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양 측면이 오늘의 인권운동의 현실을 보여준다. 인권운동이 담당해야 하는 일은 참으로 많기만 하다. 어느 한 사안에 깊이 개입하게 되면 필시 다른 사안이나 문제는 간과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게 된다. 이것은 인권운동이 그만큼 취약하기 때문이다.
인권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들
한국 사회의 인권상황은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인권상황을 규정하는 요소들은 너무도 다양한 질과 양상을 갖고 있다. 이런 다양한 요소들은 서로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복잡한 인권상황을 그려낸다.
그럼 인권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큰 규정력을 갖는다. 미?중?러?일 등의 강대국의 힘이 직접적으로 충돌하고 각축을 벌이는 한반도는 특히 미국의 패권과 중국의 패권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곳이다. 더욱이 한국은 미국 패권주의의 최전선 지역이고, 거기에 체제가 다른 분단국가라는 점으로 인한 정치.군사적인 특수성은 아직도 국가보안법의 폐지나 국가공안기구들의 해체를 막는 요소로 등장한다. 인권보다는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논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국가안보론에 마비된 국민들의 의식은 쉽게 깨어지지 않으면서 수구세력들의 정치적 재생산 기반을 형성한다. 한국에서 미국에 대한 한국의 정치.경제?군사적인 종속성의 정도(한편으로는 한국국가의 자주성 정도)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초기에 다소 이완되는 듯이 보이다가 최근에는 군사적으로 전략적 유연성, 경제적으로 한미FTA 협상 추진으로 다시 강화된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자주정부의 수립은 쉽지 않다. 이런 요소들은 사회권의 개선과 평화체제의 수립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의 존재가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남한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 정치지형에 대단한 규정력을 갖는다. 이전의 독재정권들이 북한의 침략=국가안보 위협이라는 공포를 조성하여 대중을 동원하였던 점을 상기한다면 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6.15 선언과 2005년의 6자회담 성명으로 남북관계가 급격하게 화해와 평화의 시대로 접어드는 듯이 보였지만, 다시 미국에 의해서 이런 상황들은 급격히 후퇴하고 있다. 한편으로 한국사회에서 제기되는 북한 인권문제는 사실상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냉전수구세력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이용되는 측면이 강하다. 인권으로 북한 체제를 공격하는 것은 이미 1970년대 헬싱키 프로젝트에서 서구 자본주의가 동유럽 체제를 공격하는 것에서 나타났고, 미국은 확실히 그때의 성과를 북한서에도 보려 하고 있다.
지체된 민주화의 문제들
인권 지형을 복잡하게 만드는 두 번째 요소는 지체된 민주화이다.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자유주의 세력의 무책임한 분열은 노태우, 김영삼 정권이라는 군사정권을 계승한 정권의 등장을 보게 하였다. 이로부터 당시 분출되던 민주화운동의 열기는 가라앉게 되었고, 민주화 과제의 해결은 이후 자유주의 정권으로 승계되어, 김대중 정부에서 일부, 노무현 정부 들어 과거청산 작업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민주주의의 지체 현상은 자유주의 개혁의 실패로 귀결되는 동시에 수구 기득권 세력에게 저항력을 갖출 여유를 주었다. 거기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해 박정희 경제개발론에 대중들이 향수를 느끼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박정희식의 경제성장 제일주의에 신자유주의적인 성장 담론이 힘을 얻게 되면서 민주화운동 세력이 수구 보수 세력의 헤게모니에 흡수되는 상황을 낳고 있다.
자유주의 정권들에 의한 일정 정도의 절차적 민주주의, 형식적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이전에 비해서 권위주의적인 요소들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으며, 국가권력의 직접적인 폭력성은 상당 부분 제거되기에 이르렀다(물론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강화되면서 다시 국가폭력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그렇지만 민중들의 요구를 수렴할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로 인해서 민중들은 정치결정 영역에서 배제되어 있다.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들은 민주주의 영역의 외곽(국회 밖)인 거리의 정치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지만, 이런 요구를 반영할 정당은 존재하더라도 미약하다. 민중의 요구들은 거리에서 경찰의 과잉진압과 검찰과 사법부의 계급사법에 의해서 폭력적으로 배제된다.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수구세력은 개혁이란 점에서는 첨예하게 대립하다가도 국익론, 국가안보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면에서는 쉽게 인식과 태도의 동일성을 나타내게 된다. 이는 이들의 계급적 기반이 같다는 것이고, 다만 정치적 지향에서 일정한 차이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 세력들은 정치상황의 변화에 따라 쉽게 이합집산할 수 있다. 더욱이 현재는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개혁 실패에 따라 수구정치세력이 정치적 힘을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 번째 요소는 진보진영의 분열과 비전 제시의 실패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진보진영은 1991년 노태우 정권에 대한 정면 공격에서 패퇴한 뒤 그 힘을 상실해가고 있다. 그 후 진보진영은 민중운동진영, 시민사회진영으로 나뉘게 되었으며, 각 진영 내에서도 통일된 노선을 견지하지 못한 채 상황에 대한 일시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1987년 당시의 대중적인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북한 사회의 치명적인 약점이 극적으로 표출된 이후 사회변혁의 비전은커녕 민주개혁에 대한 청사진도 그려 보이지 못한 채 자유주의세력들의 개혁 추진노선에 동조하거나 이에 대한 비판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 위상이 축소되어 있다.
인권 영역의 급격한 확장
이와 같은 조건 위에서 인권 지형은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자유주의 개혁정권이 들어서면서 과거의 국가폭력에 대한 일정 정도의 반성 과정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진실이 왜곡되면서 과거청산이라는 부분은 여전히 인권운동의 과제로 남아 있다. 거기에 국가의 적나라한 폭력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민중들의 생존권적 요구가 크게 부상하고, 국가의 폭력은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자유권 영역의 인권과제가 존재하면서 거기에 사회권적 요구가 더해진다. 또한 10여 년 전부터 소수자들이 차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게 되는데, 장애인, 성소수자, 어린이.청소년, 비정규직 노동자 등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인권운동의 주요한 과제로 등장했다. 거기에 더해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발전한 IT 산업의 영향으로 인해 국가와 기업에 의한 정보인권 침해 문제, 개발과 관련한 환경의 문제, 평화의 문제, 북한 인권론이 더해져서 인권지형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런 위에 과거에는 민간 인권운동만이 존재하던 상황에서 이제 인권도 자유주의 정권의 미흡한 개혁 추진에 의해서 제도권으로 일부 편입되면서 국가기관들이 앞 다투어 인권행위자로 등장하게 된다. 그중에 대표적인 국가기관은 말할 것도 없이 국가인권위원회이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가기관들의 인권을 앞세운 정치행위들은 이전의 민간운동의 독점적인 지위를 허물어가고 있다. 이들 기관들은 민간 인권운동이 개척하고 발전시켜온 인권논의들과 영역들을 잠식하면서 막강한 인력과 자원을 통해서 인권의제들을 선점하는 경향성마저 보이고 있어서 인권운동은 심각한 도전을 맞는다.
이와 같이 인권운동이 대응해야 할 목록이 많아짐과 동시에 국가권력의 적극적인 인권행위자화 경향성으로 인권운동은 새로운 지형에 맞는 새로운 대응을 요구받고 있다.
인권운동, 그 위기의 징후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인권지형에 대응해야 하는 인권운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위기적 징후들을 보인다.
한국의 인권운동은 운동 역사가 30년이 넘었지만 독자적인 운동론조차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인권운동이 목표하는 바는 무엇인지, 이 운동을 통해 이루려는 사회변화의 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상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더 근본적으로 인권에 대한 이해와 개념은 단체나 활동가마다 제 각각이며, 이에 대한 운동적인 합의과정도 없었다. 이에 따라 지구화시대의 인권에 대한 개념의 재구성이나 인권이론의 재구축과 같은 일에는 운동진영의 고민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권운동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인권기준을 국가나 사회가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인권운동이 자신들의 구체적인 실천과정 속에서 인권의 이념이나 이론을 창출하려 하거나 기존의 이론을 풍부화하지 못하는 가운데 막연하게 진보적 인권운동이란 추상적인 이념만을 따라 왔다. 지금 인권운동은 이념의 고갈 상태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현실은 운동이념과 이론의 급진화를 요구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강요하는 현실에서는 자유주의적 대안을 갖고는 현실의 벽을 넘는 저항담론으로 인권론을 재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국제인권조약에서 제시된 운동, 보편성에 사로잡힌 운동에 묶여 있는 형국이다. 민중 생존권을 중심에 놓는 인권이념, 그 속에서 소수자들의 차별 문제를 아우르는 인권이념, 국가와 경제 권력의 문제에 대한 인권 운동적 대응 논리를 창출할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된다. 비전 없는 인권운동, 이념이 고갈된 인권운동, 철학이 없는 인권운동의 모습이 우리가 처한 인권운동의 위기 징후들이다.
이와 같이 기본적인 인권론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황은 나아가서 인권운동 전략에 대한 합의도 만들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껏해야 인권운동은 각 단체들이 처한 위치에서 각 단체들이 관심 갖고 추구하는 사안에 대해서 즉자적인 대응을 하는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권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이념을 형성하지 못하였고, 운동 역량이 미약한 탓에 현실에서 터져 나오는 사안에 대처하기에도 매우 역부족이다.
운동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이 부재하고, 그에 따른 전략이 없으므로 인권운동은 시민운동의 방법들을 차용하여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토론회 등의 대중없이도 할 수 있는 자족적인 형식의 운동을 진행하고 일부 사안에 따라 실태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전문화의 긍정성과 연대의 위기
다음에 들 수 있는 위기적 징후는 인권운동의 파편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운동단체들이 자신들의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지식과 경험을 축적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나, 정세가 요구하고 궁극적으로 운동이 지향하는 목표와는 상관없이 분산적으로 사안에 대처하도록 만든다. 이런 파편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인권단체연석회의와 의제별 네트워크가 구성되었다. 의제별 네트워크들은 단체들의 공통의 사안을 공동의 인식과 행동을 도모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운동의 전체적인 흐름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운동이 진행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부족한 것이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대외적으로 인권운동진영의 대표체로 인정받고 있으나, 내부적으로 연대의 힘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고, 그것도 인권회의에 참여하는 활동가의 모임 정도로 격하되고 있는 게 냉엄한 현실이다.
이 운동의 파편화 현상은 연대 조직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한 단체 내에서도 각각의 역할과 관심분야, 활동영역의 전문화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다 전문화된 활동을 하면서도 보편적인 문제, 총체적인 사회구조의 변화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연대를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이 경주되어야 함에도 인권운동의 연대는 점점 약화되고 있어서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위의 징후들보다도 더 중요한 위기적 징후는 아마도 인권운동이 대중적인 기반을 갖지 못하거나 매우 미약하다는 점일 것이다. 운동은 대중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여 대중으로 하여금 운동의 주체로 서도록 만드는 것이고, 그들에 의해서 민주주의적 질서를 재구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인권운동이 대중적 기반을 만들기 위한 사업을 외면하는 것은 운동의 본령에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운동은 특성상 대중운동일 수 없다.’는 잘못된 명제는 불식되어야 한다. 인권운동도 다른 운동과 같이 구체적으로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대중들을 인권운동의 주체로 발굴, 성장시킬 수 있는가를 집요하게 고민해야 한다. 인권운동의 대중화는 인권운동 자체가 대중적 기반을 갖는 것과 함께 대중조직에 영향을 미쳐서 인권운동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충하는 것으로 대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동시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인권운동의 대중화의 과제다.
이번 호에서는 복잡한 인권지형을 낳는 요소들과 인권운동의 위기적 징후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 호에서는 인권운동단체들이 처한 현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조명하면서 이의 극복 방안을 고민해 본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