 계획도시는 계획적 개발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이고, 자연도시는 비계획적 개발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이다.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도시화가 강력히 추진되면서 일반적으로 계획적 개발의 중요성이 더 중요해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개발이 도시의 숙명이라는 사실도 역시 분명하다.
개발이 도시의 숙명이라지만
도시개발은 크게 세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자연훼손의 문제이다. 도시는 대체로 자연을 파괴하고 각종 시설물과 건축물을 짓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상당한 자연훼손의 문제가 일어난다. 또한 도시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자를 외부에서 유입해야 하며, 이를 위해 도시 외부지역에서 심각한 자연훼손을 일으킨다. 둘째, 문화훼손의 문제이다.
도시개발이 이루어지는 많은 곳은 그 나름대로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국토가 작은 곳은 더욱 더 그렇다. 셋째, 불평등의 문제이다. 도시개발은 보통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부유한 사람들의 동네로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주거공간을 잃고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결국 주거 불평등의 문제가 더욱 심화된다.
좋은 도시개발은 이러한 세 가지 문제를 모두 충실히 고려해서 가능한 그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 각종 영향평가제도나 개발이익환수제도 등이 활용되고 있지만, 사실 아직까지 이런 제도들이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토건국가와 투기사회의 구조 속에서 도시개발이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는 나라이며, 따라서 도시개발의 세 가지 문제가 모두 극단적으로 악화되어 있는 나라이다. 이런 상황을 개혁하는 것은 ‘선진화’를 이루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필수적 과제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뉴타운 사업’을 추진했다. 그런데 뉴타운 사업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이명박식 새마을 사업이다. 박정희의 새마을 사업이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였다면, ‘낡은 집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잘 알다시피 이명박 전 시장은 개발독재시대를 대표하는 개발업자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뉴타운 사업을 추진한 것은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올바른 도시개발을 추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명박식 새마을 사업 = 뉴타운
공식적으로 보아서 뉴타운 사업은 주택재개발사업과 도시재개발사업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요컨대 도시재개발의 관점에서 주택재개발을 해서 난개발을 막고 주거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주거여건의 개선은 모든 시민의 한결같은 바램이지만, 도시 전체의 차원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난개발을 막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뉴타운 사업은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 실상도 과연 그런가?
이명박 전 시장은 강남에 비해 낙후한 강북의 개발에 힘을 쏟을 것이며, 이를 위해 뉴타운 사업을 벌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뉴타운 사업의 대상지역은 서울 전역의 26개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뉴타운 사업은 강북 재개발사업이 아니라 아예 서울 재개발사업이 되어 버렸다. 애초의 사업목적이 사업이 시작되자마자 변질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명박 시장은 서울 전역을 개발과 투기의 열풍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낙후한 강북의 개발이라는 원래의 목적에만 국한해서 보더라도 뉴타운 사업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강북은 강남과 달리 오래 주거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강북을 강남과 같은 고층 아파트촌으로 만드는 것은 오랜 역사에 걸쳐 이루어진 강북의 문화를 파괴한다는 결과를 빚게 된다. 강북에서는 강북의 문화를 최대한 살리는 재개발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지주와 투기꾼과 개발업자에게 최대이윤을 보장해주기 십상인 고층 아파트 중심의 재개발은 강남은 물론이고 강북에서는 더욱 더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뉴타운 사업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민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뉴타운 사업은 이미 대단히 불의한 상황을 빚어내고 있다. 3개 시범지구 중의 하나인 길음 뉴타운 2구역을 대상으로 한 한겨레신문의 조사는 그 생생한 예이다. 2005년 7월에 한겨레신문은 이곳에서 살고 있던 모든 주민의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곳의 원주민 입주율이 10%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뉴타운 사업이 원주민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렇듯 명확히 입증되었다.
길음 뉴타운 2구역의 결과를 예로 해서 말하자면, 뉴타운 사업은 가난한 원주민을 내쫓기 위해 벌이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주민들은 값비싼 아파트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 분양권이나 입주권을 받더라도 빨리 팔고 또 다른 가난한 지역으로 떠나야 한다. 이들은 투기꾼들의 먹이일 뿐이다. 뉴타운 사업이 정말로 가난한 주민들을 위한 사업이라면,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적은 평수의 임대아파트를 많이 지어야 한다. 낙후지역의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을 보장하지 않는 도시개발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투기꾼과 중산층이 선호하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많이 지으려고 한다. 임대아파트도 중산층 수요에 맞추어 넓은 평수로 지으려고 한다. 이렇듯 뉴타운 사업은 심각한 공간정의의 문제를 안고 있다. 공영개발은 사회적 약자의 주거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기업은 최대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의 주거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공영개발의 의의는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의 주거권을 도외시한 공영개발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다.
부자들의 여유를 위해 가난한 이들을 내쫓는 개발
뉴타운 사업의 문제를 잘 보여주는 곳으로 한양주택을 들 수 있다. 한양주택은 통일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단층 주택단지이다. 그러나 이곳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본래 가난한 농촌이었다. 그런데 1978년의 어느 날 근처의 골프장으로 가던 박정희가 이곳의 ‘정비’를 지시했다. 그 결과 서울시장이 나서서 주민들의 토지를 강제수용해서 부랴부랴 택지를 만들고 집들을 지었다. 이렇게 해서 주민들이 새로 만들어진 주택단지에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
한양주택의 건설과정은 박정희시대의 살벌함을 잘 보여준다. 박정희의 한마디에 주민들은 살던 곳을 버리고 획일적으로 구획된 삭막한 시멘트 주택으로 들어와야 했다. 완전히 강제적 과정이었다. 주민들은 땅과 집을 강제수용 당했고, 집과 회관의 건축에 필요한 각종 건축비를 내야 했으며, 수도와 전기 등의 기반시설을 이용하기 위한 비용도 따로 내야 했다. 이렇게 깊은 아픔이 서린 곳을 주민들은 잘 다듬어서 오늘날과 같은 아름다운 마을로 만들었다. 1996년에 서울시는 이곳을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하기도 했다.
한양주택의 주민들은 이명박 전 시장이 자신들을 속였다고 말한다. 처음에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기자촌 및 한양주택 등 양호한 주택지는 원칙적으로 계획구역에는 포함되지만 그대로 존속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뒤에 말을 바꿔서 없애겠다고 했던 것이다. 서울시는 한양주택의 대지가 낮아서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서울시가 최대의 개발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한양주택을 없애려고 한다고 말한다. 한양주택의 대지에 12-15층 높이의 아파트단지를 짓게 되면, 아마도 서울시는 수백억의 개발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40-50층의 초고층 아파트를 지을 것이라는 의혹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2002년 10월에 서울시가 한양주택을 은평 뉴타운 사업에 포함시킨 계획을 발표했을 때, 한양주택의 주민들은 모두 서울시의 계획에 반대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나면서 여러 주민들이 서울시의 회유에 넘어가고 말았다. 개발주체가 개발계획을 계속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분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법원은 정주권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양주택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해 서울시는 그들이 더 많은 보상을 노리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반대주민들을 이를테면 ‘돈벌레’로 보았던 것이다.
그 누구도 한양주택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전 시장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주민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아름다운 한양주택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기로 했는가? 정말로 바뀌어야 했던 것은 반대주민들이 아니라 서울시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주거권과 정주권이 포함된다. 주민들이 명백히 반대하는 개발계획을 강행하는 것은 저 낡은 개발독재시대의 유산이다. 우리는 이 유산을 하루빨리 청산해야 한다. 부자들에게 여유로운 주거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가난한 주민들을 내쫓는 불의한 개발계획은 하루빨리 중단되어야 한다.
한양주택은 이 사회의 소중한 생태적 자산이며 문화적 자산이다. 이곳처럼 환경과 공동체가 살아 있는 곳은 서울의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 누구에게도 이처럼 소중한 곳을 파괴할 권리가 없다. 이처럼 소중한 곳이 쉽게 파괴되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 나라는 후진적이다. 뉴타운 사업의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
뉴타운 사업은 토건국가와 투기사회의 구조에 편승해서 그 문제를 더욱 악화한다. 한양주택은 생태문화적 가치가 뛰어나서 주민들과 시민사회가 반대하는 곳이지만, 중화동처럼 경제적 이유 때문에 주민들이 반대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미 명백히 드러난 이러한 문제들을 무시하고 뉴타운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뉴타운 사업은 도시개발의 세 가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강북의 강남화’를 강력히 추진하면서 도시개발의 세 가지 문제를 더욱 확대하고 강화하는 결과를 빚어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어디서나 아파트가 지배하는 ‘아파트 도시화’와 양극화가 갈수록 악화되는 ‘이중도시화’로 귀결될 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뉴타운’은 이미 하나의 유명상표로 정착된 느낌이다. 그런 만큼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은 더욱 더 긴요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주거권과 정주권을 강화하고 강제수용제도를 합리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바탕 위에서 자연과 문화와 사람이 어우러진 생태문화도시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좋은 사회의 핵심적 목표로 적극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다층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연대의 체계화와 실질화, 그리고 전문가의 활발한 참여를 기대한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