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식상한 이주노동자 차별

차별에 대한 고통만큼은 식상해지지 않는다

사진 | 참세상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식상하다. 조선일보 같은 신문에서도 심심하면 들먹이니 누구나가 고개를 끄덕이는 차별의 대명사가 된 것 같다. 명절 때면 한번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고국의 연예인들 불러다 위문잔치 해주는 것으로 환하게 웃는 풍경을 담아낼 수 있는 가벼운 차별. 천박한 자본이 주인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의 당연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누군가 더 쇼킹한 차별의 사례를 찾아 상담소 문을 두드리고 있을지 모른다.


‘병신’이란 말처럼 검은 피부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뿌리가 깊고, 마음보다 몸이 앞설 정도로 익숙해져 있다. 노동의 대가를 별 죄의식 없이 떼먹고도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나름의 경영철학인 양 큰소리치는 사업주들이나, 현대판 노예제, 산업연수제도를 십 수 년 간 운영하고 있는 정부나,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들 모두의 마음 한 편에 차별의식이 자리 잡고 있어 가능한 일들이다. 불법체류자란 이름을 덧씌워 존재하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 이르면 그 차별의 시선은 더욱 자연스럽다.


알리는 파키스탄 출신의 이주노동자였다. 지난 해 초 강제 단속되어 이 땅에서 추방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9살, 한국생활 6년 만이었다. 외국인보호소 면회실에서 만난 그는 상심이 컸고, 어떻게든 잠깐 만이라도 다시 나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눈물을 보였다. 보통 단속으로 보호되어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면 의외로 빠르게 한국생활에 대한 마음을 접고 돌아가 살아내야 할 생각에 하루빨리 귀국 비행기를 타려고 한다. 말이 보호소지 감옥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더더욱 그렇다. 말 못할 깊은 상처가 있는 게 분명했다.


알리는 인천 서구의 주거지에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15만 원의 반지하방에 살고 있었다. 그 집에만 4개의 방에 이주노동자들이 살았다. 그런데 일이 생겼다. 이사한 며칠 뒤부터 출근시간이면 대문에서 한국인 아가씨와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위층 주인집 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서로 눈길도 마주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눈인사 정도는 나누게 되었고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의 가슴속에 그녀가 들어온 것이었다. 자꾸 그녀가 생각났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때면 혹시라도 그녀를 만나게 될까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하지만 알리는 찬물로 세수를 하며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자신은 ‘불법체류자’였고,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용기를 냈다. 출근 시간 집 앞 골목에서 그녀에게 ‘밥 같이 먹자’고 이야기 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서둘러 발길을 돌려버렸다. 알리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것을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며칠 후 그는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자다 강제 단속되었다. 인권단체들이 사업장이 아닌 일반 주택에서 야밤에 단속을 한 것에 대해 항의하자 출입국관리소는 “주위 신고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사랑의 감정이 강제추방의 이유가 되는 게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이다.


이주노동에 대한 차별은 식상하다. 하지만 식상한 차별에 따른 고통은 식상하지 않다. 정말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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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재 |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교육홍보팀장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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