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단체탐방]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로

All power to the Imagination - 경계를 넘어

…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보아요. 그건 어렵지 않아요. 국가를 위해 죽고 죽이는 일도 없을 테고 종교 역시 없겠지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간다고 상상해 보아요. … 소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봐요. 당신이 상상할 수 있을까요. 탐욕을 부릴 필요도 없고 굶주릴 필요도 없고, 인류애가 넘쳐나요. 세상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을 상상해 봐요.



국가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신 적 있나요? 종교나 권력이 없는 세상은요?


존 레논(John Lennon)은 어렵지 않다며 상상해 보라고 노래한다. 적어도 자국의 이익을 위한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일은 없겠죠. 강국이 되어 그 권력을 마구 휘두르며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그들의 삶을 황폐화시키지도 않을 거구요. 존 레논의 노래처럼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세상을 함께 공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단체탐방에서는 열심히 민족/국가/종교/권력의 경계를 넘나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경계를 넘어 연대의 세계화를 꿈꾸는 사람들(Imagination for International Solidarity).


연대의 세계화를 꿈꾸는 사람들


북아현동의 주택가에 위치한 ‘경계를 넘어’ 약도는 너무 친절하다. 이정표지점의 상점 간판을 찍어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안내해 준다. 그런데 ‘경계를 넘어’는 간판이나 안내판이 없다. 그래서 “요기”라고 표시하고 있다. “요기”로 들어서니 미니는 수정스티커 붙이기에 열심이다. 지난 7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 있은 후 경계를 넘어는 ‘이스라엘규탄긴급행동’에 참여, 이스라엘 대사관 앞 항의집회를 비롯한 선전전을 진행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침공의 역사적 맥락과 실상을 알리기 위해 소책자 「레바논 침공과 미국.이스라엘의 패권정책」을 냈다. 미니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와 경계를 넘어 두 단체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데, ‘경계를 넘어’에서는 노동집약적(?) 일만 한다며 넉살스럽게 웃으며 부지런히 손을 움직인다.


집회와 선전전, 토론회 개최 등 여느 단체와 같은 활동도 하지만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홈페이지 운영과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다. 홈페이지는 ‘국제연대’의 필요성과 의미를 알려내는 창구이면서 동시에 국제연대를 위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의 사건이나 소식을 알리고 공유하는 것. 연대를 위한 첫걸음이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서 비롯한 것이니만큼 올바른 정보전달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경계를 넘어’ 홈페이지는 인터넷 신문이나 웹진을 닮아있다.


지구촌을 대륙별로 나누어 각 지역의 소식을 전하는 ‘경계를 넘는 뉴스’, 사진이나 카툰을 통해 사건을 전달하는 이미지뉴스, 칼럼이 주를 이룬다. 경험하거나 직접 본 것이 아닌 해외의 소식을 전달하려다보니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늘 고민이다. 외국의 진보언론 사이트의 기사를 번역하여 제공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상근을 하고 있는 수진과 미니, 상근은 아니지만 상근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활동을 하는 지은, 지난 9월 공부 겸 활동의 연장 겸하여 캐나다로 떠난 최재훈 활동가가 각자 자율적으로 기사를 작성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기사를 작성하자는 처음 약속을 지키며!


새로운 운동방식을 상상한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전달방식은 다양하고 전달방식에 따른 효과도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네 운동방식은 문서에 갇혀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동의 자기주장은 명확한데 전달방식은 한계가 있어요. 공감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이에요.” 미니는 새로운 방식을 상상해 본다고 한다. 인터넷 라디오도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미디어 세상에 적합한 방식의 접근. 인터넷 라디오 <경계를 넘어>는 민주노총 노동방송국의 요청과 이런 경계를 넘어의 고민이 맞아 시작됐다. 매주 화요일 세 시부터 네 시까지 한 시간 동안 미니는 DJ가, 수진은 특파원(?)이 된다. ‘앗, 세계뉴스’를 통해 해외 이슈를 브리핑하고, ‘경계가 만난 사람’에서는 전화인터뷰를 진행한다. 중간 중간 음악은 평소 접하기 어려운 제3세계 음악들. 다른 나라를 이해하는데 있어 문화적 접근은 정체불명의 거부감을 줄이는데 안성맞춤이다. 또한 자본의 물결을 타고 들어온 팝송과 샹송에 박탈당한 음악적 기호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곡이 보통일이 아니다보니 평소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회원 개구리가 참여해 도움을 준다. 전체적인 녹음기술은 나침반 회원이, 인터넷 라디오 <경계를 넘어>는 이렇게 회원들과 함께 기획하고 만들어진다. “회원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 회원들이 하고 싶은 활동을 만들어 갈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 ‘경계를 넘어’라고 수진은 말한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과거 우리나라가 군부독재 정권하에서 민주화운동이 진행될 당시 한국의 인권상황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 국제연대였다면, 현재는 상호정보교환의 형태로 변화했다. 아니 한국에 외국의 문제를 알리는 형태의 비중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정보전달의 중심에 ‘경계를 넘어’가 있다. 그리고 그들과의 꾸준한 연대와 소통을 이어간다.


한국에서 13명이 난민지위인정을 받았지만 우리에겐 낯선 재한 줌마 피플스 네트워크(Jumma Peoples Networks-Korea). 줌마인은 방글라데시 동남쪽에 위치한 치타공 산악지대에 살아 온 12개 민족을 통칭한다. 벵갈리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방글라데시는 군대를 동원해 줌마족들의 땅을 빼앗고 벵갈리 이주민 정착촌을 건설했다. 방글라데시 군대는 무장투쟁 범인을 색출한다는 명목 하에 줌마인의 가정집을 무단수색하고 죄 없는 민간인을 고문하고 투옥하기 일쑤였다. 이런 군대의 보호아래 벵갈리 정착민들은 줌마인들에 방화와 폭행을 일삼았고 계속되는 폭력에 줌마인들은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한국에는 모두 16명의 줌마인들이 살고 있으며, 나머지 3인도 난민 인정 신청을 해 놓은 상태이다. 2002년부터 재한 줌마 피플스 네트워크가 구성되어 방글라데시의 인권탄압을 알리는 사진전시회 및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평일에는 이주노동자로 주말이면 줌마인으로, 둘 다 녹녹치 않은 생활이다. 경계를 넘어는 주말 모임에서 그들의 일상에서부터 고통과 아픔은 물론 앞으로의 희망을 내 일처럼 나눈다.


종전이후 치안의 부재 속에 미군, 폭탄 등의 위험에 노출된 채로 살아가는 이라크 민중을 우리는 종전선언과 함께 잊었다. 세계의 무관심과 미국의 이득 챙기기 속에서 이라크인들의 삶은 더욱 황폐해지고 있다. 경계를 넘어를 비롯하여 이라크 평화활동을 진행해 온 활동가들은 이라크 상황을 공유하며 앞으로의 활동을 논의했다. 지금까지의 활동을 정리하고 ‘이라크평화를향한연대(준)’로 거듭나 새로운 활동을 준비 중이다. 한국의 파병반대와 이라크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행동, 이라크 모니터링, 추후 점령군의 전쟁 범죄 현지조사까지 침략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라크인들과 연대해 갈 예정이다. 지은이 이라크평화를향한연대(준)에서 활동하며 격주 화요일 열리는 회원모임에서 활동내용을 공유한다.


단체를 중심으로 한 연대 뿐 아니라 사안별로 요구되는 역할은 다양하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확장 저지 투쟁이 한참 진행되던 지난 6월 경계를 넘어는 해외단체 활동가들이 청와대와 국방부에 항의서한을 보낼 수 있도록 조직했다. 외국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광화문에 설치된 포항건설노조원 하중근 열사 농성장에 영어로 상황설명과 노동자들의 요구를 담은 자보를 만들어 설치하기도 했다. 뽀대나는 일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 이름만 걸거나 성명서만으로 끝나는 활동은 과감하게 포기하자. 이런 ‘실천’에 대한 고민이 경계를 넘어가 생겨난 이유 중 하나다.
미니와 수진


국제연대의 새로운 지형을 그리며


경계를 넘어를 만든 것은 운동에 대한, 국제연대의 왜곡된 지형에 대한 성찰이었다. 활동의 폭이 넓어지면서 ‘국제연대’가 잦아졌다. 그런데 국제연대란 것이 한정된 사람들에 의한 국제회의참석이라니. 정보공유가 어려운 것은 물론 회의만으로는 실상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술 더 떠 운동사회 내에서는 국제연대를 하려면 이 사람을 통해야 한다는, 국제통이 생겨났다. 그야말로 국제연대가 권력으로 작동하는 진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수평적인 정보의 생산과 교류를 가능하게 하자, 단체내부의 수직적 체계도 해체해야 하지 않을까. 비슷한 고민을 나누던 사람들이 2004년 가을, 한 잔속에 힘과 뜻을 모았다.


활동가들 간의 수평적 구조를 만들고 지구촌 곳곳의 소식을 전하며 경계를 넘어가 짜여졌다. 그러나 경계를 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연대라는 건 상대의 처지와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이해하고 나누는 일인데, 레바논, 이라크 등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해 들었을 때, 얼마나 확신할 수 있을까. 경험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분명한 실감의 차이 그것이 장애로 작용하지 않을까하는 긴장 속에 늘 조심스럽다. 게다가 모든 나라가 다른 문화, 다른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인권의 보편성을 무기로 인권을 강요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일 뿐이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떤 지향성을 가지는지 귀 기울이며 당사자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경계를 넘는’ 사람들의 자세라고 말하는 듯하다.


경계를 넘어는 이제 막 국제연대의 새로운 지형을 그리려고 펜을 들었다. 펜의 다양한 색깔만큼 다양한 모습, 다양한 유형의 연대방식들이 그려지길 기대한다.


사진 박김형준 |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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