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미디어세탁소] 돈 없고 군번 없으면 하리수도 없다

대법원의 성전환자 지침 및 관련 보도 유감

대한민국에서 사는 ‘천하장사 마돈나’의 오동구는 자신의 꿈인 마돈나처럼 변신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영화 속 얘기처럼 단순히 성전환 수술비용만 있어서는 안 된다. 설령 우여곡절, 씨름 대회 상금으로 수술비를 마련했다 하더라도, 일단 만 20세 이상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2년간의 병역 의무도 마쳐야 한다. 그제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각서를 쓴 뒤 위험한 성전환 수술을 하고, 용케 살아남으면 성별 정정의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코맹맹이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본명 이경은)씨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2002년 호적 정정 허가를 받아내는 치열한 ‘선도투’를 수행해서 그녀와, 그리고 그녀와 비슷한 이들에게 소중한 승리의 경험을 안긴 바 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병역 문제의 해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본인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앞으로 오동구가 걸어야할 지난한 길을 가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의 오동구, 그리고 태국의 사이먼쇼


지난 7월 중순 어렵사리 짧은 휴가 내고, 서너 달 동안 틈틈이 꼬불쳐놓은 돈 갖고 아내와 함께 태국 푸켓을 다녀왔다. 다행히 여행사에서 발행하는 30% 할인 상품권으로, 게다가 특가 여행상품을 이용했더니 그리 큰돈이 들지는 않았다, 아무튼.


푸켓 여기 저기 눈도장만 찍고 막 끌려 다니는 와중 떠나기 전날 일정에 ‘태국의 3대 쇼’ 중 하나라는 ‘사이먼 쇼’가 포함돼 있었다. 트랜스젠더들이 나와서 립싱크로 노래 부르고 춤추고, 작은 소극을 보여주는 쇼였다. 주변 한국 관광객들은 “태국에 와서 이것을 안보고 가면 태국 관광 절반은 안하고 가는 거나 진 배 없다.”면서 시작 전부터 흥분하더니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 앞으로 몰려가 사진을 찍고 캠코더에 담는 등 열광이었다. 보통 여자보다 훨씬 늘씬한 몸매와 교태어린 눈빛을 가진 이들은 쉼 없이 객석을 향해 살인 미소를 날렸고, 관객들은 자지러졌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 역시 입가에 고이는 침을 아내 몰래 닦으면서도 마치 큰 관심은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이들은 트랜스젠더, 즉 성전환자였다. 좀 유식한 말로는 MTF(Male To Female.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공연이 끝난 직후 극장 문 바깥에서 주욱 늘어섰다가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대가로 1달러 정도씩 받았다. 이렇게 돈을 벌면 차곡차곡 모았다가 나중에 성전환 수술비용으로 쓰곤 한단다. 태국 트랜스젠더들은 10대부터 40대 초반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전환자들에 관대한 태국이기에 너무도 자연스럽고,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까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라는 설명도 얼핏 들었다. 이 역시 ‘성의 상품화’임에 분명하겠지만, 우리와는 다른 인식, 철학에 기반을 둔 분위기임에는 분명하다.


태국에서 이들에게 거부감은커녕, 박수와 웃음, 포옹으로 자연스럽게 화답했던 우리 부부를 포함한 한국 관광객은 다시 고국인 한국으로 돌아가면 안타깝게도 가자미눈을 하고 이들을 째려보기 일쑤다. 어쩐 일인가.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중성… 눈요기하거나 비난하거나


트랜스젠더.
사실 관심 갖고 지켜봤던 주제는 아니다. 사회적 소수자 배려 측면에서 최소한의 연대 의식 정도-아니,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왔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솔직한 얘기일 게다.―만 갖고 있었던 주제였다. 일상 속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태국 사이먼쇼 약식 관람기’대로 남들처럼 호기심의 대상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고, 그런 시선에 대해 애써 교정해주려는 노력도 별로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특별한 행사 때만 마음속으로 ‘그들’의 존재를 새삼스럽게 인식하고, ‘그들’ 역시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인 만큼 터부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수준 낮은 생각만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질 낮은 인권 감성에 대해 자책하고 있다.


헌데 지난 9월 9일 아침 모든 신문들 한 구석에서 발견된 원고지 3~5장짜리 2~3단 기사들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생각게 했다. 제목들만 한 번 훑어보자.


‘남자→여자 되려면 병역 마쳐야’(조선일보 10면)
‘이브 되려면 병역 의무 마쳐라…대법 性 정정 허가 기준 마련’(동아일보 10면)
‘병역 마쳐야 남→여 성별 정정’(한겨레 8면)
‘남자는 병역필, 면제 받아야…성별 정정 20세 이상 미혼자만’(경향신문 7면)
‘대법, 호적 性 전환 지침 마련’(한국일보 9면)
‘이브 되려면 병역 마쳐라’(서울신문 6면)
‘병역 마쳐야 성별 정정 가능’(세계일보 6면)
‘20세 이상 무자녀 병역 마쳐야 性전환 가능’(국민일보)



기사 제목에서도 보이듯 각 신문은 특별한 가치 판단을 부여하지 않고 대법원 발표 내용을 스트레이트 기사로 처리했다. 주 5일제를 시작한 뒤부터 특히, 한 주일 동안 쌓인 피로를 늦잠으로 풀어내느라 대개 토요일자 신문은 그다지 열심히 탐독하지 않는다. 이는 독자들 뿐 아니라,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신문 안쪽에 보이지 않게 조그맣게 처리했으니 더더욱 세인의 관심 바깥에 놓이기 딱 알맞다.


전향적 조치 기대했던 대법원의 비현실적 잣대 제시



대법원이 내놓은 ‘사무처리지침’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지침에 따른 허가 기준은 7가지다.
일단 △만 20세 이상에 혼인 사실이 없고, 자녀도 없어야 할 것 △성전환증으로 인해 생물학적 성과 자기의식의 불일치로 고통 받는다는 사정의 인정이 있어야할 것 △성전환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포함 신체 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어 있어야 할 것 △생식능력의 상실 △MTF는 병역 의무를 이행하거나 면제받았을 것 △범죄 이용 목적이 없어야 할 것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할 것(‘사무처리지침’ 원문 표현의 변형이 있음) 등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지난 6월 대법원의 성별정정 허용 판결을 환영했던 인권단체들의 반발은 당연하고도 즉각적이었다. 언론의 뜨악한 스트레이트 기사와 달리 50개에 이르는 인권단체 연대기구인 ‘성전환자 성별 변경 관련 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는 이날 사무처리지침이 발표되자마자 이것의 인권 침해적인 문제점과 해악을 지적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공동연대는 “성전환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 등 신체외관이 반대 성으로 바뀌었을 것이라는 사무처리지침 기준은 최악의 독소조항”이라고 쏘아붙였다. 또한 ‘혼인 여부’와 ‘자녀 여부’를 기준으로 삼은 것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법제도화한 반인권적 조항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심리과정에서 당사자들에 대해 지방병무청에 병적 조회, 경찰관서에 전과 조회, 금융기관에 신용정보 조회, 출입국관리소에 출입국 관리 조회 등을 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은 잠재적 범죄인, 혹은 범죄 예상인으로 취급하는 인권 침해적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공동연대 성명서는 한 마디로, 대법원의 사무처리지침은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철저히 맞지 않을뿐더러 성전환자의 행복추구권, 시민권, 인권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현실적 처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도 절절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제도권 언론들만 보고서는 도대체 이런 얘기를 읽을 수도, 볼 수도 없다. 평범한 장삼이사들은 어디에서 진실을 구해야 하나.


성전환자 인권에 무감… 혀만 끌끌 차고 있는 언론


위에서 언급했듯 진정 안타까운 점은 언론의 비판적 접근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일부 신문들이 당일 기사 끄트머리에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또는 인권단체의 의견을 덧붙이긴 했지만 대부분 언론들은 ‘갈등 당사자 의견 공평 제시’라는 일반적 기사 보도 원칙조차 지키지 않아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중앙일보는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이로부터 며칠 뒤 일부 신문(한겨레 등)에서 외부 기고 또는 사설을 통해 대법원의 ‘성전환자 성별정정 허가 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이하 사무처리지침)’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개진하기도 했다.


시간을 거슬러 6월 22일 대법원이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을 허가하는 판결을 내면서 언론은 잠깐 떠들썩하다 이내 잠잠해졌다. 극히 일부 언론의 진지한 접근을 제외하고는 단순 호기심 또는 ‘말세야, 말세’식의 개탄의 감정을 숨기지 않은 채 논란으로 취급하던 대다수 언론 매체들은 지난 9월 4일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성전환자 실태조사 보고서’가 나왔음에도 대부분 외면하고 말았다.


특이한 점은 한겨레를 제외한 대다수 제도권 매체들이 외면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조선일보가 관련 보도를 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일보는 3일자에서 ‘팬티 입고 신체검사 악몽-성전환자의 슬픔’이라고 해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기회회견 보도자료에 담긴 실태조사 보고서 요약문을 소개했다. 하지만 역시나 성전환자들이 우리 사회 폭압의 상징인 군대, 학교 등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몇몇 사례를 소개하는 데 그치면서 호기심어린 훔쳐보기식 시선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데 발 빠른 극우 신문의 행보에 놀라면서도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절감할 수 있는 모습이다.


관련 법 발의… 통과까지는 첩첩산중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 등은 빠르면 1972년(스웨덴), 이웃나라 일본조차 지난 2002년 성전환의 법적 근거를 일찌감치 마련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달 정기국회에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에 의해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 및 개명에 관한 특례법’이 두 번째로 발의됐다. 지난 2002년 16대 국회에서 김홍신 의원이 비슷한 성격의 법안을 처음으로 발의하긴 했지만, 당시 상임위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먼지만 수북이 쌓인 뒤 회기 종료와 동시에 자동 폐기됐다.


지난 6월 대법원에서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을 허용한 판결이 나왔고, 최근 구체적 사무지침이 나오는 등 법적 걸림돌은 제거된 상태라 노 의원의 법안 통과 가능성은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 있다. 물론 상임위, 법사위를 거치면서 국회의원 나리들이 어떤 해괴한 논리를 들며 이 법을 막아서거나 누더기로 만들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국회에서 어떻게 법제화 작업을 갖든 언론 매체, 특히 케이블 TV의 변화는 비교적 발 빠르다. 9월 14일 머니투데이 ‘성전환해주는 TV프로그램 나온다’ 기사는 눈에 확 띈다. 10월 9일 개국하는 케이블 TV 프로그램 ‘옥주현의 라이크 어 버진-성전환프로젝트 M2F’가 바로 그것이다.


서류와 면접 심사를 거쳐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트랜스젠더 4~5명을 모집한다고 소개했다. 최근 케이블 TV에서 선풍적으로 유행하는, 일반인을 참가시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여주는 식의, 일종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마치 태국 ‘사이먼쇼’처럼 단순한 눈요깃거리로 전락되지 않을까 우려되면서도 진일보한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임에 분명하니 환영할만하다.


덧글
태국 관광 중에 가이드로부터 주워들은 얘기로는 태국에 트랜스젠더(MTF)들이 많은 것은 오랜 역사 속에서 주변 국가들과 전쟁이 끊이지 않아 자식을 전쟁터로 내보내고 싶지 않은 부모들이 아들을 딸처럼 키운데 기인한다는 설이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빈궁한 살림살이 속에서 트랜스젠더가 되면 어렵지 않게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인식도 많아, 예쁘장한 남자아이들은 일부러 여자아이처럼 키우는 집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일부에서는 ‘태국 땅이 풍수 지리적으로 음기가 세다.’는 설도 주장하고 있지만 말이다. 주의 깊게 들어봤지만, 아무래도 믿거나 말거나에 가까운 것 같았다.
아무튼, 어찌된 배경이든 태국은 성전환자들에게는 비교적 자유롭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사회이고, 대단히 위험하다고 평가되는 성전환 수술의 기술 진보도 실제로 세계 최고에 이른다고 하니 한국 성전환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겠다. ‘좌파적 쿨함’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들의 모든 외로운 선도 투쟁에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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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삼 | 전국언론노조 서울신문지부 위원장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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