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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을 가늠하는 법관이 부패혐의로 쇠고랑 차는 모습이 어이없듯, 난리수습권을 놓고 벌이는 한바탕의 난리 역시 ‘초현실적 풍경’을 연출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애국자가 아닌 이 없으며, 오매불망 우국지정이 흘러넘쳐 눈알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아메리카 군대가 손을 놓아버린다면 저 붉은 무리들의 범람과 침략을 어찌 가녀린 우리의 힘만으로 물리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지사들의 한결같은 걱정입니다.
골프를 쳐도, 귀신 잡는 해병대 골프장을 이용해 애국심을 과시하는 송영선 의원님께서 마이크를 쥐었습니다.
“내 한 몸 바쳐 이 나라를 구할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친미파가 되겠습니다, 이제는 당당하게 친미를 외치겠습니다, 여~러분!!” “옳소, 옳소!!”
참언론인 조갑제 대기자께서는 “노무현 정권 사기단은 좌익 쿠데타를 벌이고 있고, 여기 모인 우리는 그것을 막을 국민군이다. 우리에겐 애국군인이 필요하다. 헌법 제5조에 따라 국군은 전군지휘관 회의를 열어 현재 노무현 정권이 벌이는 행동을 이적행위로 규정해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바보가 아닌 이상, 쿠데타를 하라고 선동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서를 달았지요. 언어의 유희를 즐길 줄 아는 분입니다.
연이어 가슴팍과 머리에 빛나는 별들을 달아맨 장군님들께서 연단에 올라, 열변을 토하셨습니다. 열변은 곧이어 피를 토하는 애국심에 찬 연설, 이른바 혈변(血辯)이 되어 대중을 감화시켰습니다. 노무현이 김정일이 되고, 김정일이 노무현이 되어 역할놀이를 하다가, 육두문자 양념 세례를 받은 뒤 ‘저주받은 한통속’이 되어 짓이겨졌습니다. 언어게임이 참으로 근엄했습니다.
어떤 예비역 대령님은 가슴에 성조기를 붙이고, 자랑찬 조국의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오죽 암울했으면 그 소중한 성조기마저 뒤집어 달았겠습니까. 어쨌든….
“한미동맹 파괴공작, 즉각 중단하라!!”
“노무현의 적색 쿠데타, 애국으로 막아내자!!”
“전시작통권 환수, 결사반대한다!!”
태극기가 펄럭이고, 성조기가 펄럭였습니다. 애국심에 고취되어 저마다 만세를 불렀습니다. 주먹도 불끈 쥐었습니다.
바로 그 때….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바닥에 고인 물로 목을 축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는 다만, 목이 말랐을 뿐입니다. 애국자들은 다만, 나라를 사랑했을 뿐입니다. 헌데도 이 장면, 뜨거운 현실을 야멸치게 깔아뭉개 버리는 이 장면! 도도히 날아와 구정물을 마시던 닭둘기는 내 말문을 막아 버렸습니다.
2006년 8월 11일 서울역에서…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