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내목소리]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서울구치소 수용자 사망사건 유가족이 부쳐온 편지

잊어야만 살 수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단 한 순간도 과거가 되지 못했지만 정면으로 동생의 부재를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 떠난 동생이 내 옆에 있는 것처럼 여기며 살아온 시간이었습니다. 서른셋의 나이로 허망하게 떠나간 지 어느새 5년. 2002년 1월 7일, 동생은 아내와 분신처럼 사랑하던 딸, 그리고 우리 가족들 곁을 떠나갔습니다. 교통사고 도주차량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지 딱 두 달 만의 일이었습니다. 2001년 12월 29일 면회는 저와 동생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건강하니?”란 인사에 자신은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형 건강이나 잘 챙기라던 인사가 동생과의 마지막 대면이라곤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갑작스런 동생의 죽음


2002년 1월 6일(일요일) 저녁 7시 40분 경 한 교도관으로부터 동생이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경황이 없어 무슨 일인지조차 묻지 못하고 안양병원까지 내달렸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것은 그날 저녁 9시경. 동생은 기계에 호흡을 맡긴 채로 이미 동공이 열린 상태였습니다. 의사는 소생가능이 없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교도관과 의사를 붙잡고 동생을 보다 큰 병원으로 옮겨달라고 절규했고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그날 밤 동생은 평촌 한림대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이송직후 구치소 주임이 저를 불렀습니다. 치료 후에 보자고 했지만 “동생은 형 집행 정지 상태이니 이제부터는 가족 책임 하에 치료를 받으셔야 한다”고 말하며 형 집행 정지 쪽지를 내밀더군요. 그 말과 동시에 진료 접수와 진료비 지불은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기가 찼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동생을 두고 책임소재 여부를 운운하는 교도관들의 모습에, 책임 회피를 위해 병원호송에도 그렇게 인색하고 시간만 질질 끌던 구치소 측에서 동생을 이송하는 순간 형 집행 정지를 당직판사에 신청했다는 사실에 참았던 분이 차올랐습니다. 구치소 측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치료를 할 수 있도록 신속히 형 집행 정지 판결을 해주었는데 고마워하지 못할망정 항의를 한다.”라며 도리어 저희에게 큰 소리를 쳤습니다.


3일 만에 겨우 간 의무실


동생은 1월 3일부터 호흡에 곤란을 느끼며 잠을 자지 못했고 4일 저녁부터는 호흡 곤란으로 식음을 전폐하며 고통을 호소했으나, 의무관 처방은 설사약뿐이었습니다. 5일 밤부터는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동료 수감자들이 이러다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6일 아침, 봉사원에 알렸고 앓아누운 지 삼일 만에 의무실에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무실에서 받은 진료라곤 링거주사뿐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동생이 의식을 놓아버린 다음에야 구치소 측은 동생을 병원으로 이송했고, 이미 정신을 놓아버린 동생은 병원에 와서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불과 몇 시간 후에 세상을 떴습니다.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구치소 측의 행동에 참을 수 없는 울분을 느꼈지만 처음에는 그냥 동생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죄를 지은 것도 동생이고, 그래도 국가기관인데 그리 허술하게 처리했겠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또한 구치소 측에서 동생의 장례식이 끝나면 동생에 대한 구치소 의무기록과 병원처방 및 치료 등에 대한 모든 자료를 공개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해서 처음에는 부검조차 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부검을 하겠다고 했더니 구치소 태도가 단번에 변했습니다. 구치소를 방문해 자료를 요청했더니 비공개이기 때문에 공개는 불가능하다며 매우 고압적인 자세로 우리 가족을 대했습니다. 또한 동생의 죽음에 대해 누구하나 애도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자신들은 할 일을 다했다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지켜주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동생의 사인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빠를 잃은 유치원생 조카를 보면서, 조카가 커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물으면 무엇인가를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의 신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너무 두렵고 막막했습니다.


제대로 된 의료대책이 담긴 행형법 개정을 바라며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고 법무부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다행히 <오마이뉴스>를 시작으로 <한겨레>, <경향>, <한국일보> 등이 동생의 죽음을 다룬 기사를 썼고, MBC 뉴스와 KBS 시사 프로그램이 사건을 다뤘습니다. 이런 과정들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 공무원인 제게 많은 변화와 번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울분을 토하며, 수용자의 의료권을 보장하라는 요구에 법무부는 “교도소는 병원이 아니랍니다.”라는 답변을 내놓았고, 서울구치소 측은 ‘책임 없다’는 입장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더디기만 한 국가인권위 결정을 기다려야했습니다. 2년하고도 9개월이 지나서야 구치소 측의 책임을 묻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2004.9)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구치소 측의 입장은 변한 것이 없었고 법정투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은 동생을 살려내라는 것도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죄송하다’는 그 한마디와 망자에 대한 진심어린 ‘애도’의 인사를 기대했을 뿐이었습니다. 망자에 대한 예의와 상식을 기대했을 뿐이었습니다. 동생을 보내고 모든 자료를 움켜잡고 내놓지 않은 거대한 정부조직과 한 소시민의 투쟁은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았습니다. 번민과 좌절의 시간 속에서 4년 5개월을 보냈습니다. 1심의 승소를 거쳐 지난 6월, 조정을 통해 사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만족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구치소 측의 책임이 인정되었고, 동생의 죽음에 대한 사과를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 결정문 한 장을 받기 위해 너무 먼 길을 돌아와야 했고, 긴 고통 속에서 잃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만난 인권단체 활동가는 여전히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고통을 호소하는 수용자들의 서신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또한 신문 한쪽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수용자의 인권문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올 가을 국회에서 행형법이 논의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하지만 의료권 보장 등이 미흡해서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보완 권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동생과 같은 불행한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족이 겪어야했던, 지금도 끝나지 않은 고통도. 그래서 국회에 바라고, 법무부와 국가인권위원회에 바라고, 인권단체에 바랍니다. 제대로 된 의료대책을 만들어주시길, 개정되는 행형법은 정말 수용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이 되길. 그것만이 제가 동생을 떠나보낼 수 있는, 제2, 제3의 제 동생이 만들어지지 않는 길일 것입니다. 저 역시 그 길에 미력이나마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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