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부터 전 세계의 눈이 주목했고, 그 배경, 규모, 실험 이유, 향후 대응 방안 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정보를 탐지하고 분석에 들어갔다. 같은 한반도 땅에서 살을 맞대고 있는 남측 역시 심각하고 진지하게 사태 해법을 찾아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와 별도로 주식 시장과 외환 시장은 잠시 출렁이는가 싶더니 금세 안정을 되찾았고, 핵실험 자체를 한반도 투자 불확실성의 제거 요소로 판단하며 해외 투자자의 유입은 오히려 더욱 늘어났다.
일반 시민들의 모습은 더욱 차분했다. 과거 쉽게 눈에 띄던 라면 등 생필품 사재기니, 예금 인출이니, 달러화 매입, 해외 탈출 러시 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진지하면서도 차분한 대응이 외교 정책과 실생활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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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시민들… 공포감 부추기는 수구언론
헌데 이러한 노력과 살짝 궤를 달리하면서 한반도 전역에 이른바 ‘북핵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진원지는 크게 두 곳이다. 한 곳은 당연히 핵실험을 강행한 북측이고, 또 다른 한 곳은 전쟁 위기를 부추기는 남측의 수구 반동 언론들이다.
수구 언론의 대표 격인 조.중.동은 아예 물 만난 물고기들이었다. 특히 <조선일보>는 그들이 왜 ‘수구 반동 반통일 반평화 언론’인지를 유감없이 확인시켜주며 길길이 날뛰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 양 막연한 안보 불안감과 공포심을 부추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며칠 동안 숱한 기사를 쏟아내며 이루고자 했던 자신들의 의도와 달리 시민들은 평온함과 차분한 반응으로 일관하자 이제는 ‘안보 불감증’이라면서 막 호통을 친다. 그리고 북 핵실험에 대한 모든 책임을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대북 화해협력정책인 햇볕 정책, 포용 정책에 모조리 떠넘기며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삼는다.
핵실험 다음날인 10일자 신문을 보면 수구 언론이 의도하는 바는 극명히 드러난다. 아 참, 이 지면을 통해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 또 올바른 시민적 가치관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중앙일보>, <동아일보> 같은 수구반동 언론매체는 가능한 한 안보는 편이 나을 성 싶다.
아무튼 이날 <조선일보>는 19개 면을 뚝 떼어내 ‘북 핵실험’ 기사를 다뤘고, 다른 신문들에서도 지난 6월 월드컵 토고전 승리 이후 한동안 보지 못했던 1면 통단 제목이 일제히 등장했다. 제목 크기도 거의 두 배였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례적으로 9일 오후 가판을 발행했다. 서울 지하철역 등에서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이날 신문 제목만 대충 훑어보면, 한반도 전쟁은 거의 코앞에 있는 듯하다.
‘북 핵실험 한반도 초긴장’<조선일보> 1면
‘북한, 설마 했는데…불안해서 못살겠다’<조선일보> 2면
‘한국판 9.11사태…김정일, 핵실험 1~2번 더 할 듯’<조선일보> 4면
‘햇볕…포용…남한 위정자들이 북핵 재앙 불렀다’<조선일보> 6면
‘북한 핵실험 강행…한반도 핵공포 덮쳤나’<중앙일보> 1면
‘민족적 재앙 현실로 다가선 느낌’<중앙일보> 11면
‘북한 핵실험 강행…한반도 핵폭풍’<동아일보> 1면
‘충격의 핵요일…시장엔 공포만 있었다’<동아일보> 14면
국내 정치 논리로 활용…외국 언론은 부시 책임론
이것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조선일보>는 1면에 사설을 따로 끄집어내서 미국과 동맹, 특히 미국 핵우산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했다. ‘대한민국 지키는 대결단을’이라는 제목으로 “북한과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는 끊겼다. 북한이 그렇게 목을 맸던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도 완전히 사라졌다. …(중략)… 북한의 핵공갈로부터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동맹국 미국의 핵우산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로서는 늘상 해왔던 말이지만, 북측의 핵실험 상황에 힘입어 기사와 목소리에 더욱 힘이 붙었다. 그러나 약발은 쉬 먹히지 않았다.
조선일보 인터넷 판은 더욱 가관이었다.
10일-정확하지 않다. 원고 작성을 위해서라도 미리 프린트를 해뒀어야 했는데, 정신 건강이 해로워질 것 같아 기사를 본 뒤 얼른 창을 닫아버렸다.- “서울에 핵폭탄 터진다면…”이라는 가상의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용산을 중심으로 1, 2차 피해지역을 상세히 소개하는 도표까지 제시했다. “사망자수는 62만 명에 이를 것”, “미국 CIA 시뮬레이션 결과”라는 둥 동원 가능한 모든 협박의 표현과 불안 심리 조장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시민 반응에 있어서도 시민들의 말 인용 역시 최소한의 근거(실명, 나이, 주소 등)의 제시가 없어 조작 혹은 왜곡의 결과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당시로서는 사실 관계 진위 여부부터 시작해서 실험 강행 배경, 향후 전개 방향, 국제 관계 흐름 등 실체적 진실에 대한 접근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책임 있는 언론이라면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우선이어야 함은 당연한 일일 게다. 추측과 주장만을 근거로 어떻게 하면 전쟁 공포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는지에만 골몰한다면 이러한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라고 부를 수 없다.
특히 조.중.동 등은 이번 기회에 아예 ‘노무현’과 ‘햇볕정책’을 때려잡겠다는 기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민족의 문제, 한반도 평화의 문제를 국내 정치 논리로 단순화시킨 것이다.
일제히 쏟아낸 사설은 말할 것도 없고, 기사를 통해서도 자신들의 의도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특히 <중앙일보>는 “정부는 뭘 했나, DJ.노 정부 햇볕정책 사실상 파산”(2면)이라는 기사를 통해 국민의 정부 햇볕정책과 현 정부의 자주외교가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치밀한 근거 분석보다는 대단히 자의적인 판단으로 재단했다. 여기에 북 핵실험을 불가피하다고 보는 개인 혹은 단체의 시각을 아예 ‘이중적 잣대를 가진 진보세력’으로 몰고 가며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시민들과 독자들을 속이는 행동이다.
물론, 자주외교를 깃발로 내걸었음에도 남북 관계에 있어서 북측과 변변한 대화 채널 하나 운영하지 못한 정부의 정책적 실패는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수구언론에서 지적하고 있듯 햇볕정책의 실패, 대북포용정책의 실패는 결코 아님은 더욱 분명하다. 많은 시민들은 신문 등 언론 보도가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단순한 사실 보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역사적 배경과 사실 관계, 역학 관계의 변동 등에 근거한 분석 기사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소한 자신들의 눈으로 볼 능력이 없다면, 남북 관계, 북미 관계, 한미 관계 등 동북아 정세 전문가들의 얘기를 체계적으로 듣고 종합하는 속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언론의 정도(正道)다.
헌데 조.중.동의 핵실험 대응 모습은 1년 남짓 앞으로 다가온 대선의 전초전으로서 외교안보정책의 우위를 확보하고자하는 것으로 비쳐질 뿐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그리고 시기의 문제, 한.미 동맹의 문제 등 안보 이슈를 갖고 대북 강경책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며 ‘선거 바람’을 일찌감치 일으키려는 모습이다. 게다가 이들 모습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놓친 대권,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보상심리만 쓸쓸히 읽힐 뿐이다.
늘상 외국 언론을 기준 삼을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 조.중.동 등 수구언론들과는 너무도 다른 접근법을 보여줬다. 북 핵실험이 남북문제만이 아니라, 북.미, 북.중 등 동북아 문제이자, 전 세계적인 이해관계를 드러낼 수도 있는 사안인 만큼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세계의 일반적인 시각은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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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노예언론 근성의 발현인가
실제로 외국 언론의 상황 분석은 남측 수구언론들과 전혀 상반됐다.
프랑스 <르몽드>는 상황 발생 직후인 10일자에서 “북한의 벼랑끝 외교는 부시 미 대통령의 집권 이래 추진된 미국의 대북 정책이 낳은 쓴 열매”라면서 “핵 보유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이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은 만큼 정책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라고 가차 없이 보도했다. 잘못된 정책 및 북핵 위기의 시발로 지난 2002년 10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가동 주장”을 제시했다. 아무런 실체적 근거 없이 핵확산방지기구(NPT) 탈퇴를 유발시켰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후 미국은 제네바합의 무효 선언, 금융 제재 실시, 북한의 협상 복귀 거부 등으로 악화 일로를 걷게 됐다.
영국 <가디언>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디언>은 10일 “부시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기 위해 클린턴 시절 합의했던 석유 공급을 중단했다.”라면서 “부시는 이미 악의 축이라고 지칭한 정권에 대해 이라크에서처럼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한 바 있다.”라고 사설을 냈다. 핵실험을 유발시킨 책임에는 부시 행정부의 선제 핵 공격 위협이 있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부시가 2002년 발표한 「핵태세 보고」에는 ‘비핵국에 대한 핵 선제공격이 가능함’을 분명히 언급한 바 있다.
북한 문제에 있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던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역시 비판의 창끝을 미국 부시 정부에 겨누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북한의 핵실험은 부시가 선호했던 강경한 접근 태도가 실패했다는 징표로 널리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것이 북 핵실험을 바라보는 상식적인 눈이었다.
우리 정부는 최근 5~6년 동안 포용에 의한 대북 정책을 주기조로 삼았다. 반면 미국은 압박과 봉쇄 기조로만 일관했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동북아 문제의 주된 핵심 역할은 미국이 도맡아왔다. 남한 정부 입장에서는 한미 관계를 고려하며 남북 관계의 변화를 추구하는 소극적 역할에 그쳤던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책임을 묻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모습은 식민지 노예 언론 근성이 반영된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또한 백 번 양보해서 수구언론들이 우리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이 실패했다고 보도하고 싶다면, 미국의 강경 대결 정책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려야 한다. 과연 수구 언론을 중심으로 한 남한 언론, 어느 지면에 그러한 객관적인 평가가 존재했는지 의문스럽다. 사실상 없었다.
북 핵실험이 중차대한 만큼 한반도 평화의 실현과 전쟁 방지를 위해 언론 역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당장 11월이면 미국의 중간선거가 진행될 것이고, 선거의 주된 쟁점중 하나로 치열한 미국 내 다툼이 펼쳐질 것이다. 우리 언론들이, 우리 시민사회가 일관되게 요구해야할 것은 한반도 평화의 구축을 요구하고, 주장해야 할 것이며, 그 방법으로서 6자회담의 틀이건 뭐건, 북한과 미국의 직접적인 대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어느 상황, 어느 이유로도 전쟁은 올바르지 않다.
덧글
한참 북 핵실험 관련해서 고민하고, 여러 신문을 훑어보며 원고를 마감하던 중,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의 개성공단 ‘광란의 춤판’ 기사가 사흘째 계속됨을 보며 가슴 답답함을 느꼈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등 수구반동언론들은 역시나 물 만난 물고기나 되는 양, 아니면 사흘 굶은 떠돌이 개나 되는 양 이성을 잃고 비난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문득 지난 2002년 통일부 출입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취재와 남북해외청년학생통일대회 등을 위해 금강산에 몇 차례 다녀온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는 지난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본격적인 남북 교류협력의 분위기가 만들어진 뒤 서서히 궤도에 오르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금강산을 방문하면서도 일반 시민 혹은 관계자, 출입 기자들도 대단히 조심해야 할 대목들이 많았다. 지금은 금강산 관광객이 무시로 오가고 있는 고성항에서 온정각, 온정각에서 금강산 온천까지는 북측 관계자와 시간, 인원 등을 사전에 약속하지 않고는 결코 다닐 수 없는 길이었다. 이는 당시 비교적 자유로운 인식을 갖고 있는 청년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또한 집단 춤과 노래를 스트레스 해소 및 즐거움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북측 사람들과 만나다보면 공식 만찬 등 자리에서도 곤혹스러웠던 일들이 간혹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때, 취재 기자로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석했던 필자가 본의 아니게 10분 가까이 다수의 북측 인민들과 남측 시민들 틈에 섞여 ‘통일열차 놀이’를 즐긴 적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춤을 추다가 누군가가 주변에서 구경꾼으로 서 있으면 꼭 손을 건네 함께 춤추자고 권한다. 자신이 마음에 있어 하는 사람에게도 꼭 다가와서 춤을 권한다. 마지못해 손에 이끌려 춤판에 끼어들다 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흥도 나서 그냥 박수치고 노래 따라 부르며 몸을 맡겼다. 국가보안법, 남북교류협력법 등을 위반한 셈이다. 이를 지켜보던 남측 취재기자단 단장과 동료 취재기자들은 깜짝 놀라면서도, 그저 생글생글 웃으면서 “취재 기자가 같이 어울리는 것은 처음 봤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그 정도는 아무런 문제없다.”고 말할 뿐이었다. 남북관계에 접근하는 인식, 방법은 이미 개개인의 마음 속에 ‘불가역(不可易)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힘든 결정을 통해 개성공단을 방문한 김근태 의장의 ‘해프닝성 30여초 춤’을 물고 늘어지는 수구반통일 언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은 이미 바꾸어낸 평화적 공존의 남북관계 틀을 다시 과거의 관계로 되돌리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아 분노를 뛰어넘는 연민의 정을 느낄 뿐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