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형식적 평등을 넘어 구조적 차별 개선으로

외국의 차별금지 입법례와 그 의미

평등의 원칙이 기본권 보장에 관한 우리 헌법의 핵심 원리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교육의 기회균등(제31조 제1항), 여성근로자의 보호 및 부당한 차별의 금지(제32조 제4항),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양성평등(제32조 제4항) 등의 구체적인 영역과 관련하여 특별히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평등의 원칙을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우리 헌법의 최고원리로서 국가가 입법을 하거나 법을 해석하거나 집행함에 있어 따라야 할 기준인 동시에…국민의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한 바 있다(헌재 1989.1.25. 88헌가7).


우리 사회에서 차별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여성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의 성과로 차별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높아지고 있으나, 차별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이다.


외국에서는 우리보다 앞서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등에서 다양한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졌다. 국제사회는 ‘정치적.시민적권리에관한국제규약’, ‘경제적.사회적.문화적권리에관한국제규약’, ‘인종차별금지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 ‘장애인권리선언’ 등의 국제적 합의를 통하여 차별시정의 기준을 제시해 왔고, 국제노동기구의 협약이나 유럽연합의 지침도 차별금지법 제정의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외국은 차별금지의 대상을 점차 확대하는 추세


캐나다 인권법(1977)은 성별, 인종, 출신국가, 출신민족, 피부색, 종교, 연령, 성적지향, 혼인여부, 가족상황, 장애, 사면된 전과 등 12개 차별사유를 포함하고 있다.


여러 차별 분야를 통합적으로 다루기도 하지만, 특정 분야를 별도의 법으로 제정하기도 한다. 통합법적 형식은 다양한 차별사유를 아울러 이들에 대한 통일적인 대응뿐 아니라, 2개 이상의 사유가 함께 작동하는 복합차별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임신한 여성장애인에게는 성별, 장애, 임신 및 출산, 혼인여부, 가족상황 등의 차별 사유들이 관련될 수 있다. 복합차별에 대한 관심은 그것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삶에 중복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에 실시된 한 조사에 의하면, 여성장애인의 67.8%가 무학이나 초등학교 이하인 반면, 남성장애인은 41.4%, 비장애 여성은 29.6%로 나타났는데, 이는 여성장애인에 대한 이중차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달리 영국은 성차별금지법(1975), 인종관계법(1976), 장애인차별금지법(1995) 등 사유별로 차별금지법이 존재한다. 개별법 형식은 장애인 차별과 같이 각 분야가 갖는 독특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의 현실, 사회운동의 성격 등에 따라 다양하다. 금지하는 차별의 사유를 보더라도, 미국이나 호주 등 다인종사회에서는 인종 차별이 중요한 이슈로서 이에 대한 법적 규제의 역사가 깊으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최근에서야 수면 위로 부상하였다. 대부분이 성별, 장애, 인종, 혼인여부, 성적지향 등의 사유를 포함하지만, 차별사유로서는 우리에게 낯선 유랑커뮤니티 소속여부(아일랜드), 트랜스젠더, 정당가입 및 정치활동(호주), 토착민(캐나다), 직업의 유무(뉴질랜드)도 있다.


외국의 차별금지법은 금지 대상을 점차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유럽에서는 유럽연합의 ‘고용.직업에서의 평등대우에 관한 지침’(2000/78호)에 의거, 영국(2006), 아일랜드(1998), 덴마크(2004)에서 연령차별금지법이 별도로 제정되었고 호주(2004)에서도 입법이 이루어졌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고령화 사회로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차별의 개념 또한 합리적인 이유 없이 개인이나 집단이 갖는 특정 속성을 기준으로 직접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직접차별에서부터, 중립적인 기준이나 관행을 적용하였더라도 그것이 특정 집단에게 불리한 결과나 영향을 주는 간접차별을 포함하는 것으로 변해왔다. 간접차별을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한 입법례도 있으나, 법에 명시하지 않지만 판례를 통하여 축적하거나, 축적된 판례를 통하여 이후 법에 명시하기도 한다. 가령, 뉴질랜드 인권법이나 영국 성차별금지법, 스웨덴 남녀고용평등법, 우리나라 남녀고용평등법 등에는 법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캐나다 인권법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인권재판소 등의 판례를 통하여 간접차별 개념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성별, 장애, 인종 등에 대한 괴롭힘(harassment)을 포괄하는 것으로도 확대되어왔다.


한편 차별금지법은 차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법에서 직접 명시하거나 각종 판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로서, 진정직업자격(BFOQ)이나 진정자격(BFQ), 적극적 차별수정조치(affirmative action), 모성보호를 위한 차등대우 등의 경우에는 차별의 예외로서 인정하고 있다. 진정직업자격(Bona Fide Occupational Qualification)은 고용에서, 진정자격(Bona Fide Qualification)은 재화, 용역, 상업시설 등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 등의 이용에 있어 해당 직무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격이나 요건을 의미한다. 적극적 차별수정조치는 과거 오랫동안 차별이 축적되어 형식적인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시정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구조적인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적인 조치를 하는 것이다. [조순경(2002), “차별의 이해”,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차별’ 판단을 위한 지침>, 국가인권위원회.]


외국 차별금지법의 주요 특징의 하나는 차별 분쟁 해결의 주요 수단으로서 조정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송체계의 비효율성(시간, 비용 등)과 적대적인 성격, 피해자의 실질적인 필요에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 등으로 인하여 강제적인 해결책 보다는 당사자 상호간의 이해와 합의에 의한 평화적인 해결방법으로서의 조정이나 중재 등이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차별 여부에 대한 직접적인 판단을 보류하는 조정의 성격상, 차별에 대한 명확한 판단기준의 제시나 이를 통한 예방?교육 효과가 감소하는 등의 문제점도 거론되고 있다. 특히 조정 모델을 도입하고 있는 외국의 경우 차별금지법의 역사가 오래되고 다양한 차별 소송으로 판례가 축적되어 있고, 차별에 대한 일정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차별시정기구의 독립성 유지가 중요


차별금지법에 근거하여, 사법적 구제 외에 별도의 차별시정기구가 존재한다. 이들 기구는 아일랜드 평등위원회, 캐나다 인권위원회, 미국 고용기회평등위원회처럼 차별의 문제를 단일 기구 내에서 다루기도 하지만, 아일랜드 평등위원회처럼 여러 차별사유를 단일기구를 통해 통합적으로 다루는 경우, 호주의 인권및기회균등위원회나 캐나다 인권위원회처럼 인권침해의 문제와 차별의 문제를 함께 다루는 경우, 미국 고용기회평등위원회처럼 여러 차별 사유를 통합적으로 다루지만 고용상의 차별만을 다루는 경우 등 다양하다.


차별사유별로 각각의 기구를 운영하는 국가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으로, 성차별을 다루는 기회평등위원회 외에 장애인권위원회, 인종평등위원회를 개별법에 따라 각기 다른 기구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차별판단에 대한 일관성 유지나 복합차별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하여 시정 기구를 복수로 운영하는 국가에서도 통합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은 전술한 기구들을 2006년에 통합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스웨덴(기회균등옴부즈만, 장애차별옴부즈만, 성적지향차별옴부즈만 등)에서도 일원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어떠한 형태이든, 차별시정기구는 독립성, 판단의 일관성, 전문성, 접근성 등의 조건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차별시정기구의 독립성 유지는 매우 중요하며, 이는 유엔의 권고사항이기도 하다.


차별시정기구는 주로 차별에 대한 시정권고를 하거나 당사자 간 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지만, 그 외에도 여러 구제수단이 있다. 미국의 고용기회평등위원회는 분쟁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위원회 스스로가 원고가 되어 피신청인을 상대로 법원에 차별구제를 위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또한 불법적이고 의도적인 차별에 대하여 손해정도에 상응하는 보상적 손해배상뿐만 아니라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을 부과할 수 있다. 미국은 1991년 민권법 개정을 통하여(제102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였는데, 근로자의 수에 따라 15~100명은 5만 달러, 101~200명의 경우 10만달러, 201~500명은 20만 달러, 501명 이상인 경우에는 30만 달러로 그 상한을 정하고 있다. 영미권 국가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한 것은 악의적인 차별을 반복하지 않도록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차별의 부당성을 알림으로써 예방과 억제의 효과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액이 높기도 하지만, 특히 이것이 집단소송 형태로 나타날 경우 그 액수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악의적인 차별을 하기 보다는 차별 예방과 교육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캐나다는 별도로 인권재판소가 있어 이를 통하여 시정명령 등의 조치를 한다.


차별금지가 비효율성을 제거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방면에서 차별금지 입법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지난 7월 국무총리에게 ‘차별금지법 권고법안’에 기초하여 차별금지법의 입법 추진을 권고하였다. 당시 일부에서 제기된 우려 중 하나가 차별금지법이 자유시장 질서와 기업의 자율경영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차별금지법을 운용한대서 기업의 자율경영이나 시장경제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특히 자유방임국가의 대표주자인 미국이 선도적으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였고 그 법들이 다른 나라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미국은 민권법 제7편(1964)에서 성별, 인종, 종교, 피부색, 출신국가에 근거한 고용 차별을 금지하고, 동등임금법(1963), 연령차별금지법(1967), 재활법(1973), 장애인차별금지법(1990) 등 차별금지법제를 제정하였다.


어느 나라보다 기업의 자율성과 시장질서를 강조하는 미국에서 강력한 차별금지 규제를 하게 된 것은, 비단 차별이 개인의 기본권 향유나 권리 행사의 저해와 사회갈등의 주요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만은 아니다. 차별에 대한 통념과 편견으로 인한 비효율성을 제거하여 경쟁의 공정성이나 합리적인 기업문화 형성을 위해서라도 차별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경험에 기인한 것이다. 이는 경제력 10위권에 진입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차별금지법은 사회통합이라는 우리사회의 주요 과제를 촉진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21세기는 ‘인권의 세기’라고도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이를 실현하는 데에는 갈 길이 바쁜 상황이다. 각기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지만,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고도 긍정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고민 속에는 우리 사회 차별 피해자의 다수가 사회적 약자라는 점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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