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은 [ ]다 거의 모든 소수자 운동은 차별과의 싸움이다. 차별의 문제는 인권운동 영역 전반에 걸쳐 있다. 어떤 차별은 너무나 거대하여 보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압도할 만큼 위협적이다. 어떤 차별은 너무 날카로워 잘 보이지 않지만 그만큼 상처는 깊다. 둘 다 치명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차별은 다양하다. 하기에 차별에 대한 저항은 다양한 내용으로, 전방위적으로 모색되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법으로 차별을 막을 수 있나?”라는 저들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다만 차별을 금지하는 법제도의 마련과 차별행위에 대한 제재와 권리구제 수단을 만드는 것은 차별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고 문화와 인식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만으로도 너무나 중요한 첫 발걸음이다. :: 차별이야기 인간에 대한 예의 목숨 걸고 저항하는 사람들 억압과 처벌의 시스템 하나의 공장, 두 노동자 식상한 이주노동자 차별 학번을 물어오는 통성명 절차 :: 평등을 위한 최소한의 무엇이 필요하다 :: 형식적 평등을 넘어 구조적 차별 개선으로 :: 장차법은 함께하는 세상을 향한 징검다리 |
인간에 대한 예의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차별영역을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으로 나누고 있다. 징그럽게 많은 갈래구분이다. 그러나 차별은 이러한 서로 다름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이유로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침해하기에 발생한다.
무슨 대단한 발견인양 인간은 평등하지 않고, 평등하지 않은 인간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어떤 이는 반문한다. 절반은 맞는 말이다. 만약 인간이 평등하다면 왜 ‘법 앞에 평등’을 요구하고 인권문헌들마다 평등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적어놓았겠는가. 세계인권선언도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가 됨을 인정하며…”로 시작한다. 어디에도 인간은 다 똑같고 그래서 평등하다란 말은 없다. 다만 존엄한 존재이기에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고 선언한다. 더불어 그렇지 않을 경우 자유와 정의, 평화가 아래로부터 흔들린다고 경고한다. 차별이 존재하는 한 그 공동체는 그 구성원을 공격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 스스로도 그 공격에 위협받는 셈이다. 그러므로 차별은 다수결을 ‘신봉’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차별은 사회구조적이다. 다름이라고 하는 존재의 본질적 부분을 ‘우등’과 ‘열등’으로 가르고 합리화한다. 예전에 신화와 종교가 그랬고 지금 자본과 관료주의가 그렇다. 때로는 재난과 공포를, 때로는 보호와 관리를 그 합리화에 동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서 인간은 다름이 사라진 존재, 다르지 말아야 할 존재로 규정되고 취급된다. 하기에 차별은 개인에 대한 폭력일 뿐만 아니라 인간 존엄에 대한 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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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의 싸움은 한국 인권운동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성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빨갱이’란 딱지 붙이기에서부터 ‘불구자’로 불렸던 장애인, ‘변태’ 성소수자, ‘무인격’의 청소년/녀, 20세기 ‘문둥병’ 에이즈,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 이보다 만연하지만 은밀해서 더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는 학력이나 직업, 지역과 빈부에 의한 차별과의 싸움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싸움은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지만 쉽지 않다. 벌써 ‘역차별’이란 말이 등장한 우리 사회는 다름의 인정이 아니라 차이를 서열화하는 유구한 전통과 차별을 관리하고자 하는 시장경제의 효율성이 공존하는 탓이다.
그래서인지 법제도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법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방면적인 모색과 실천이 함께 하길 바라는 문제의식에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수단의 필요성과 외국사례, 그리고 몇 걸음 앞선 장애인차별금지법 이야기를 다뤘다. 그에 앞서 부족하나마 장애,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문제와 학력에 의한 차별 경험담도 전한다. 차별사회는 차별하는 가해자와 당하는 소수자만이 아니라 방관하는 다수에 의해서도 유지된다. 제도교육과 문화권력이 비겁함을 거세하는 까닭에 우리는 가해의 기억을 갖기 힘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더욱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