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내목소리] 파란을 준비하라

두발자유화와 학생인권법 통과를 위한 청소년인권행진 참가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8월 14일, 정부종합청사 후문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엇이 두려웠던지, 전경들은 긴장하며 방패를 들고 문 앞에 섰다. 사람들은 전경들과 대조되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울시교육청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두발자유화와 학생인권법 통과를 위한 파란만장! 청소년인권 전국행진’의 첫 걸음이었다.


청소년 인권을 공통분모로 모인 사람들의 첫 걸음


행진단은 4박 5일 동안 차를 타고, 서울을 출발하여 인천, 대전, 전주, 울산, 대구 총 6개의 도시를 방문했다. 그리고 각 도시 번화가에서는 학생인권법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였고, 지역단체와 청소년들과 함께 청소년인권 간담회를 했다.


전국행진단에는 청소년과 탈학교 청소년, 교육을 고민하는 사범대 학생들, 그리고 청소년인권운동을 모색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그 첫 걸음을 딛으려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다양한 위치에 있는 그들이 행진단에 모여 일정을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통의 목표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청소년인권이 학생인권법안 운동을 중심으로 2006년 하반기, 전국적으로 번져가게 하는 것이었다.


행진을 기획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전부터 지역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이야 전반적으로 열악한 상태지만 특히 지역의 경우 정도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런 실정은 지방 학교를 더욱 더 상식과 인권이 없는 곳으로 만든다. 학생인권침해신고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을 살펴보면 서울보다 지방에서의 신고가 압도적으로 많고, 내용도 심각하다. 대전 대성고에서는 70대를 때려 학생을 병원에 보낸 일이 있다고 하고, 부산 인문계 고등학교의 두발규정은 반삭(스님들처럼 완전히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아니지만 약간을 남기고 자르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체벌과 강제이발이 일상적이었고, 이외에도 상식 밖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제발 때리지만 않으면 좋겠어요”


이 같은 현실은 지방 청소년들이 일말의 희망마저 잃고 학교에 순응하게 한다. 순응해버린 청소년들은 학교와 자기를 동일시하여 학교의 명예를 나의 명예로 생각하며, 저항적 주체로 일어나는 친구들을 비웃고 부정한다. 결국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반복된다. 행진 일정이 2일째인 지난 8월 16일에 대서특필되면서 행진단을 놀라게 한 대구 오성고에서 벌어진 200대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곪을 때로 곪아버린 끝에 터진 그 사건은 그 지역만의, 그 학교만의, 그 폭력교사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만들 중 극히 일부일 것이다. 우리를 더 안타깝게 한 것은 대구에서 학생인권법 통과 서명을 받을 때 만난 한 오성고 학생의 말이었다. “제발 학교에서 때리지만 않으면 좋겠어요.” 그것은 당연한 요구이기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청소년은 너무나 풀이 죽은 목소리로 애원하고 있었다. 폭력에 지쳐 어떠한 기대도 없이 쥐어짠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네트워크는 인권이 부정되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학교를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청소년 주체들의 저항이 서울을 넘어 지역으로 파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행진단의 메인구호였던 “파란이 있는 곳에 더 큰 파란을, 파란이 없는 곳엔 파란을 준비하라.”처럼 청소년인권운동의 불모지에는 그 시작의 싹을 심고, 움직임이 태동하는 곳에서는 더욱더 지역의 대중적인 움직임과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설익은 고민들과 부족한 운동의 주체들


그런 취지로 기획된 것이 간담회였다. 그러나 간담회는 아쉽게도 애당초 목표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다. 우선 학교현장에서 학생인권을 모색해야 할 전교조 지역지부들이 자체적인 학생인권 사업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하반기 공동행동을 같이 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인천지부의 경우는 학생인권조례 추진을 준비 중이었지만, 다른 지부 대부분은 자체 계획이 없었다. 그들은 중앙에서 추진하고 있는 아이들살리기운동본부의 사업에서 지침이 나오기를 기다릴 뿐, 자체적 고민은 깊지 않은 듯했다. 그들은 “하반기 사업의 하나로 학생인권에 관심이 많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말이다. 심지어 간담회에 참여하지 않은 지부도 있었다. 의문이 들었다. 중앙이 공언하는 4대사업 중 하나인 학생인권사업을, 과연 9만 조합원이 가입한 전교조라는 조직은 적극 추진하고 있는 건가. 생색내기로 구호만 외치는 건 아닐까.


더 아쉬웠던 것은 지역 청소년 주체의 부족이었다. 인천에서는 전교조 교사가 데려온 동아리 활동하는 청소년 친구들 3명(선생님이 무슨 자리가 있다고 해서 당일 듣고 왔다고 한다.), 대전은 홍보문자를 보고 온 친구들 3명…. 지역 전교조 교사들도 우리들에게 토로했다. 청소년이 없어서 학생인권사업이 어렵다고. 간담회 내용도 대폭 수정되어야 했다. 당장 공동행동을 모색하자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이런 청소년인권운동이 어떤지, 학교상황은 어떤지에 대해 이야길 나누고 앞으로도 교류하면 좋겠다는 것으로 훗날을 기약했다. 다행히도 전주와 울산의 경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들과의 간담회가 마련되었다. 특히 전주는 전북청소년인권모임과 전교조,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등 여러 단체가 지역청소년인권을 어떻게 함께 해나갈지 고민하는 자리가 만들어졌고, 앞으로 청소년인권모임을 지원하기로 하여 귀추가 주목된다.


파란이 없는 곳에 파란을 준비하라!


행진이 끝난 뒤, 평가회의에서는 아쉬운 평가들이 줄을 이었다. 행진이 너무 단기간에 준비되어 시행착오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전국적인 청소년인권 행사 자체가 새로운 시도이자 지역을 흔들어준 시도였기 때문이었다. 후속사업 준비가 관건이었다. 이번 행진을 계기로 얼굴을 튼 단체들과 권역별 행진을 논의하고, 12월 청소년인권운동을 모색하고 있는 사람들의 전국활동가대회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조금씩 희망이 보인다. 군인이라 비록 서명을 해줄 수 없으나 너무 고생한다며 우리에게 빵과 우유를 사준 사병의 눈동자에서, 각 지역마다 우리와 함께 고생한 지역 활동가들의 눈빛에서, 함께 서명운동을 하는 청소년들과 청소년활동가들의 눈에서 우리는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그 희망은 이제 조금씩 지역으로 터져 나와 청소년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나아가 그 날개는 청소년인권운동의 전국적인 ‘파란의 날갯짓’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행진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그 과정을 계속 지켜보고, 그들과 함께 힘찬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전누리 |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활동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