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얘기만 듣고 있던 그 친구는 이 말에 목소리를 높이며 대꾸했다. “나도 그게 이해가 안 됩니다. 남쪽은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북쪽은 군사적으로 미국을 압도할 수 있습니다. 남쪽과 북쪽이 손을 잡으면 미국과 당당히 상대할 수 있어요. 왜 자꾸 남쪽이 미국에 끌려 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참 답답했다. 물론 실제로 북한에서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핵실험을 염두에 두면 바로 이 젊은 친구의 목소리가 지금 북한을 통치하는 이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때 ‘억지 이론’이 각광을 받은 적이 있다. 미국이 소련을 상대로 핵폭탄을 사용했다가는 당장 소련 핵폭탄이 미국 본토를 폐허로 만들 것이다. 미국, 소련은 양쪽 다 핵폭탄을 사용하지 못한다. 물론 이런 균형 상태가 유지되기 위해서 미국, 소련은 끊임없이 상대방의 능력을 재보며 핵폭탄의 숫자를 늘여 갔다.
북한 지도부도 이 이론에 솔깃한 모양이다. ‘핵 억지력’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핵폭탄 보유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 미국과 북한 사이에 이 이론은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은 세계를 호령하는 군사력을 갖추고 있는 반면에 북한은 핵폭탄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조차도 의심을 받고 있다.
미국이 당장 북한에 핵 폭격을 한다고 하더라도 미국 본토가 북한의 핵폭탄에 쑥대밭이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한, 일본이 있지 않으냐고? 세계 자본주의 경제에서 남한, 일본이 차지하는 위상을 염두에 두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것처럼 섣불리 북한을 폭격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 남한이 미국 본토만 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핵폭탄이 ‘억지력’이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억지 이론이 통하던 시대와 비교했을 때 군사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미국은 짧은 시간에 북한의 군사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갖췄다. 1991년 처음 개발돼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온 벙커버스터도 그 중 하나다.
물론 군사기술 역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미국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 체계가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그 단적인 예다. 그러나 한 번 더 강조하자. 미국의 벙커버스터가 다행히(?) 북한의 주요 군사 시설을 조기에 진압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피해는 남한, 일본이 입지 미국 본토가 입는 것은 아니다.
지금 북한 지도부는 늘 ‘우리 민족’이라고 친근감을 표시해온 남한의 보통 사람을 볼모로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다. 미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불장난하는 아이에게 휘발유통까지 안겨 줄 모양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가리지 못하는 보수언론은 휘발유를 부으라고 아우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의 평화 세력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답답할 따름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