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국제인권]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필리핀에서는 올해 100명이 넘는 노동, 인권운동가, 종교인, 변호사들이 살해당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약 4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라구나(Laguna) 지방의 카바요(Cabuyao) 시. 9월 22일 정오 무렵, 마(麻) 산업과 농업 노동자 조합(Olalia) 지도부들이 한창 회의를 하고 있던 건물에 건장한 두 남자가 찾아와 느닷없이 “장례식이 어디요?”라고 물었다. 장례식 같은 건 없다고 하자 둘은 이내 사라졌고, 노동자들은 다시 회의를 계속했다. 그들 중 아무도 그것이 몇 시간 후에 일어날 끔찍한 일에 대한 경고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더구나 자신들이 ‘동지(Ka Fort)’라 부르며 따르던 디오스다도 포르투나(Diosdado Fortuna)가 그 표적이라는 것도 말이다.


같은 날 오후, 포르투나는 네슬레 파업현장을 찾아온 성토마스 대학 학생들과의 간담회가 끝난 후 집에서 온 문자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손자가 아파서 급히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자주색 오토바이를 타고 카람바(Calamba) 시에 있는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줄곧 그의 뒤를 따라오던 두 대의 오토바이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등에 총알을 맞은 그는 곧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의 호흡은 멈춰 있었다. 고단했지만 열정으로 가득 찼던 노동자 포르투나의 51년 삶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노동운동


포르투나는 1976년부터 네슬레 공장에서 일해 왔다. 전 노조위원장인 멜리튼 로하스(Meliton Roxas)가 바로 파업현장에서 총에 맞아 숨지자, 그는 노동자들에 의해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특히, 2002년 1월부터는 회사 측이 단체협약 상에 명시된 노동자들의 퇴직금 지불을 거부하자 600여 명의 노동자들을 이끌고 파업투쟁을 지휘해왔다. 노조에 유리한 대법원 판결까지 나왔으나 회사 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3년이 넘는 파업 기간 동안 10여 명의 동료 노동자들이 가난과 질병 등으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포르투나는 그 자신도 사측 경비원들과 경찰의 폭력, 끊임없는 살해 위협에 시달려왔다.


그는 또한 남부 타갈로그 지역의 노동자 동맹 의장과 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한 전국연대 공동의장, 필리핀 의회에 두 명의 의원을 진출시킨 노동자 진보정당인 아낙빠위(Anakpawis)의 지역 의장을 맡는 등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지역 진보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올 해 들어서는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의 퇴진 운동에도 앞장서왔음은 물론이다.


불행히도 올해 필리핀에서 피살된 노동운동가는 포르투나 뿐만이 아니다. 그가 살해되기 바로 9일 전에는, 퀘손(Quezon) 시의 슈나이더 포장 노동자 조합(SPWU) 대의원인 테오티모 단테(Teotimo Dante)가 파업 투쟁 도중에 살해당했다. 당시 노동조합은 최저임금법 준수와 사회보장서비스 해결을 요구하면서 한 달 째 파업 중이었는데, 노동자들이 공장 정문 앞에 농성장을 설치하려 하자, 회사 경비원들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총격이 일어난 것이다. 필리핀의 진보 주간지 에 따르면, 회사 매니저가 직접 경비원들에게 “쏴 버려. 너희들이 안 쏘면 내가 너희들을 쏠 거야.”라고 직접 살인을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포르투나 살해 사건을 규탄하는 전국적인 투쟁이 필리핀 노총인 KMU에 의해 조직된 바로 다음 날(9월 30일)에도, 카라가(Caraga) 지역 KMU 부의장이자 안드레아스 소리아노 대학노조위원장인 빅토리아 시몬트란 여성이 칼에 찔려 숨졌고, 10월 11일엔 아틀라스 광산 노조위원장 토니 쿠손(Tony Cuizon)이 총격을 받아 중태에 빠졌다.



정권차원에서 행해지는 조직적 암살


이처럼 오늘날 필리핀에서 노동운동은 글자 그대로 목숨을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위험한 운동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유독 노동 운동가들에게만 살인과 폭력, 협박이 집중되는 것일까? 더욱 슬프게도 그렇지 않다. 캐나다에 위치한 <캐나다 기독교 정의 이니셔티브(Canadian Ecumenical Justice Initiatives)>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필리핀에서 100명이 넘는 노동운동가, 인권운동가, 종교인, 변호사들이 살해당했다고 한다. 지난 8월 20일에 살해된 라울 도밍고(Raul Domingo) 목사 같은 경우에는 카라파탄에 위치한 한 인권단체의 대표를 맡으면서 지역의 가난한 농민들의 생존권을 앗아가는 광산회사의 사업에 대한 반대운동을 하다가 피살당했고, 9월 1일에 살해된 노만 보카라는 변호사도 비사야즈 동부 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왕성한 활동을 해오다가 죽임을 당했다.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죽이고 있는가? 잇따른 노동, 인권운동가들의 죽음의 배후에는 필리핀 아로요 정권과 국립경찰(Philippine National Police,PNP), 군대(Armed Forces of the Philippines, AFP), 그리고 지역의 토호들과 다국적기업이 피묻은 손을 뒤에 감추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필리핀에서는 비밀 아닌 비밀이다. 즉, 우발적인 살인의 연속이 아니라 정권 차원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정치 암살이라는 것이다.


표차 100만 표를 조작하라!


이미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듯이, 올해 들어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Gloria Macapagal Arroyo) 대통령은 커다란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작년 5월 대선과정에서 대통령이 직접 선거관리위원을 불러 “야당후보와의 표차가 100만표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냐”고 묻자 선거관리위원이 “아직 100만표가 안되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대답한 내용이 담긴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선거결과 조작 의혹이 대대적으로 불거진 것이다(실제로, 아로요 대통령은 야당 후보였던 페르난도 포 2세를 100만 표가 조금 넘는 표차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또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과 아들, 시숙이 불법도박업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권퇴진 투쟁으로까지 사태는 확산되었다.


물론 과거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나 전임 에스트라다 대통령 때처럼 대규모 피플파워에 의한 퇴진 투쟁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고,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국민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가톨릭 주교단이 공식적으로 퇴진을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아로요 입장에서는 그나마 발등의 불은 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급락한 지지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국민들의 실망감이 어느 정도일 지는 아로요 대통령이 어떻게 대통령이 됐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부정선거로 뽑힌 대통령-에스트라다


그녀는 2001년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뇌물수수 스캔들에 연루되었을 때 자신의 재산까지 내놓겠다고 공언하며 개혁과 부패척결을 전면에 내세워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인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전 대통령 또한 1970년대 부정부패 척결을 핵심정책으로 내걸었던 인물인지라, 만성적인 가난과 정치인들의 부패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은 필리핀 전체 부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명문가’ 출신에다 미국 조지타운대 경제학 박사인 그녀를 흔쾌히 차기 대통령으로 밀어주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물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본모습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선거부정과 부정부패에 연루된 것이 드러나자, 대다수 필리핀 국민들이 ‘역시 그럼 그렇지’하고 생각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유일하게 빈민층 출신 대통령이었던 에스트라다 때와는 달리 아로요와 계급적인 이해를 같이 하는 대기업, 군대, 가톨릭 등 권력의 상층부가 아직까지 아로요에게는 관대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민심의 이반이 계속 될 경우 어떤 결과가 이어질지는 아무도 예측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독재자 마르코스가 1983년 베그니뇨 아키노 상원의원을 암살한 후 민중항쟁으로 물러난 것이 3년 후였고, 에스트라다도 뇌물수수 주장이 나온 후 1년이 지나서야 쫓겨나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아로요 정권에게는 필리핀 전역에서 기층민중들의 투쟁을 이끌고 있는 노동운동가와 농민운동가, 그리고 그들을 지지, 엄호하는 인권운동가들의 움직임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공장에서, 농장에서, 지역에서 민중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동시에 아로요 정권 퇴진 운동에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지금의 잇따른 운동가들의 살해가 조직적인 정치 암살이라는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인도 좋다, ‘불필요한 장벽’을 없애라!


그렇다면 아로요 정권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 운동가 암살의 유일한 배경일까? 그건 아니다. 만약 과거에는 이런 일들이 별로 일어나지 않다가 올해 들어 유독 이런 사건들이 빈발한다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이미 이전부터도 많은 노동, 농민 운동가들이 파업투쟁 과정에서의 폭력에 희생되어 왔다.


한 통계에 따르면 올 1월부터 9월까지 필리핀 전국의 11개 사업장에서 1,011명의 노동자들이 파업과정에서 물리적인 공격을 받아 부상당했다고 한다. 과거에도 2001년 도요타, 닛산, 네슬레, 2002년 술피시오 라인즈(Sulpicio Lines), 2003년 굿 파운드 시멘트(Good Found Cement) 등에서 파업 노동자들을 강제로 해산하는 과정에 굵직굵직한 폭력 사태가 발생해 왔다. 급기야 작년 11월 16일에는 6,443 헥타르의 광활한 설탕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자 수백 명의 경찰과 군인들이 농장 내로 진입해 7명의 노동자들을 살해한 그 유명한 ‘하시엔다 루이시따(Hacienda Luisita) 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에는 다국적기업을 비롯한 해외자본 유치를 통해 경제발전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려는 정권과 이를 이용해 노동권 보호, 임금인상, 고용안정과 같은 ‘불필요한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는 자본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즉,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이 가능한 신자유주의 하에서 기업은 자본철수를 미끼로 노동시장의 규제 철폐와 노동기준의 완화를 끊임없이 관철시키려 하고, 해외투자에 목을 맨 정권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위해 노동자들의 저항을 공권력을 동원해 알아서 억눌러 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시아 12개국의 17개 노동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아시아초국적기업 감시 네트워크(ATNC Monitoring Network)>에서는 성명서를 통해 ‘기업이 주도하는 세계화, 노동 기준의 규제 철폐, 비정규직화, 노조 파괴, 궁극적으로는 이윤 축적이 인간보다 우선하는 개발’이 운동가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주범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빈곤과 차별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민중들


이제 포르투나 ‘동지(Ka Fort)’는 땅 속에 묻혔다. 그가 사망하기 한 달 전, 네슬레 투쟁현장을 방문했던 한국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살해위협이 두렵지 않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무섭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소수의 상류층과 다수의 빈민층들만이 존재하는 나라, 8,300만 인구 중에서 3,000만 명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국노동자들을 해외로 ‘수출’하는 나라, 필리핀의 민중들은 오늘도 빈곤과 불평등, 차별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거는 투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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