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는 건설노동자들의 특성-이동성, 일용직, 팀단위 등-에 의하여 지역별로 구성이 되어 있고, 노사관계도 현장별로 갖고 있었다. 2000년부터는 현장의 원청과 단체협약을 체결하여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노동조건 개선과 권리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이 시작되었고, 단체협약을 통하여 노동조합은 현장에 전임자를 두고 회사로부터 전임자의 임금지급 조항을 따내어 활발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노조가 눈엣가시였던 건설자본은 검.경과 합작하여 노동조합의 원청과의 단체협약을 ‘공갈’에 의한 협박으로, 전임자의 임금지급을 ‘금품갈취’로 둔갑시켜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탄압의 1차 시기인 2003년, 대전과 천안, 그리고 경기서부건설노조 간부들은 무차별적으로 구속.수배되었으나 명동성당에서의 289일간의 노숙 및 천막농성투쟁과 현장투쟁의 강화로 다른 지역으로의 확대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공안검찰은 2004년과 2005년, 경기도건설노조와 대구지역건설노조를 상대로 소환조사와 내사를 실시하였고, 계속될 탄압을 예고했다. 그리고 2006년. 결국 그 끝을 향해 달려가는 건설노조 공안탄압은 실체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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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총파업과 공안탄압 2라운드
2006년 6월은 토목건축 건설노동자들과 전국 10개 토목건축 건설노조에게 매우 의미 있는 달이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대구지역 토목건축노동자들 2,000여명이 함께 한 총파업을 성사시켰기 때문이다. 토목건축노동자들은 이동성이 매우 심하며 일당쟁이 팀 단위라는 특수성과 중층 다단계하도급, 정부의 잘못된 이주노동자 정책 등으로 인하여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에 파업은 고사하고 조합에서 간부로 활동할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따라서 십 수 년 동안의 공회전 끝에 조직한 대구지역에서의 총파업은 건설노조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200만 건설노동자들의 단결을 두려워하여 건설노조를 ‘작살’ 내기로 마음먹은 공안검찰은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대구건설노조의 총파업 투쟁이 선언되었던 6월 1일 직후, 대구지검은 그간 준비했던 ‘건설노조 죽이기 프로젝트’를 가동하여 대구건설노조 전, 현직 임원 6명에 대하여 긴급체포영장을 발부하였고, 파업대오에 지도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하였다. 물론 이들의 영장 발부 죄목은 ‘공갈’에 의한 ‘금품갈취’였다. 그리고 이와 거의 동시인 6월14일 충남지역건설노조 위원장과 조직부장을 긴급체포하여 전국적 탄압의 광풍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건설노조 공안탄압의 결정판
8월21일 새벽, 경기도건설노조 부위원장, 사무국장 등 세 명이 수원지검 특수부 수사관들에게 연행되면서 본격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건설노조는 이미 수원지검의 내사가 끝났음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ILO가 한국 정부에 건설노조를 탄압하지 말 것을 권고(2006.3)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8월 말 부산에서 ILO 아태지역 총회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최소한 ILO 총회 이후가 구체적 탄압의 시점일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당황했다.
수사 대상은 27명이었고, 검찰이 밝힌 체포영장 발부자는 12명이었는데, 여기에는 경기도건설노조 현직 간부도 있었지만 이미 노조를 떠난 사람들과 현직 민주노총 임원(이태영 부위원장, 경기도건설노조 전 위원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말 건설노조 공안탄압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을 만한 규모였다.
경기도건설노조 간부 3명이 구속된 후, 9월 14일 민주노총 현 부위원장인 이태영 부위원장은 독일과 호주의 노조들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인천국제공항에서 강제 연행 당했고, 16일 곧장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현직 부위원장을 소환도 없이 구속시킨 것은 민주노총과의 일전도 불사할 것이라는 검찰의 의중을 보여준 것이었다.
할 수 있는 투쟁은 무엇이든 한다
건설산업연맹은 6월 대구와 충남건설노조 간부들이 체포되자 곧장 ‘비상대책위원회’를 재가동하였고, 모든 상황과 투쟁은 연맹 비대위로 집중하기 위해 준비했다. 그러나 탄압이 시작된 직후 건설연맹 상황은 대구지역건설노조의 힘겨운 총파업(32일간 투쟁, 29명 구속)과 지금은 마무리된 포항지역건설플랜트노조를 비롯한 4개 지역 플랜트건설노조 7월 공동 투쟁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또 토목건축노조협의회는 대구총파업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기에 공안탄압에 대한 대응은 많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7월 이후에도 포항건설노조의 파업투쟁이 포스코 본사점거, 58명 구속, 하중근 열사의 죽음으로 이어지면서 연맹 비대위 차원의 건설노조 공안탄압의 대응은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공안탄압을 저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활동은 8월초 연맹 실천단을 꾸리면서 시작되었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건설노조 간부들을 중심으로 20명가량의 실천단을 구성하여 활동했다. 우선 ‘공갈’과 ‘갈취’라는, 민주노조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부도덕한 죄명을 벗기고 사실과 진실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여 우리 ‘동지’들과 ‘시민’들에게 선전활동을 진행하였다. 뜨거웠던 8월은 서울, 포항, 평택, 그리고 ILO총회가 있었던 부산까지 동지들과 민중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건설노조활동의 정당성과 탄압의 실체를 외쳤다.
그러나 건설노조는 대중적 기반이 아직 확보되지 않은 조직이었기에 투쟁을 벌이는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고, 당장 현장에서의 투쟁을 조직할 여력이 없어 사실상 실천단 활동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러한 고민과 조직적 위기의식을 가지고 8월 31일 새벽 건설산업연맹 토목건축노조협의회 의장과 경기도건설노조 간부 2명은 올림픽대교 주탑 고공농성에 돌입했다가 44일만에 본격적인 현장투쟁을 선언하며 지난 10월 13일 농성을 마쳤다. 현재는 수원지검, 서울 각 지역, 현장집중조직 등을 방점으로 투쟁사업을 배치하고 공안탄압 분쇄를 위해 전국 토목건축노조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수원지역투쟁은 경기지역공대위가 중심이 되어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포항지역건설노조 파업투쟁으로 전혀 움직일 수 없었던 공대위가 하중근 열사 투쟁이 남아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포항파업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를 중심으로 연대단위 동지들이 건설투쟁에 함께 하고자하는 마음을 전달하고 있고, 철폐연대는 대검찰청 1인 시위를 전담하여 조직하고 함께 하고 있다. 열악한 조직력과 투쟁력이지만 가만히 앉아서 공안검찰과 폭력정권에게 당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작은 투쟁이라도 벌여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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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나는 가끔 건설노조 투쟁과 관련한 글을 쓰면서 이 부분을 쓸 때 가장 힘들고 괴롭다.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 인생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건설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할 자격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 땅의 정권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 명씩 죽고, 1년 체불임금이 수백억에 달하는, 그야말로 죽음과 고통의 건설현장에서 살아가는 건설노동자들을 이토록 탄압하는 것은 반대로 건설노동자들이 조직되는 것을 그만큼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건설노동자는 200만 명가량 된다. 이중에 토목건축노동자는 180만 명 정도 된다. 지난 2000년부터 건설연맹 산하 건설노동자들은 매년 강도 높은 투쟁을 벌여왔고, 꾸준히 조직되어 왔다. 레미콘, 타워, 덤프, 그리고 플랜트로 이어지는 강도 높은 투쟁은 2006년 그 정점에 와 있다. 그리고 2006년 대구지역의 토목건축노동자들이 32일간 파업투쟁을 벌였고, 포항지역 플랜트노동자들이 82일간 투쟁했다. 이 두 가지 투쟁으로만 100명에 가까운 구속자를 낸 격렬한 투쟁이었다. 만약 이 상황에서 토목건축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조직되어 투쟁에 나선다면 건설자본과 정권으로서는 정말 끔찍하고 생각하기도 싫은 현실을 볼 것이 뻔하다. 하기에 그 예봉을 꺾고 건설노조 조직화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기의식이 그들(정권, 건설자본)에게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이 있다. 그것은 건설현장은 비리의 온상이고 비자금을 생산하는 공장이며, 그 모든 것은 다단계하도급으로 건설노동자들의 피를 빨아 먹으며 유지된다는 것이다. 건설노조가 현장을 마음껏 누비며 활개(?)친 지 6~7년 정도 되었다. 그 정도의 활동으로 산업안전시설 확충과 안전용품지급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되었고, 체불임금을 회사가 책임지게 되었으며, 노동자들의 복지시설과 복지혜택을 확충하기 위하여 무척이나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다. 원청과 하청회사는 건설노조 때문에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건설산업기본법에서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며 사실 아직도 법을 준수하려면 멀었다.
언젠가 원청회사 관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은 말이 있다.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건설산업기본법, 환경법, 하도급법… 이런 거 다 지키라고 하면 건설회사 문 닫습니다.” 건설노조가 현장을 조직하고 현장을 장악하게 된다면 모든 법을 다 지켜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 자명하기에 지금으로서는 그들의 선택은 ‘건설노조 죽이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노마저 구속할 수는 없다
9월 21일은 경기도건설노조 3명의 동지들이 연행된 지 딱 1개월이 되던 날이다. 우리들은 이 날 대검찰청 앞에서 건설노조 탄압 중단과 ILO 권고 이행을 요구하며 집회를 했다. 건설산업연맹의 면담요구에 검찰은 2004년에 할 말 다 했다면서 면담을 거부했고, 집회 참가자들은 미리 준비해 놓은 250장의 진정서를 민원실에 접수하였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검찰이지만 이후 끈질긴 투쟁을 선포하는 의미였다. 그러나 청와대 1인시위도, 대검 1인시위도, 수백 대오의 집회도, 진정서도, 대시민 선전전도 건설노조 공안탄압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노동자들의 수많은 투쟁들 중 승리하는 투쟁은 현장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었다. 현장의 건설노동자들이 조직되어 투쟁하는 것을 막아보겠다고 자행하는 탄압이기 때문에, 반대로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조직되어 투쟁에 나설 때 탄압은 중단되고 분쇄될 것이다. 이미 많은 동지들이 건설현장을 바꾸는 투쟁 속에서 구속되었고, 다치고, 죽어갔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명심해야 한다. 건설노조간부 몇 명을 구속하는 것으로 건설노동자들의 분노마저 구속할 수는 없다. 오늘 우리들의 투쟁은 건설노동자들의 희망을 지켜내는 투쟁이다. 아무리 구속하고 죽여도 건설노동자들은 그들의 분노가 스스로를 조직할 것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