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갑자기 다가올 역사의 순간

계절은 어느새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뜨거웠던 여름 볕은 어디로 갔는지, 벌써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농민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1년의 수확을 풍성하게 하는 그런 가을이길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은 특집으로 ‘빈곤’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타워팰리스와 대조되어 극명하게 우리 사회 빈곤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포이동을 다녀왔고, 한미 FTA가 가져올 빈곤의 확대, 심화에 대해서도 짚어보았습니다. 좌담에는 빈곤문제를 틀어쥐고 현장을 뛰는 활동가들의 고민을 풀어냈습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인권보장체계로부터 강제로 배제된 총체적인 인권박탈의 상황이 빈곤임을 인식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이 가을을 더욱 쓸쓸하게 맞을 지도 모릅니다. 이 가을 끝에 곧 이어서 닥칠 한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지 걱정을 미리부터 하고 있어야 할 지 모릅니다. 거리에서 한뎃잠을 자는 노숙인만이 아니라 절대빈곤의 상황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장애인들까지 가난한 이들이 가을의 수확의 기쁨을, 그리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가을의 초입의 인권상황은 심상치 않습니다. 공무원노조 사무실이 해머에 의해 부서졌고, 포항건설노조 하중근 씨 사인은 규명되지도 않은 채 장례를 치렀는데 포스코를 점거했던 노동자들은 중형을 선고받았고, 청주 하이닉스 노동자들도 구속되었고…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습니다. 민주노총만을 따돌려 놓고 노사정이 합의하여 노사관계 로드맵을 이번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려 하고 있고, 한미 FTA 협상은 차질 없이 다음 달에 제주도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항의투쟁을 막기 위해서 치졸하게 집회신고조차 접수하지 않는 경찰의 모습은 낯설지만은 않은 모습입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을 강행하고, 직도 사격장에 주한미공군 폭격기를 위한 자동채점기를 설치하겠다는 방침도 절대 흔들림 없이 추진해가는 정부입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일찌감치 정권 퇴진을 내걸고 총파업을 결정해 놓았고, 전국의 농민들도 10월부터 11월까지 농번기에도 불구하고 투쟁일정을 잡아 놓았습니다. 요즘은 공공연하게 민중 총궐기가 제안되고, 소문처럼 퍼져 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현실은 답답하고, 답답한 현실 앞에 결기를 세워야 하는 이 가을은 풍성한 수확을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제가 존경하는 ‘길 위의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역사의 순간은 갑자기 거짓말처럼 다가온다.”


이 가을 우리의 현실이 이처럼 답답한 것은 언제 갑자기 다가올지 모르는 역사의 순간을 예비하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 가을 투쟁의 현장에서 정신없이 살다가도 눈물이 나도록 파란 가을 하늘을 잠깐씩 바라봅시다. 그러면 거기서 거짓말처럼 다가올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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