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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이든 아니든, 악의적이든 그렇지 않든 가정과 사회에서 나타나는 장애인 차별을 법과 제도로 금지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장애인, 시민, 사회단체가 함께 연대하여 만든 단체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이하 장추련)이다. 현재 약 70여개 단체가 연대하고 있으며, 법인과 임의단체, 지역에 있는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1년 이상, 일주일에 한 번씩 빠짐없이 만나 각자가 경험한 장애인차별 이야기를 나누고, 외국의 입법례를 연구 조사하여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 수단을 만들고, 장애인차별 감수성이 있는 차별시정기구 설치를 주요 골자로 한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에관한법률(안)』(이하 장차법안)을 만들었다. 이를 가지고 전국을 돌며 수차례의 공청회와 토론회를 통해 법안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작년 9월 국회에 입법 발의를 하였다. 개인적 또는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장애인이 직접 만든 법률이 국회에서 입법의 희망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 장차법안이 국회에서 1년 동안 묶여 있다. 2001년부터 5년여 동안 입법 투쟁을 했지만, 입법 희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차별금지법(안)이 국회에 발의됐을 때 병합심리를 하겠다는 국회의원들의 생각이 원인이었다. 특히 지난해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차별시정기구 일원화’ 방침을 밝힌 뒤, 3년여 동안 법안준비를 하던 보건복지부가 ‘무기한’ 유보 방침을 밝히면서 장차법 제정은 사실상 냉기류에 휩싸이게 되었다. 당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을위한공동투쟁단’은 청와대 앞에서 69여 일간 노숙 농성을 했고, 국가인권위원회,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에 면담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깃발을 높이 들다
장추련은 지난 3월 28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금지법 토론회가 있던 날,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차별시정기구 문제는 지속적으로 토론하자는 제안과 함께 독립적인 장차법의 필요성을 국가인권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밝히라는 요구를 하였다. 농성에 들어가서야 국가인권위원회와 만남이 이뤄졌고, 급기야 60일 만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모든 장애인 차별을 담보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며, 따라서 독립적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농성을 마치고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서 청와대에서 정부와 장추련이 함께 장차법에 대해 얘기를 나누자는 제안을 하였다. 장추련은 이에 대하여 “때늦은 감은 있느나, 장차법에 대한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국회의 장애인차별금지법(안) 논의에 불을 붙일 수 있다.”라는 전제하에 “국회에 입법 발의된 장차법을 결코 훼손시키지 않는 선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민관공동기획단’ 구성을 수락”하였다. 제안을 수락한 이유 중 하나는 이 회의에 장차법 관련 부처가 모두 참여한다는 것이다. 사실 장애인 차별은 생애주기별로 전 영역에 걸쳐 나타나기에 거의 모든 부처들과 연관성이 있고 그 부처들은 결국 장차법 제정 이후에 어떤 형태로든 제 역할을 해야 하기에 그들과의 공식적인 만남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도달한 합의 사항은 “장추련과 정부 각 부처는 별도의 장차법 입법에 잠정적으로 합의하며, 독립적 기구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간 회의에서 정부 부처는 중복되는 법안에 대해 각 개별법에 담아내자는 입장이다. 또한 차별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고 일시적 장애 또는 합리적 배려 등은 개념이 너무 넓고 시정명령, 징벌적 손해배상, 입증책임전환 등 구제권한이 기존 법체계나 권한과 충돌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에 장추련은 본 법안은 논리적인 완성도 측면보다는 장애인이 실제로 겪는 차별 사안의 발생을 방지하고자 하는 실질적 측면을 감안하여 만들었으며, 복지적 관점에서의 기존 법령이 중복되는 내용이 있으나, 장차법(안)에는 인권적 관점에서의 차별금지와 지원의 내용이 들어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 민관공동기획단’은 주요 쟁점사항을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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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절실한 희망, 장애인차별금지법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에 맞추어 지난 9월 18일에는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 민주당 손봉숙 의원,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그리고 장추련 공동 주최로 ‘실효성 있는 장애차별해소방안에 관한 토론회’를 가졌다. 이 토론은 실제적으로 장애인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서 국회에 발의된 장차법(안)에 명시된 권리구제수단에 관한 논의와 법 제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장애인 차별에 한해서는 최소한 제한적이라도 시정명령권, 입증책임전환제도가 필요하다고 설파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금지법을 입법 권고할 때와 같이 장애인 차별과 관련해서도 강력한 권리구제수단 도입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한편 경영자총협회는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에서처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분명한 반대의견을 제시하고, 나아가 강력한 권리구제 수단 등이 오히려 차별적 상황을 가중시킬 수 있음을 경고했다. 또한 현재 실시하고 있는 의무고용제도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양립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장차법은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절실한 희망이다. 장차법은 장애인을 차별한 사람들을 처벌하는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장애인 차별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것에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장애인 차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을 때 차별이 감소될 것이다. 장애인 스스로 이 법을 만들었기에 다양한 장애인 차별이 명시되어 있고, 이는 국민적인 교육 홍보 효과를 가지게 될 것이다. 즉 이 법률안을 만든 사람들은 장애인 차별을 판단하고 예방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법률이 가지는 힘은 장애인 차별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차별을 정의하였다는데 있다. 사람에 대한 기본권 존중이 주요 가치이며, 사회적으로 인권 감수성을 끌어올리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따라서 장차법은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 지향과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징검다리로서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농성 투쟁이 성과로 나타난 시점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이 자못 흥분을 가져올 수 있다. 정부는 내년 2월 장차법안을 내겠다는 입장이고 열린우리당은 연내 장차법 제정을 목표로 한 국회 일정을 공식화하고 있다. 반면 토론회에서 입장을 밝혔듯이 재계의 거센 저항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장추련은 처음 법안을 발의한 그 정신을 잃지 않고 투쟁해야 할 것이다.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도 중요하고, 무엇보다도 실효성 있는 장애인 차별 구제 방안 쟁취를 목표로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개의 생활시설에서 27억을 횡령한 성람재단 문제, 섬 노예의 삶을 살아간 장애인, 장애로 인해 여전히 입학을 거부하는 학교 등이 현실 속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한, 이런 차별과 인권침해를 근절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 수단을 반드시 쟁취하기 위한 우리의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