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이에요, 당연하지] 모든 것은 이익으로 환산할 수 있다?

저작권, 그 빈곤한 상상력

세계인권선언 27조 전문
1.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며 예술을 향유하고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작한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산물로부터 발생하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매월 ‘이것도 인권이에요? 당연하지!’ 꼭지를 쓸 때마다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마냥 쩍쩍 말라붙은 머리를 쥐어짜내 어떤 주제를 잡을까 고민한다. 아무리 해도 안 나오면 결국 주변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빌린다. ‘저기… 이번에 뭘 쓸까요?’ 그러면 고맙게도 사람들은 주변에서 한 번씩 아쉬웠던 이야기나 섭섭했던 이야기들을 한번 다뤄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조언해주기도 하고, 직접 원고에 들어가도 좋을 만큼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제대로 다뤘는지는 말 할 수 없다!).


창작은 자유롭고 일상적인 행위


그런데, 아무리 생활에서의 경험이라지만 그걸 엮어 내거나 정리하는 것은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의 역할이고, 그 사람의 창작물일 것이다. 길가에 핀 꽃이나 멋진 바다 풍경을 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어떤 감흥도 다른 이에게 전해줄 수 없지만, 사진을 찍거나 그것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순간 나의 감동은 타인의 감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 ‘가공 과정’을 우리는 보통 ‘창작행위’라고 부른다. 사실 알고 보면 창작행위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창작을 하고 살고 있지 않나. 매일 조금씩 자기의 생활을 기록했던 ‘안네의 일기’가 세계적인 스테디셀러가 된 것을 봐도 사실 창작이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가치가 담보되지 않아도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작은 농담 하나도 창의적인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당연히 ‘창작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지난 해 배타적소유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저작권법을 발의했던 우상호 의원의 홈페이지. '기사의 무단전재, 배포'를 금지하고 있는 언론사의 기사들을 언론사의 허가 없이 홈페이지에 게재하였다. 스스로 발의한 저작권법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스스로 입증한 사례.


현대사회에서 이런 창작행위는 보통 ‘얼마만큼의 상품 가치를 지녔는가?’로 평가되고 창작물은 일정 정도의 상품가치를 담보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예술적 가치를 담으려고 찍었건 그냥 테스트로 찍었건 간에 내가 찍은 사진은 무조건 저작권이 내게 귀속된 하나의 ‘지적 재산’으로 인정되며, 나와 유명작가의 사진/그림의 차이는 시장에서 얼마만큼의 가격이 매겨지는가, 아닌가의 차이일 뿐이다. ‘창작의 자유’는 예술적 가치를 가진 작품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따라 그 가치만큼 자유가 부여되고, 표현의 자유와 권리 역시도 그 사람의 예술적 능력에 따라 부여된다. 세계인권선언 27조 1항의 내용은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부여된 권리는 누군가 만들어낸 창작물을 멍하니 구경할 권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의미를 담아서 찍은 누드사진은 음란물로 취급되고(김인규 교사 대법 판결), 돈 많은 기획사에서 발매한 표절 앨범은 시비에 휘말려도 여전히 ‘창작물’로 인정되어 저작권보호를 받는 실정이다.


점점 줄어드는 창작물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권리


현재 한국에서는 특허는 출원 후 20년간, 지적재산권은 창작자 사후 50년 동안 배타적 독점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은 한국에게 더 높은 수준의 지적재산권 보호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친고죄 폐지도 거론되고 있다. 당사자가 아니어도 저작권 위법 행위를 신고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당장에는 저작권이 표시된 MP3파일을 다운로드 받다가 옆 사람에게 잘못 걸려서 쇠고랑 차는 것만을 연상할 수 있겠지만, 내가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고 무상으로 나의 창작/생산물을 공유하려고 했을 때도 쇠고랑을 차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일 수 있는 것이다. 2조에 표현된 ‘정신적, 물질적 이익’이라는 것은 현실에서는 말 그대로 손에 쥘 수 있는 ‘돈’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블로그계의 유명인사중 하나인 ‘무명가수 와니’는 자신의 음악을 모두 MP3로 무상 공개했다. 조만간 저작권법이 정말 개정된다면 우리는 와니의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창작자에게 주어진 권리는 정신/물질적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일 뿐, 창작물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것이다.


음반사나 영화배급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저작권 보호에 열을 올리는 것이 그들의 물질적 이익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수많은 엔화를 벌어들인다는 가수 보아의 노래가 과연 개별 문화의 융화와 상호작용 없이 100% 순수 창작물일 수 있을까? 그녀가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면서 아름다운 판소리 한 가락을 뽑아냈다면 아마도 오리콘 차트 1위라는 위업은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노래가 갖는 특색은 일본의 젊은 세대의 문화적 감수성을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간의 일본문화에 대한 수많은 분석과 검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문화는 단순히 어떤 상업적 저작물들만을 사들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특정 공동체 사이에서 형성되고 향유되어온 고유한 분위기속에서 형성된 ‘문화적 코드’를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창작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한류 스타들과 상업 문화 창작자들은 아마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정보공유라이선스는 저작권자가 저작물을 자유이용 범위를 정하는 일종의 자유이용허가서.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영리/개작의 허용권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다. 배타적 저작권을 주장하는 '카피라이트'에 반대한 '카피레프트'보다 발전된 개념이라고 보면 쉽다. 다만 '카피레프트'보다 자유이용의 범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정한다는 점이 다르다.


모든 이익의 사유화가 의미하는 것


누구든 무엇이 필요하다면 그에 대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보는 이미 상품이 된지 오래고, ‘옛 사람의 지혜’로 전해지던 생활의 지혜는 포털사이트에서 사이버머니로 거래된다. 누구나 쉽게 ‘네이버’를 통해 정보를 얻는 상황에서 조만간 그런 정보들조차 돈으로 거래하게 될 상황이 오지 않으리라고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창작물로부터 발생하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라는 것이 타인의 인권을 유린하거나 침해하는 권리로 이해될 수는 없다. 포털사이트를 통해 얻어지는 정보나 오소리의 꽃신 만드는 재주는 사실 누군가에 의해 교육받은 것이거나 타인에게 전수받은 것일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모든 이익을 개인에게 귀속시키고 사유화 한다는 것은 결국 필요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여 더 나은 창작물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저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마치 욕심 많은 아이가 자기 물건만 챙기다가 친구를 다 잃는 것처럼, 지재권을 지키는 것 역시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 그동안 내가 쓴 ‘이것도 인권이에요’꼭지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 이익은 무엇이 있었을까. 내가 쓰지 않은 다른 글들을 ‘무상으로’ 읽을 수 있는 권리와, 소소하고 보잘 것 없는 글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으로부터 얻은 자신감과 보람, 그리고 글감이 될 만한 일상에서의 인권침해 이야기들. 이런 것들을 과연 보잘 것 없는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본주의란 참 빈곤한 상상력을 가진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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