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이슈] 누가 우리의 싸움을 끝났다 하는가

평택 대추리 주택 강제철거의 현장 13시간의 기록

지난 9월 13일 새벽. 2만 명으로 추산되는 경찰이 450명의 용역경비와 10대의 굴삭기를 앞세우고 대추리 도두리로 들어왔다.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며칠째 계속된 긴장상태로 잠을 자지 못하고 버티고 있었다. 활시위가 당겨졌고 이제 드디어 올 것이 왔으니까 싸우면 된다는 심정만이 남아 있었다. 새벽 4시경부터 경찰의 차량이동이 시작되자 마을 초입에서 망을 보던 지킴이들은 분주해졌다. 비상시에만 울리는 마을 사이렌이 이제라도 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택철거를 막기 위해 지붕과 옥상에 올라간 지킴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감은 쇠사슬을 단단히 여미고, 손에 든 현수막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지난 5월 4일. 대추 초등학교와 황새울 들판으로 새까맣게 몰려왔던 경찰들의 방패와 곤봉이 누구의 목을 향해 내리꽂힐 것인가, 집들이 파괴되면 주민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신앙처럼 지켜져 온 한미동맹, 50억 달러에서 500억 달러가 소요된다는 거대한 국책사업에 맞서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복잡하게 얽히고 있었다.


대추리 4반과 도두리에 집중적인 주택철거가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되어, 대추리 4반 뜸에 위치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집 지붕위로 올라선 문정현(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상임공동대표) 신부는 이날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주민들이 살고 있던 집을 때려 부수면 정부가 물리적으로 승리하는 것 같지만, 주민들의 마음까지 때려 부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나를 비롯한 평택지킴이들의 마음까지 때려 부술 수는 없는 것 아니에요? 감옥의 행렬이 이어질지언정, 당장 마을을 폐허로 만든다고 해서 끝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오마이 뉴스> 인터뷰 중


전날 평화전망대 위에서 인간방패가 되어 주택철거를 막겠다고 선언한 인권활동가들은 짧은 편지를 남겼다.


“여기는 대추리 황새울이 한 눈에 보이는 평화전망대입니다. 노을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이곳에서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전쟁 같은 일을 치루고 있습니다. 또다시 대규모 병력이 황새울 들판을 새까맣게 메우고 아무런 무기도, 든든한 동지들도 없는 우리들은 전쟁포로처럼 끌려갈 것입니다. 이렇게 수십 번이라도 잡혀가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면, 이런 저항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인권이 보장된다면 우리 인권활동가들은 그 길을 마다않고 가야 할 것입니다. 전쟁의 참상은 미사일이 터지는 전쟁터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평화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전쟁음모가 우리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 저는 지금 평화전망대에 제 몸을 묶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 김정아 활동가


빡빡한 긴장 속에서도 몸만 누이면 잠이 들어버린다는 대학생 지킴이 한 명은 “오늘도 안 들어오면 먹을 식량도 다 떨어지는데 경찰들이 오려면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다.”며 웃는다. 대추리와 도두리로 들어서는 원정 3거리의 검문을 통과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쓰고 어렵사리 들어온 이들의 사연은 마을 주민들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대추리와 도두리로 몰려오는지, 이것 자체가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역사로 기록되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하지만 빈집 철거 이후 동요하고 이탈되어 마을을 떠나는 주민들은 없을지, 주민들이 없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은 가능한 것인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런 마음은 주민들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사람인데, 불안하지 않겠나


주택철거를 앞두었던 8월 31일 주민 촛불행사 2주년을 맞아 국방부로 촛불문화제를 하기 위해 주민들 대부분이 상경한 마을은 고요했다. 이 조그마한 마을에 그리 큰 일이 있었는지, 있기나 할 것인지 믿겨지지 않을 만큼 평화로웠다. 강아지조차 보이지 않는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걸어보았다. 마침 대추리 3반 뜸에 위치한 구멍가게에 마을 주민 몇 분이 보인다. 지킴이들 얼굴만 보면 그냥 지나가는 법 없이 아이스크림 한 개씩을 들려주시는 이태헌 작업반장님이 아니나 다를까 메론바 하나를 덥석 손에 쥐어주셨다. 촛불행사에 올라가지 않은 구멍가게 아줌마와 다른 주민 한분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아줌마 한분이 지나가는 말처럼 이태헌 반장님한테 말을 건넨다.


“아저씨 나는 저 쪽에 집 봐 뒀는데, 아저씨는 어디 가서 사실 거예요? 우리 집이랑 같이 이사 가자.”


이런 말들을 농담처럼 건네는 모습이 마음 아파 눈 둘 데 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민들이라고 사람이 아니겠는가. 국방부의 명도소송 통지서가 매일 매일 날아오는데, 아무리 강단진 마음이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듣고 있는 마음이 불편하고 좌불 안석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 그런 말 하는 거 아닌겨….” 반장님이 나와 같은 하늘을 쳐다보며 한마디 하신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지금은 싸워야 할 때다. 우리는 단 한 평도 내 줄 수 없다. 우리를 사람 대접하지 않는 국가한테 질 수는 없다. 말 수 없는 그이의 길게 이어지는 어감이 마음을 쾅쾅 두드렸다. 주민들이 흔들리면 나는 어디에서 싸움을 해갈 수 있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동요가 내 마음에도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1반 뜸에 살고 있는 내 옆집에는 대추리에서 태어났고, 결혼도 대추리 사람하고 해서 평생 대추리를 떠나지 않은 김월순 할머니가 사신다. 할머니는 오전 일찍 평택시내 어느 아파트에서 청소를 하시고 저녁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마을로 돌아오시는데, 젊은 사람들이 들락거려 소란도 할 법한데 싫은 소리 한번 없으시다. 오히려 아침마다 호박이며 고추를 따서 현관문 앞에 두고 가시는 우렁각시 같은 분. 집 앞에서 만나자 대뜸 손을 덥석 잡으신다.


“우째 이 집이 우리 딸 명의로 돼 있는데, 우리 딸 집으로 자꾸 뭐가 날아 온디야. 집을 안 비우면 부수겠다는데… 우찌… 이번 녘에 저 놈들 올 때 괜찮을까?” 괜찮아요. 할머니. 이번에 철거는 빈집만 하고, 게다가 지킴이들이 살고 있는 집도 안 부순대요. 그냥 완전히 사람들이 살지 않는 집만 부순다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려. 그럼 내가 그 우편물 온 거 뜯어 봐도 괜찮은 거지? 그거 온 거 딸네한테 가져 오라서 보여줄게.” 네. 너무 걱정 마시고, 우편물 온 거 있으면 주민대책위한테 알려 주세요. 아마 다른 분들도 모두 받으셨을 거예요. “그려… 내가 잠이 안 와. 저 놈들 삑삑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덜커덩 거리는 겨… 애기 엄마도 조심해야 혀. 몸 다치면 클나.”


이들에게 무슨 큰 잘못이 있어서 이런 고통을 감내하게 하는지, 대추리 도두리에 발 디디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씩 생긴다. 국가가 지켜주지 않는 외로운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해, 양심이 명령하는 소리를 외면하지 못해 생긴 구멍이다. 하루에도 수 십 번 되뇐다. 이기고 싶다. 김월순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이기고 싶다. 지키고 싶다.



새벽 공기는 추웠고, 하루 종일 하늘은 너무 맑았다


드디어 13일. 그들의 작전이 시작되는 날 새벽 3시경부터 주택을 지키기로 결심한 지킴이들은 행동을 시작했다. 내가 오르기로 작정한 집의 지붕은 낡은 슬레이트가 깔린 가건물 지붕이었다. 마을 주민들의 정보를 캐내서 승진을 했다는 평택 경찰서 황형사네 집. 마을 주민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나쁜 짓으로 주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그이의 집을 주민들은 없어져도 좋다고 우스개로 말했다. 하지만 대추 초등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그 집이 부서지면 마을의 초입은 너무 황량해질 것이다. 그래서 인권활동가들은 평화전망대와 이 집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지붕이 단단하지 못한 만큼 경찰의 진압도 무리하게 진행되지 못할 것이고, 장기적인 농성이 가능해지면 우리에게 승산은 있다. 하지만 결의에 차 있다 하더라도 지붕위에서 맞이한 새벽은 추웠고 무서웠다. 경찰들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보이는 위치에서 ‘PEACE 평택’, ‘강제철거 인권침해’가 쓰인 현수막을 들었다. 같이 오른 후배는 이러한 농성이 처음이라 나보다 더 많이 긴장해 있었다.


“조금 무섭다.” 긴장을 풀어준답시고 뱉은 말이 이랬다. 후배는 웃으며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답한다. 우리가 오른 지붕 위의 뒤편으로도 두 개의 집 지붕위에 사람들이 올라 있다. 앞뒤가 뻥 뚫린 집에서 새우잠을 자고 오른 그들이 걱정이다. 졸다가 지붕 위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꽤 쌀쌀한 새벽인데 옷들이나 제대로 챙겨 입고 올랐을까 자꾸 뒤 돌아 보게 된다. 평화전망대에 오른 인권활동가들도 전화와 문자를 날린다. 사진을 찍게 포즈를 취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현수막을 들었다가 다시 놓고 하기를 여러 번 드디어 새벽 6시가 되었나 보다. 숫자를 어림할 수 없는 경찰들이 마을에 들이닥친다. 너무 많았다. 새까만 그들의 헬멧 사이에 용역으로 보이는 하얀 헬멧들이 섞여 있다.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90여 채의 주택을 철거하기 위해 2만 명의 경찰을 동원하는 나라다. 기가 차고 허탈하다. 저것 자체가 폭력이지 않은가. 인권활동가의 소명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다짐한다. 동시에 마을 사이렌이 거듭 울렸다. 사이렌이 울리기 전부터 나와 계시던 마을 주민들이 평화 공원 쪽에 모여서 규탄대회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사람이 살고 있다. 강제철거 중단하라.’고 울부짖는 연사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눈물이 나왔다. 저들은 대화를 한다고 언론에 보도하면서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곤봉을 들고 방패를 들었다. 무엇이 폭력일까? 폭력집회 운운하면서 공권력을 앞세우는 노무현 정권, 그가 민주주의의 한 솥밥을 먹은 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노무현이 부시를 만나기 위해 워싱턴으로 출발한 다음날 대추리 도두리의 주택은 한미공조의 조공품이 될 양이다. 평택미군기지이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부시에게 보여주기 위해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피눈물은 제물이 되는 것이구나. 가슴 언저리가 아파서 힘껏 심장을 눌러 보았다.


길었던 저항의 시간


도두리와 대추리 4반 뜸 여기저기서 경찰 배치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들이 오른 집의 아래에도 경찰들의 배치가 끝났다. 그들의 무전기 소리가 왱왱 귀를 울린다. 도두리 마을회관 뒤쪽에서 주택 철거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굴삭기 한 대가 대추 초등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경찰 헬기가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사진기를 든 경찰들이 지붕 위에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열심히 찍고 있다. 7시를 조금 넘기자 주택철거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올라있는 집을 피해서 다른 집들의 철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굴삭기 삽날이 내가 있는 집의 뒤편에 서 있는 가건물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튼튼해 보이던 골재들은 순식간에 허물어 졌고 먼지가 매캐하게 날기 시작했다. 굴삭기 앞에 달린 사마귀 이빨처럼 달린 크래셔가 날렵해 보였고 그리고 위압적이었다. 평화전망대에 오른 인권활동가들에게 문자가 왔다. 그 쪽에는 경찰특수기동대까지 배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며, 매트리스를 깔고 진압이 곧 시작될 것 같다는 소식이다. 전망대의 난간에 몸을 묶은 동지들의 아픔이 전달되었다. 그들이 깔아놓은 매트리스는 정말 안전할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이런 저런 걱정에 머리가 어지럽다. 대추리 초입, 원정 3거리 방향에는 경찰 2개 중대와 물대포가 지킴이들의 연행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이 뜬다. 대추리 도두리 뿐만 아니라 평택 시내에서 벌어질 사태에 대비하는지 공설운동장에서 대기하는 경찰 병력도 수백 대에 달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어젯밤 촛불집회에서 주택을 부술 수는 있어도 우리의 마음을 부술 수는 없다고 외치던 신부님의 음성이 귓가를 맴돌았다. 내가 이곳을 지키면 주민들의 마음과 내 마음은 부서지지 않는 것일까. 굴삭기가 빈집을 찍어 누르는 모습을 쳐다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하늘이 너무 파랗다. 가을이 너무 천연덕스러워서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는 이 시간에 아침 밥상을 차려 출근 준비를 서두르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추수할 논밭에 나가 논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추리와 도두리는 그러한 일상을 반복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부당한 국가의 요구에 저항한 순간부터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은 일상의 평화를 잃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들은 자기 삶을 옥죄는 무수한 차별과 소외에 맞서 싸우지 않는 대가로 여느 날과 다르지 않는 일상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존엄을 지킨다는 것은 저항을 받아들이는 것, 저항의 대가는 결코 달지만은 않지만 그 깊고 진한 쓴 맛을 알게 되면 포기할 수 없는 것, 평화전망대의 인권활동가들이 전원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나는 지붕 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내 목소리를 들은 경찰 누군가의 양심에 호소하고 싶었고, 지붕위에서 이어질 우리들의 저항에 힘을 주고 싶었다.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다. 내 가슴에 새긴 불타는 투혼. 무수한 발길에 짓밟힌대도 민들레처럼…모질고 모진 이 생존의 땅에 내가 가야 할 저 투쟁에 길에…온 몸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민들레처럼….”


잡아갈 놈들은 다 놔두고, 억울해서 못 살겠다


몇 시가 되었나. 대추리 4반 뜸에는 주민이 이주하지 않은 집까지 철거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병원에 다니러 잠시 나갔다 온 아저씨는 폐허로 변한 집 앞에서 목 놓아 울고 계신다고 한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막무가내로 진행되는 철거는 불상사를 낳을 수밖에 없다. 정신을 팔 사이도 없이 드디어 우리가 오른 집으로 경찰들이 몰려온다.


“지금까지 오래 계셨는데 이제 그만 내려오시죠.” 경찰이 확성기를 들고 비아냥거린다. 자세를 바로하고 현수막을 치켜들고 구호를 외쳤다.


“평택미군기지 전면 재협상하라!”, “사람이 살고 있다. 강제철거 중단하라!” 새벽부터 악을 써서 그런지 목소리가 갈라졌다. 집회 대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온통 경찰에 둘러싸여 있는지라 구호를 외치기가 힘이 들었다. 후배와 번갈아 가면서 구호를 외치는데, 경찰들은 용역경비들에게 우리를 끌어내리라고 명령한다.


“이곳을 철거하려면 영장을 보여 달라. 용역들은 사람을 구인할 권리가 없다. 연행하려면 경찰이 올라오라.”고 소리를 쳤다. 국방부 직원 하나가 굴삭기 앞에서 무언가를 읽는다. 그리고 용역경비들이 지붕위의 슬레이트를 하나씩 부수기 시작한다. 사람이 다치지 않고 연행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지붕위로 올라가는 내 손을 잡고 누군가 “완강하게 싸워야 하지만 결코 다치면 안 됩니다. 무리하게 하지 말고 끌어내리면 꼭 그냥 오세요.”라고 했었다. 옆에 있는 후배에게 그 말을 전했다. “우리 다치지는 말자. 알았지? 꼭 다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다치지 않고 이곳을 내려갈 수는 없겠다고 내심 생각한다.


“당신들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지금 순순히 경찰의 요구에 응하면 연행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세 번 이상 경고하고도 이를 무시하면 연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경찰지휘관이 미란다 원칙이랍시고 떠들고 있다.


“우리는 인권활동가들입니다. 우리는 평택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인권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법을 어기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권은 법을 지키는 것보다 고통 받는 이들의 곁에서 함께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연행되고 구속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섭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경찰에게 요구합니다. 단 한번이라도 권력의 편이 아니라 고통 받는 국민들의 편이 되어 주십시오. 우리를 연행할 것이 아니라, 부당한 국책사업을 멈추라고 요구해 주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오늘 당신들이 이곳에서 한 행동을 기억하십시오. 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피눈물을 기억하십시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은 부당한 것입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소리를 질렀다. 나이 어린 용역직원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어서 내려와 달라고 소곤거렸다. 그들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는 웃음을 보였다. 우린 내려가지 않습니다. 여경들이 올라오고, 촬영하는 기자들이 내려가고 그때쯤이었다. 아주머니 한분이 갑작스레 지붕위로 올라왔다.


“이놈들아! 부정부패한 나쁜 놈들은 다 놔두고 지금 뭐하는 짓거리여. 내가 오늘 여기서 죽을란다. 이 사람들 잡아 가두고 김지태 이장 잡아가두고 내가 억울해서 못 산다. 날 죽여라. 이놈들아!”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라 말릴 틈도 없이 지붕위에 위태롭게 서 있던 아주머니는 오랫동안 울부짖었다. 그러자 혹시라도 불상사가 벌어지면 책임을 피할 수 없으리라 판단한 경찰들이 철수를 시작했다. 아줌마는 경찰들이 떠난 다음에도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억울해서 못 살겠다. 억울해서 못 살겠다.”



졌지만 진 것이 아니다


오후 4시가 넘자 철거작업을 진행하던 용역들이 먼저 철수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들이 오른 1반 뜸에 배치된 병력 외에 다른 곳의 경찰들은 모두 철수한 모양이었다. 평화전망대를 제외하고 지킴이들이 올라간 집들은 모두 지켜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처참하게 부서진 마을 곳곳의 집들을 보면서도, 마음이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있는 집 밑으로 몰려온 주민들의 얼굴이 밝다. 집은 부서졌지만 마음은 부서지지 않았구나… 눈물이 핑하니 돌았다. 혹시라도 우리가 연행될까봐 주민들은 집 아래에서 평화미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어느 성당에서 들었던 것보다 아름다운 성가가 마을을 울리고 있었다. 걱정스럽게 올려다보는 주민들의 손을 어서 잡고 싶다. 그 고단한 시간들을 토닥토닥 위로해 주고 싶다.


그들이 완전히 물러나고 나서 지붕을 내려오니 주민들이 안아준다. 고생했다. 고맙다. 따뜻한 음성이 하루의 피곤을 날려버리는 것만 같았다. 이날 대추리 마을에는 5월 4일 이후 처음으로 노인정에서 공동식사가 차려졌다. 국방부가 빈집철거를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발표했지만 주민들은 우리가 이긴 거라고 오랜만에 다리 뻗고 자겠다고 신이 나셨다. 우리는 졌지만 진 것이 아니다,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꼭 승리할 때까지 똘똘 뭉쳐 싸우자고 결의를 세웠다.


길었던 하루였다. 저들이 계획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이 진행되는 일정 중에 하루였을 것이다. 어쩌면 저들은 와인 잔을 채우고 사업 진행이 순조롭다고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13시간 동안 지붕위에 있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결코 물리력으로 부술 수가 없다는 것을, 시련이 지나면 사람의 마음은 더 단단해 지는 법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싸움을 저무는 싸움이라고, 끝난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일러주고 싶다. 우리는 지금 이기는 싸움의 첫발을 겨우 뗀 것이라고. 지금 주저앉으면 이미 싸움은 끝나는 것. 그 하찮은 제국주의자들에게 무릎 꿇지는 말자고.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지 않은가. 야만의 시간을 이제 그만 멈추자.



사진 강곤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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